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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노병들 영웅제복 입고 채명신 장군 묘역 찾아…베트남전 참전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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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4-09-2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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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현충원에 모인 노병들, 묘역 행진 추모행사…채명신 장군 묘역 앞에 모인 전우들 기념사진도

1964년 첫 파병…오작교 작전 등 혁혁한 전과 올려…F-4 팬텀 등 선진 장비 도입, 군사력 발판

이화종 월남전참전자회 회장 "단순 숫자 아닌 그들의 희생, 소중한 역사이자 자산"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 오는 25일 정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앞, 짙은 갈색 재킷과 남색 바지를 단체로 맞춰 입은 ‘역전의 노병들’이 대열을 갖추고 모였다. 평균 연령 79세. 국가보훈부가 올해 지급한 ‘영웅제복’을 입은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이 이날 오후 열리는 베트남전쟁 참전 60주년 기념식에 앞서 장병 묘역을 행진하며 전사한 전우를 추모하고 파병 의의를 되새기기 위해서 한자리에 모였다.


대열 사이에 60년 전 정글을 누빈 낯선 부대기들, 주월한국군사령부기旗를 포함한 8개 참전부대기가 한데 모였다. 참전용사들은 각자의 출신 부대기로 일사불란하게 정렬하며 잠들어 있는 전우와의 만남을 기다렸다.

행진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임원진들이 ‘베트남전 영웅’ 고故 채명신 장군의 묘역에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채 장군은 "장군 묘역이 아닌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이 묻혀 있는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서울현충원 2묘역에 안장돼 있다. 이들은 채 장군과 전우들이 영면하고 있는 2묘역을 시작으로 3·7·6묘역과 육탄10용사 현충비를 거쳐 기념식장인 현충관까지 행진했다.

대열 선두에 있던 채기성 참전자회 이사는 "생존 전우들이 한데 모여 전사한 전우들의 묘역을 행진하는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전우를 먼저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에 눈물이 났지만, 참전용사 예우를 위한 영웅제복을 입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회고했다.

월남전참전자회 주관으로 개최된 이날 행사는 베트남전쟁 당시 주월한국군사령부 창설기념일에 맞춰 이뤄졌다. 행사는 현충원 참배와 월남전참전자 묘역 행진, 본행사, 참전 전우 만남의 장 순으로 진행됐으며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 국회의원, 중앙보훈단체장, 월남전참전자회 회원 등 약 8000명이 참석했다.

특히, 참전 전우 만남의 장에서는 파병 복귀 후 50여 년이 지나도록 소식을 몰랐던 전우들이 서로 만나 전우애를 나누는 감동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참전자회 관계자는 "이역만리 베트남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전우애를 오늘에 다시 느낄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대대적으로 했던 것처럼 언론에서 앞장서서 전우 상봉을 할 수 있는 ‘전우 만남의 장’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현충원에서 혼자 그리움을 달래는 참전용사도 있었다. 맹호부대현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 출신 김영섭 참전용사는 "파병 가는 배 안에서 입대 이후 소식이 끊겼던 고향 친구를 만났었다"면서 "함께 돌아가자고 약속하며 전쟁터에서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친구가 전사하면서 끝내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1964년 공산화 위기에 봉착한 남베트남을 돕기 위해 국군이 파병됐다. 베트남은 1954년 7월 21일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위 17도 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뉜 뒤 대립하고 있었다. 북베트남은 공산 통일을 목표로 비밀공작원과 반정부분자들을 조직화해 끈질기게 무력투쟁을 전개했다. 1960년 12월 20일에는 ‘베트남민족해방전선’, 이른바 베트콩을 결성해 남베트남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에 남베트남의 후견국인 미국은 1962년 2월 주월 미 군사원조사령부를 설치, 베트콩 소탕을 지원함으로써 직접 참전하는 단계를 밟았다. 그러나 전황이 더욱 불리하게 전개되자 린든 존슨 미 대통령은 대규모 전투부대 파견을 결정하는 한편 한국을 포함한 자유 우방국에 지원을 호소했다.

미국과 남베트남의 파병 요청을 받은 우리 정부는 베트남의 공산화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악영향과 대미 관계 등을 고려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목적으로 파병 준비에 돌입했다. 1964년 7월 31일 국회에서 파병 동의안이 통과되자 정부는 같은 해 9월 11일 제1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 요원을 중심으로 1차 파병을 단행했다. 2차 파병은 공병이 주축이 된 주월한국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이 1965년 3월 10일 이뤄졌다.

전황이 쉽게 호전되지 않자, 존슨 대통령은 특사를 한국에 보내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투병력 파병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결국 전투부대 증파안은 국회를 통과했고 파병부대로 선정된 맹호부대현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과 청룡부대현 해병대2사단가 각각 10월 9일, 11월 2일 캄란과 퀴논에 도착해 작전에 돌입했다.

국방부는 파병 규모가 2만5000명에 달하자 이들 부대를 통합 지휘할 사령부 편성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65년 9월 25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16호로 주월한국군사령부를 창설했다. 이어 1966년 3월 20일 2차 전투부대를 파병하는 ‘4차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국내에 남아 있던 맹호부대 26연대와 백마부대현 육군9보병사단 선발대가 각각 같은 해 4월 11일, 8월 30일 베트남으로 파병됐다. 이듬해 8월에는 해병대와 지원부대 병력 2900여 명이 증원됐다.

우리 군은 파병 기간 오작교 작전, 짜빈동전투, 안케패스 작전 등 수많은 작전을 전개하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들의 활약으로 우리 군의 위용과 우수성은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5000여 명의 전사자와 1만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고엽제 후유증 등 아물지 않은 상처도 여전히 남아 있다. 베트남 파병은 1973년 1월 23일 베트남 평화협정이 조인됨에 따라 1973년 3월 23일 모든 병력이 철수하며 마무리됐다.

베트남전쟁 파병은 현재의 부강한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결정적 계기 중 하나로 평가된다.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등에 따르면 베트남전쟁 참전에 따라 우리나라는 안보 강화와 경제적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안보 강화 측면에서는 주한미군 일부가 베트남전쟁에 투입됨에 따라 미국은 ‘한국군 장비 현대화’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달러 지원과 함께 선진 장비, 물자들을 한국 전선戰線에 배치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반도 상공을 50년 넘게 수호하고 퇴역한 F-4 팬텀이다. 당시 최신 전투기로 꼽히던 팬텀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미국으로부터 무상임대로 도입됐다. 공군은 F-4 도입을 바탕으로 북한에 비해 열세이던 공군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경제적 발전 측면에서도 도약의 발판이 됐다. 미국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따른 모든 비용을 부담했으며, 베트남에서 시행하는 건설 및 구호 사업에 소요되는 물자와 용역도 한국에서 구매하도록 했다. 1965~1973년 베트남 전쟁에 따른 우리 수출은 전체 수출액의 약 50%를 차지했다. 이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는 전체 외화보유액의 40%가 넘었다.

이화종 월남전참전자회 회장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제강국이 된 배경에는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1971년 3월 청룡부대현 해병대2사단 소속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이 회장은 "6·25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베트남으로 향한 젊은이들은 고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부상 당했으며, 또 일부는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현재도 고통받고 있다"면서 "이들의 희생 덕분에 67억 달러의 외화를 유입하고,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 국가 기반 시설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경제강국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은 단순히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역사이자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참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행사를 특별하게 준비했다"며 "참전용사들이 국가보훈부가 올해 지급한 영웅제복을 입고 현충원에 안장된 전우들의 묘역을 돌며 6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50여 년 만에 전우를 만나는 전우 만남의 장 행사를 통해서는 이역만리 베트남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전우애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회장은 참전용사들의 역사가 환갑이 된 만큼 예우 향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회장은 "참전유공자 예우는 부족한 실정"이라며 "고령화된 참전용사들이 건강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지원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며 "참전명예수당 승계와 의료 혜택 확대 등을 통해 유가족들이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참전자회는 참전용사와 유가족이 노후 생활을 함께하며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실버타운 운영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관계기관의 협조와 각계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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