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실리는 사진을 신문사진, 보도사진이라고 부르고 그 과정을 포토저널리즘photojournalism이라고 부른다. 북한 신문에도 당연히 사진이 실린다. 그런데 북한 신문에 실리는 사진을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본다. 신문사진이라는 표현은 가능할 것 같다. 보도사진이라는 표현과 포토저널리즘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가능할까?
선전선동사진, 프로파간다 사진, 홍보사진이라고 치부하고 들여다보지 않는 게 맞는 걸까? 신문사 사진기자는 북한에서 릴리즈하는 수많은 사진을 본다.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는 남북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이기 때문에 유심히 보게 되며 필요하면 신문이나 인터넷에 보도한다. 미국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AP통신이 평양에 지국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지만 중요한 뉴스 현장은 지켜볼 수 없다. 그래서 김정은이 미사일이나 위성 발사를 참관하는 사진은 북한 공무원들이 촬영한 사진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 미국 언론은 사진의 설명에 “이 사진은 독립적인 언론이 아닌 관영 언론이 촬영한 것입니다”라는 단서를 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북한이 제공하는 사진에서 최근 이상한 현상 하나가 반복되고 있다. ‘모자이크 사진’ 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이나 소재를 포토샵으로 뿌옇게 처리한 채 제공하는 방식이다.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이 작년 2023년부터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쇼잉’을 즐기는 김정은과 그와 함께 사진에 등장하는 것이 영광으로 간주되는 북한 체제에서 이례적이다.
▶ 우리나라의 기준에서 보면, 모자이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940년대 신문부터 꾸준히 북한 신문을 살펴본 기자의 눈에는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미국 AP통신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모자이크 사진은 특수한 형식의 사진이 분명하다. 합당한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모자이크해서 제공한 사진을 AP통신은 전 세계로 전달하지 않는다. 우리는 AP 통신이 아닌 북한 노동신문의 PDF 파일에서 이미지를 잘라내서 제공하는 국내 언론을 통해서 제공 받을 뿐이다.
▶북한은 2월 1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신형 240mm 방사포탄을 개발하고 성능 점검을 위한 사격 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방사포는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한국 수도권 타격을 위한 무기 체계로 알려져 있는데, 조선중앙통신이 보여준 사진에는 포의 앞부분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 내부의 주민들과 간부들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 지면에는 신형 방사포의 사진을 바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과 연합뉴스 등을 통해 공개되는 조선중앙통신에만 사진을 공개했고, 그나마 포의 앞부분은 제대로 보이지 않게 처리했다. 대외용 퍼포먼스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국제 스포츠 대회 중계 화면에서 코카콜라 등의 상업 광고를 뿌옇게 처리하거나, 한국의 촛불시위 장면에서 광화문 높은 빌딩을 안보이도록 처리하는 것과 달리 2023년부터 1년째 발견되는 모자이크 사진의 공통점은 ‘군사·무기 분야’ 사진이다.
북한이 한국과 일본, 미국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 체계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사진을 통해 보여주면서, 실무 개발자의 얼굴이나 실제 무기의 일부분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사진기자와 편집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볼 시간이다. 사진은 위험한 도구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활용될 수 있지만, 자칫 적들에게 불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미사일과 위성 개발에 역할을 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줄 경우,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고, 무기의 디테일을 보여줄 경우 전력을 노출시킬 수도 있다. 미제국주의라는 구호판은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할 수도 있다. 한국과만 대립을 해도 북한 내부적으로는 충분하니 그 부분은 안 보이게 처리하자.
▶지난 10여 개월 동안 북한이 이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모자이크 사진에 대해 살펴보았다. 잘 보여야 하는 시대이긴 하다. 북한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최고지도자의 사진이 잘 나오도록 최대의 노력을 한다. 앞에서 언급한, 2024년 1월 10일 군수공장 방문 사진의 예를 들어보자. 사진기자가 볼 때 군수공장의 내부는 비현실적으로 정갈하고, 조명 상태는 일반적인 공장 현장 조명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트럭에 올라 운전대를 잡고 있는 김정은의 얼굴은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스팟 조명 형식이 비추고 있었다. 잘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고려된 것이다. 공장인지, 쇼룸인지 어떤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외부 세계가 관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릴 것은 확실하게 가리기 시작했다. 안 보여줌으로써 정치를 하는 북한 사진. 우리는 그 현상을 뭐라 불러야 할까.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