러 고위급 방한 직후 尹발언 충돌…지정학 갈등에 갇힌 한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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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덴코 차관 방한일에 러 외무부 北 지적한 尹발언 편향적 저격
韓 "무례·무지" 비판하고 러 대사도 초치…향후 한러관계 추이 주목
브리핑하는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러시아 외무부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김지연 기자 = 한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협력 등 지정학적 대립 구도 속에서도 고위급 교류를 통해 양국 관계를 관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모습이다. 어렵게 성사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의 방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양국 파열음이 커진 데서 보듯 오랜 기간 경색된 양국 관계가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있다는 점에서다. 외교부는 루덴코 차관이 지난 2일 방한해 김홍균 1차관을 예방하고, 정병원 차관보와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 외교부 인사를 잇달아 면담했다고 4일 밝혔다. 우리측은 북러군사협력에 대한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고 러측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으며, 러시아 내 우리 국민과 기업의 정당한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러측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번 루덴코 차관의 방한은 지난해부터 조율을 거듭하다가 성사된 것이다. 한러 양국은 애초 루덴코 차관의 방한을 지난해 9월 말께 성사되도록 조율해왔으나 막판에 이르러 일정이 늦춰지면서 현실화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4개월 넘게 추가로 조율한 끝에 루덴코 방한이 이뤄진 것은 그만큼 한러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양국의 공동 의지가 관철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루덴코 차관이 우리 외교부 측 인사들을 만난 직후인 지난 1일현지시간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북한의 핵 선제 사용 법제화를 비판한 윤 대통령 발언을 두고 "노골적으로 편향됐다"고 저격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양국 간 파열음은 다시 커졌다. 외교부는 3일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문자 메시지에서 자하로바 대변인 발언이 "일국의 외교부 대변인 발언으로는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며 편향돼있다"고 맞받으며 "러시아의 지도자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지칭하는 것이야말로 국제사회를 호도하려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거론했다. 러시아 외무부가 역내·글로벌 위협인 북한의 도발성을 지적한 윤 대통령 발언을 걸고넘어지자, 국제사회 평화·안보를 흔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지칭한 푸틴 대통령의 언급을 억지라고 비판하는 것으로 갚아준 것이다. 이어 같은 날 오후 정병원 차관보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해 엄중히 항의하고 "진실을 외면한 채 무조건으로 북한을 감싸면서 일국 정상의 발언을 심히 무례한 언어로 비난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우며 한러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자하로바 대변인이 러시아 국내 강경 여론이나 북한 반응 등을 의식해 대외적으로 메시지 수위를 높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러시아 외무부가 우리 정상 발언을 상대로 공개 저격한 것은 일종의 외교 결례로 선을 넘었다고 판단해 우리도 외교당국으로서 보기 드문 거친 표현을 동원하며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이 사건은 한러 양국이 루덴코 차관의 방한을 끌어낸 것처럼 관계 관리 노력에 공감대를 갖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북러가 밀착하는 구조적 상황 속에서 관계 개선의 물꼬가 쉽게 트이지 못하는 형국을 방증한다. 윤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공방은 최근 일주일 새 양국이 입장차가 선명한 우크라이나·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공개 설전을 주고받던 와중에 상대국 지도자 비판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최근 한러 공방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자유세계 일원으로서 전면 지원이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하지만 인도주의적·재정적 차원으로만 제한된 정부 정책을 지지한다"고 언급하면서 두드러졌다. 개인적 소신을 전제로 했지만 러시아가 한러관계의 레드라인으로 간주하는 대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을 지지하는듯한 발언에 자하로바 대변인은 "한때 우호적이었던 러시아와 관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경솔한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에 경고한다"고 밝혔다. 이에 외교부 당국자는 28일 "한러관계의 관리에 있어서는 향후 러시아의 관련 향배가 매우 중요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한다"며 북러간 무기거래·군사기술 협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입장을 냈다. 이처럼 오래 경색된 양국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 문제 등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정학적 상황과 맞닿아있는 만큼 획기적인 전환점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러시아 고위 인사가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한국을 이례적으로 방문한 것은 여전히 소통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관계 관리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일 루덴코 차관과 김건 본부장이 한러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갖고 북핵 문제 관련 소통을 지속하는 것은 한러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데 공감한 것도 이를 보여준다. 이번 루덴코 차관의 방한을 계기로 한러 양국이 고위급 교류 재개를 통해 최소 상황을 관리하려는 노력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루덴코 차관이 직접 와서 우리와 소통하려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고 앞으로 한러 관계의 추이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누가 잘못이라며 치고받는 와중에서도 한러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거냐는 문제의식은 있어야 한다"며 "러시아와 중국과 관계를 잘 맺지 않으면 우리가 나름의 외교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비핵화 등은 달성하기 어렵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kit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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