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굿바이 한반도" F-4 팬텀 국토 고별 비행…후배 KF-21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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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약 30년 간 한반도 하늘을 지배해왔던 당시 세계 최강의 전투기 F-4 팬텀이 다음달 7일 퇴역식을 앞두고 9일 국토 순례 비행을 했다. 약 3시간 동안 팬텀 주요 전적지 상공을 차례로 비행하며 팬텀에게, 팬텀 입장에서는 자신이 지켜온 한반도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시간이었다.
사선으로 대형을 이뤄 팬텀의 고향이었던 대구 상공을 비행중인 팬텀 편대. /공군 국방부 출입기자단에서는 본지를 포함해 4명이 취재진으로 선발됐다. 현재 팬텀을 운용하고 있는 수원기지에서 출발해 대구에서 재급유를 하고 대구에서 다시 수원으로 돌아오는 비행시간만 약 3시간 15분에 달하는 고별 비행이었다. “오늘 하늘은 세븐 클리어입니다. 팬텀이 고별 순례를 하기에 딱 좋은 날씨죠.” 지난 9일 경기 수원시 제10전투비행단에서 바라본 상공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하늘을 8등분했을 때 지상으로부터 7단계까지 구름이 없다고 했다. 이날 대한민국 영공을 55년간 지켜온 팬텀은 다음 달 7일 퇴역식을 한 달 앞두고 49년 만의 고별 국토순례비행에 나섰다. 제153전투비행대대 소속의 F-4E 4기 팬텀 편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이 모은 방위성금으로 1975년 구매한 F-4D 5대에 붙여준 ‘필승편대’라는 이름을 물려받았다.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의 중국 방문, 베트남 공산화 등 안보 위기가 현실화하자 국민들은 부족한 국방 예산을 대신해 십시일반 방위성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인 163억 원 중 71억 원으로 당시 최신 전투기였던 F-4D 5대를 구입했다. 이들은 이날 서울 등 12개 주요도시 상공을 순례비행하며 국민들에게 신고식을 가졌다. 현재 공군은 성능 개량형인 F-4E 10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그 중 6대가 수원 기지에 있다. 기자들은 팬텀의 마지막 특급 임무에 동행하기 위해 사전 교육과 메디컬 체크를 받았다.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도 둘렀다. 이후 중력가속도에 의한 의식상실G-LOC을 막기 위한 G-슈트, 구명정이 달린 하네스, 산소공급과 통신장비 연결을 위한 헬멧 등 장구를 꼼꼼히 챙겼다. 장구류 무게만 약 15kg. 막중한 임무만큼이나 어깨가 무거웠다. 편대를 이끄는 1번기만 전후방 조종사 모두 베테랑으로 편성됐고, 2~4번기 후방석에는 기자들이 탑승했다. 전천후 전폭기인 팬텀은 F-15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보기 드문 2인승 전투기였다. 당시 게임체인저로 불렸던 레이더 미사일을 운용하기 위해, 무기통제사로 불리는 후방석 조종사는 레이더 운용, 좌표 입력, 공대지 레이저 유도 폭탄LGB 조준 등 무장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팬텀 후방석 조종사로 830시간을 비행한 이성진 대구 제11전투비행단 부단장대령은 “공대지 미사일 팝아이를 비롯해 최대 8480kg이라는 어머어마한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팬텀이 떴다하면 북한이 도깨비 위용에 짓눌려 아예 비행기 자체를 띄우지 않았다”며 “후방석은 좁은 조종석Cockpit·콕핏, 제한된 시야, 비행 중 지속적으로 레이더 및 계기판 관측 등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멀미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9일 수원기지에서 공군조종사와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대한민국 공군의 F-4E 팬텀 국토순례비행을 위해 전투기로 향하고 있다./공군 제공 ‘스푸크’는 팬텀 최초 개발 당시, 기술도면 제작자가 항공기의 후방 모습을 보고 착안해 그린 캐릭터로, 팬텀을 운용한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았다. 팬텀을 후방에서 바라봤을 때 마치 서양의 전통적인 유령Phantom과 흡사해 보여 생겨난 캐릭터다. 밑으로 처진 수평꼬리날개는 유령이 눌러쓴 모자로, 두 개의 엔진 배기구는 유령의 두 눈처럼 보인다. 김태형 153대대장중령이 “탑승이 제일 걱정된다”고 했던 만큼 조종석에 오르기도 만만찮았다. 왼발부터 7계단의 사다리를 오른 뒤 전방 조종석 옆 좁은 공간을 살금살금 옆걸음으로 이동, 조종석에 앉았다. 각종 결속 장비들로 기체와 신체를 하나로 묶었다.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 헬멧 크기 때문에 머리 움직임도 제한됐다. 전방석 조종사의 지시에 따라 레이더 스위치를 ‘스탠바이’로 옮겼다. 활주로를 마주한 팬텀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헬멧과 귀마개를 뚫고 거친 엔진음이 파고들었다. 기체가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단 8초. 10시 정각, ‘필승 편대’ 고별 국토순례비행의 막이 올랐다. 지난 9일 고흥 상공에서 F-4 팬텀 편대 좌우측 꼭지점에서 비행하던 KF-21 시제기 2기가 편대에서 떨어져 나오고피치아웃 있다. F-4 편대는 고별 인사를 건네듯 플레어를 사출했다. /공군 몇 차례의 선회 기동 이후엔 지면과 평행하게 비행했지만, 기류의 영향으로 기체가 꾸준히 상하로 꿀렁거렸다. 레이더와 계기판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뱃멀미와 같은 이유로 속이 매스꺼워지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탓에 태양열은 조종석을 뜨겁게 달궜다. 4번기 전방석 조종사인 박종헌 소령은 “여름에 비행하다보면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을만큼 뜨겁다”고 했다. 이륙 후 편대는 핑거팁 대형손가락을 붙였을 때 검지부터 소지까지의 삼각형 모양을 유지하면서 4번기만 좌우로 기동하며 상황에 따라 레프트 핑거팁, 라이트 핑거팁 대형을 만들었다. 기체간 간격이 불과 2~3m. 옆 기체 조종사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비행 첫 20분까지는 놀이기구를 타는 듯했다. 바이킹을 탈 때 느끼는 가슴 철렁거림이 미세하게 반복됐고, 선회 기동을 할 땐 마치 레일 아래에 매달려 움직이는 놀이기구 열차를 타는 듯했다. 즐기는 시간은 딱 여기까지였다. 서해대교와 평택 삼성공장을 지나 옛 성환 비상활주로 자리에 다다르자 구토감이 몰려왔다. 산소공급 스위치를 100%로 올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1972년 5월26일 박 전 대통령 주관으로 팬텀이 비상활주로 이착륙 시범 행사를 가졌던 곳에서, 기자에겐 또다른 의미의 비상이 걸렸다. 답답함을 덜기 위해 안면을 압박하는 마스크를 벗은 채 기신기신 버티던 기자에게,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과의 만남은 달갑지 않았다. 10시 40분 경 캐노피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신록의 태백산맥은 장관이었지만, 산맥의 영향으로 발생한 난기류는 지금껏 참아왔던 멀미 구토의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구토용 비닐봉지는 꺼내기 쉬운 곳에 두라”는 김 대대장의 조언에 따라 왼쪽 팔뚝 주머니에 넣어뒀던 검정색 비닐봉지를 귀에 걸었다. 오는 6월 퇴역하는 F-4E 팬텀 전투기가 지난 9일 49년 만의 국토순례 비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공군 대한민국 공군의 F-4E 팬텀 4대가 지난 9일 49년 만의 국토순례 비행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팬텀 선회 기동 장면. /공군 제공 포항·울산·부산·거제 등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전초기지였던 한반도 남동부 주요 도시들을 거친 필승편대는 대구로 기수를 돌리기 위해 남에서 북으로 급선회했다. 2차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이 정도만 해도 못 버틸 지경인데, 폭탄 투하를 위해 급강하와 급상승 기동을 반복하는 실제 폭격 훈련에서 조종사들이 극복했을 역경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수원 기지 이륙 후 1시간 46분이 지나서야 대구 제11전투비행단에 착륙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말 그대로 녹초 상태가 됐다. 총 비행시간이 1300시간에 이르는 4번기 전방석 조종사 박 소령 역시 “평소 임무 비행 시간은 1시간 남짓”이라며 “고별 비행인 만큼 무척 힘든 임무”라고 혀를 내둘렀다. 전투기에 기름을 채우고, 조종사들의 배를 채운 후 필승편대는 ‘팬텀의 고향’ 공군 대구기지에서 오후 3시10분에 다시 날아올랐다. 대구기지는 1969년 팬텀F-4D이 미국·영국·이란에 이어 네번째로 도입됐을 당시 최초의 팬텀 비행대대가 창설된 곳이다. 2005년 F-15K가 도입돼 팬텀의 공대지 타격 역할을 물려받기 전까지 팬텀의 주 기지 역할을 했다. 이제는 F-15K가 굉음을 내며 한두시간 간격으로 뜨고 내리는 대구기지에서 팬텀은 마지막 국토순례 비행을 떠났다. 대구기지를 떠나고 10분 가량 흐르자 우리 공군력의 막내이자 기대주인 KF-21 2기가 합류했다. 수신기 너머로 KF-21을 뜻하는 ‘보라매’라는 콜 사인이 들려왔다. 팬텀과 KF-21은 델타Δ 대형을 이뤘다. 팬텀 편대장 ‘파파1′이 선두에, KF-21이 좌우 꼭짓점에 섰다. 가운데에서는 방위성금헌납기 도색을 한 팬텀4호기가 비행했다. 국토순례비행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F-15K 2기는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이 순간을 촬영했다. 공군의 과거팬텀, 현재F-15K, 미래KF-21가 한 자리에 모인 역사적 장면이었다. 1969년 도입 당시의 팬텀기는 지금의 F-35와 비견될 수 있는 미국 첨단 항공 기술의 집약체였다. 2005년 도입된 F-15K는 ‘타우러스’ 미사일로 대전에서 평양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킬체인’의 핵심 기체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공동개발 계약 이행 문제로 논란이 됐지만 KF-21은 우리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로, 향후 팬텀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될 핵심 기체다. 세 기종이 경남 합천에서 사천을 거쳐 전남 고흥까지 약 20분을 함께 날았다. 눈 아래로는 삼천포대교, 여수 충무대교, 한려수도가 펼쳐졌다. ‘국토를 지킨다’는 말이 구호가 아니라 팩트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고흥 상공에서 KF-21은 우측으로 급선회하며 이탈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조심히 복귀하십시요.” 대선배 팬텀 편대에 막내가 보내는 헌사로 들렸다. F-4는 떠나가는 KF-21에게 플레어를 사출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팬텀 편대는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소흑산도를 향했다. 팬텀은 1971년 소흑산도에 출현한 간첩선을 격침하는 작전에서 활약했다. 가거도에서 서해를 따라 북상한 팬텀편대는 이날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군산앞바다에서 수원기지를 향해 동쪽으로 마지막 급선회에 나섰다. 팬텀 편대는 급선회와 함께 축포처럼 플레어를 터뜨렸다. 수평계는 ‘수평’이라 알렸지만 급선회를 시작하자 급상승기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기자의 목이 앞으로 꺾였다. 중력의 2~3배 정도 되는 힘이 가해졌다.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 팬텀 편대. /공군 아파트 숲을 뚫고 이륙해 아파트 숲속으로 내렸다. 공군 관계자는 “도시가 확장하며 대구기지·수원기지 인근까지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했다. 팬텀 도입 이후 우리나라가 이뤄낸 번영의 방증이 공군기지 인근에 무수히 들어선 아파트인 것이다. 착륙하고 나서야 팬텀에 내려앉은 시간의 더께가 느껴졌다. 계기판, 백미러, 각종 결속 도구는 때가 타고 도색이 벗겨져 있었다. 반세기동안 영공을 지켰던 노병은 정정했지만 희끗해진 머리는 숨길 수 없어보였다. 우리 공군 첫 팬텀인 F-4D 도입으로부터는 55년이 흘렀다. 공군 관계자는 “다음달 퇴역식에 해외 취재진 100여 명이 취재 신청을 했다. 외국 언론도 팬텀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했다. 퇴역한 팬텀은 전국 곳곳에서 전시되거나 적 세력의 유도탄이나 각종 탐지장비들을 혼란시키고 교란하기 위한 디코이로 활주로 등에 배치될 예정이다. 이날 방위성금헌납기 당시 모습으로 도색한 팬텀을 몰았던 박종헌 소령은 “1975년 국민들의 성금으로 날아오른 ‘필승편대’의 조국수호 의지는 불멸의 도깨비 팬텀이 퇴역한 후에도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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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대구/양지호 기자 yang.jiho@chosun.com 국방부 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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