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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불가능…전쟁 말자" DJ가 직접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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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4-09-2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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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적대 관계였던 남한 대통령의 북한군 사열은 상징적 의미가 컸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제공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 남짓 앞둔 2000년 5월의 어느 날, 김대중 대통령이 임동원 국정원장을 불렀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정원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관한 책과 영상물, 사진, 비디오 등 자료를 김 대통령에게 올렸다. 모두 부정적 내용 일색이었다. 알코올 중독이고, 말을 제대로 못 해 정상적 대화가 불가능하며, 음습하고 괴팍한 성격 파탄자라는 식이었다.




김 대통령은 임동원 원장에게 “국정원 보고가 사실이라면 이런 사람하고 정상회담할 수 있겠나. 회담해봐야 무슨 소득이 있겠나. 임 원장이 직접 평양에 갔다 오세요”라고 지시했다.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은 “그러면서 김 대통령은 세 가지 임무를 줬다. 첫째 김정일 위원장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정확히 파악해 오라는 것이고, 둘째 정상회담 의제를 북한에 설명하고 북쪽 입장을 파악해오라는 것이고, 셋째는 정상회담 뒤 발표할 공동선언 초안을 합의해오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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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7일 새벽, 임동원 원장은 대통령 특사로 극비리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휴전선을 넘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물론이고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용순 노동당 비서도 만나지 못했다. 마중 나온 임동옥 노동당 제1부부장과의 만남에서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문제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임 부부장은 ‘김 대통령이 평양에 오자마자 금수산궁전을 참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임동원 원장이 난색을 보이자 북한은 임동원-김용순 면담을 취소해 버렸다. 임동원 원장은 그날 밤 폭우가 쏟아지는 휴전선을 다시 넘어 서울로 돌아왔다. 청와대 관저에서 밤늦게까지 기다렸던 김 대통령은 빈손으로 돌아온 임동원 원장의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자서전에 썼다.



일주일 뒤인 6월3일 새벽, 임 원장은 다시 북으로 향했다. 이번엔 신의주에 머물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임 원장은 1시간가량의 면담과 뒤이은 4시간 남짓의 저녁식사·술자리를 통해서 김 위원장을 비교적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남한 인사로 김정일을 이렇게 길게 만난 건 임동원이 처음이었다. 임 원장은 “내가 말을 끌어내면 김 위원장이 답변을 이어갔다. 5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하면서 느낀 게, 국정원 보고가 잘못됐구나, 정상회담을 하면 성과가 있겠구나 하는 거였다”라고 말했다.



임동원 원장 인터뷰와 그의 저서 ‘피스메이커’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그 날 대화의 한 대목은 이렇다.



김정일 “김 대통령께서 평양에 오실 때 비행기로 오세요. 보안을 위해서 언제 오시는지 발표하지 마세요. 적들이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임동원 “아이고, 방북 날짜6월12일는 이미 발표를 했습니다.”



김정일 “아니, 언제 도착한다는 날짜를 왜 발표합니까? 그러면 도착 일자를 갑자기 하루 앞당기거나 하루 늦춰서 혼돈을 주는 방안을 강구해두는 것이 좋겠어요.”



임동원 “김 위원장님의 보안 우려는 십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일정 변경은 곤란합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신변 안전에 몹시 신경을 썼다고 임 원장은 회고했다. 실제로 북한은 김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이틀 앞두고 돌연 출발을 하루 연기해달라고 우리 쪽에 요청했다. 김 대통령은 예정보다 하루 늦은 6월13일 전용기 편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은 ‘기술적 준비’ 때문에 일정을 늦춘다고 발표했지만, 임 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공항에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그날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금수산궁전 참배를 임 원장에게 강하게 요구했다. 금수산궁전엔 고 김일성 주석의 주검이 안치돼 있었다. “금수산궁전은 반드시 정상회담 전에 방문해주셔야 합니다. 왜 남쪽 국민의 정서만 생각합니까? 우리 북쪽 인민들의 정서는 안 중요합니까? ... 나도 서울을 방문하면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할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임 원장은 밝혔다.



임 원장은 다음날 밤 서울로 돌아와서 곧바로 청와대로 향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김 대통령 질문에 임 원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말하기를 즐겼습니다. 두뇌가 명석하며 판단력이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명랑한 편이고 유머 감각도 대단했습니다.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듯했습니다. 말이 논리적이진 않지만 주제의 핵심을 잃지 않아서 좋은 대화 상대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연장자를 깍듯이 예우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명을 듣고 김 대통령은 “이제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2000년 6월14일 오후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두 정상이 정식 회담 전에 환담하며 웃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0년 6월13일 오전 10시 성남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 부부와 공식·비공식 수행원, 출입기자들을 태운 전용기가 평양으로 출발했다. 합의문 초안은 물론이고 금수산궁전 참배 문제로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은 불투명한 상태였다. 김 대통령은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또 야당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고난을 이겨낸 경험이 있었기에 평양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육성회고록에서 밝혔다.



평양에 도착해서도 북한 쪽은 금수산궁전 참배를 거듭 요구했다. 임동원 원장의 얘기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일이 디제이DJ 차에 탔을 때 그대로 금수산궁전으로 달리는 게 아닌가 조마조마했습니다. 북한은 완강했어요. ‘금수산궁전을 참배하지 않으면 상징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정상회담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합의문을 발표하면 금수산궁전을 방문할 수 있다고 북쪽에 전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전했는데도 ‘회담 후가 아니라 회담 전에 방문해야 한다’고 고집하더군요. 난감했습니다.”



임동원 원장은 임동옥 부부장에게 자신이 직접 쓴 메시지를 주며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대로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금수산궁전을 참배하면 정상회담 의미가 퇴색하며 합의사항 이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김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상주인 김 위원장에게 적절한 조의를 표할 테니 더는 금수산궁전 방문을 고집하지 않길 건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메시지를 김정일 위원장은 읽은 게 분명했다. 14일 평양 목란각 만찬 때 김정일 위원장이 임동원 국정원장을 헤드테이블로 불러 귓속말로 뭔가를 얘기하는 게 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혔다. 보수 진영에선 ‘간첩 잡는 국정원장이 간첩 수괴와 밀담을 나누는 게 말이 되냐’고 비난했다. 그때 김 위원장은 “임 원장 건의를 보고받았다. 임 원장이 이겼다”고 말했다고 임동원 원장은 밝혔다.



그날6월13일 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송호경 아태위 부위원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을 받았다. 박 장관은 북쪽이 제공한 차를 타고 인민궁전으로 향했다. 박 장관의 얘기다. “금수산궁전 참배 문제로 한참 줄다리기를 하다가 내가 그랬어요. ‘대통령님의 참배는 절대 안 된다. 한광옥 비서실장과 내가 대신 참배하고 베이징으로 먼저 서울에 돌아가서 구속되겠다.’ 그랬더니 송 부위원장이 ‘남쪽의 진의를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하더군요. 영빈관에 돌아오니까 대통령 내외가 아직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래서 보고를 하면서 ‘잘 풀릴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음날인 14일 아침, 송호경 부위원장은 박지원 장관에게 ‘이번만은 참배를 안하셔도 된다. 상부 지시가 있었다’고 통보했다. 김 대통령은 만경대 소년학생궁전을 참관하는 도중에 이 소식을 들었다. 불확실함을 안고 출발한 평양행의 결실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오후에 백화원 영빈관 회의실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 발언내용은 임동원 원장이 펴낸 ‘피스메이커’에 자세히 나와 있다.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고스란히 기록해 비공개 회의록으로 남겼다. 2급 비밀로 분류된 회의록은 단 10부만 인쇄했고, 그중 한 부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 기증됐다.



임동원 원장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정확하게 알리고 잘못된 해석을 막기 위해, 국정원의 사전 검증을 받아서 책에 실었다. ‘피스메이커’에 나온 디제이와 김정일의 발언은 거의 회의록과 똑같다고 봐도 된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15일 오후 평양 순안공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전용기에 오르기 직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작별의 포옹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실현되지 못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상회담에선 임동원 원장의 평가대로, 말하기를 즐기는 김정일 위원장이 얘기를 많이 했다. 김 대통령은 육성회고록에서 “전체 대화 중에 70%는 김 위원장이 말을 하고, 내가 30% 정도 이야기를 했을 거다. 내가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유는 회담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판단과 관련이 있다. … 그래서 좋은 합의문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동원 원장은 주한미군에 관한 김정일의 발언이 특히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제가 대통령께 비밀사항을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군 주둔 문제입니다. … 1992년 초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남과 북이 싸움 안 하기로 했다.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댔습니다. 역사적으로 주변 강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를 탐내어 수많은 침략을 자행한 사례를 들면서 ‘동북아시아의 역학관계로 보아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해줬어요. 제가 알기로 김 대통령께서도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그런데도 왜 언론매체를 통해선 계속 미군철수를 주장하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김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열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김 대통령은 나중에 육성회고록에서 “혹자는 우리가 북한과 관련한 내용을 미국과 철저하게 공유하면 북한이 꺼릴 수도 있다는 진단을 하는데,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원하기 때문에 한·미 공조가 잘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길 원한다. 그래야 한국 정부가 북·미 관계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이 미국에 ‘북한과의 접촉내용을 숨소리까지 얘기해주라’고 지시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김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미국의 웬디 셔먼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셔먼은 김 대통령과 임동원 국정원장에게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지만, 그걸로는 좀 부족했던 모양이다. 박지원 장관에게 만나자고 했다. 박 장관의 얘기다.



“웬디 셔먼이 저녁을 같이하자고 연락을 했어요. 김 대통령에게 ‘어떻게 할까요? ’물었더니 ‘만나라. 만나서 숨소리까지 얘기해주라’고 해요. 그래서 광화문 미국대사관에서 만찬을 하면서 싱가포르와 베이징 접촉내용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다음날 또 전화가 왔어요. 저녁에 와인 한잔할 수 있냐고요. 어제 다 얘기했는데 또 만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거절했죠. 김 대통령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이 사람아, 셔먼은 자네가 한 말을 아직 믿지 못하는 거야. 술 마시면서 다시 듣고 싶은 거야’ 그러시는 거예요. 셔먼에게 전화를 걸어 초대에 응하겠다고 했죠. 셔먼과 와인 마시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다 했습니다. 너무 많이 마셔 대사관을 나온 건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 기억이 없어요.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아내가 ‘대통령님 전화에요’라며 깨우는 거예요. 깜짝 놀라 일어났더니 아침 8시가 넘었더라고요. ‘대통령님, 제가 과음을 해서 늦잠을 잤습니다.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랬더니 디제이가 ‘잘했어. 이제 믿겠네’라며 전화를 끊으시더라고요.”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디제이가 중재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임동원 원장은 분석했다. 임 원장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선 디제이의 대미 영향력을 활용해야겠다, 김대중-클린턴 관계가 아주 좋으니까 이에 의지해서 문제북-미관계를 풀겠다는 생각을 김정일 위원장은 했다.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퇴임을 앞둔 2000년 12월 평양을 방문하려 했지만 조지 부시 당선자와 공화당의 반대로 포기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클린턴은 2003년 11월 방한했을 때 김대중도서관에서 퇴임한 디제이를 만났다. “내 임기가 1년만 더 남았더라도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졌을 텐데, 그걸 실현하지 못하고 김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고 배석했던 임동원 원장은 전했다. 그때 클린턴 방북이 이뤄졌다면 북-미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을 거고, 지금 같은 북핵 위기와 군사적 대립·긴장은 사라졌을 것이다. 김 대통령은 육성회고록에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매우 아쉽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뒤 발표한 남북 공동선언. 맨 밑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서명이 보인다. ‘김대중자서전’에서 재인용


2000년 7월3일 김 대통령이 시도지사 오찬을 앞두고 적은 국정노트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다. 김 대통령은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남북은 서로 흡수통일과 북침, 적화통일과 남침의 불안감을 갖고 있는데 이건 사실 모두 불가능합니다.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내용을 국정노트에 적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lt; 시도지사 오찬 00.7.3 gt;



1. 그간의 노고, 방북중 00의 염려 없게 - 감사



2. 남북관계 개선 - 시작에 부진, 인내·성의·일관성



3. 그러나 후퇴는 없다 - 역사적 대사건임은 분명



① 전세계의 관심과 환영. 마지막 냉전. 평화 기여 ② 북한 - 국민적 대환영. 내일에의 기대 ③ 남한 - 안도감3군사 방문, 97%의 지지 ④ 역사적 소명 - 세계화 시대00, 남북 ⑤ 북이 수락한 이유국내 사정, 국민의정부에의 신뢰, 세계 여론 4. 가장 큰 성과 - 남북간의 이해와 신뢰의 시작 ① 다시 전쟁하면 공멸, 전쟁 말자 ②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불가, 불가능 ③ 미군 주둔의 필요성. 핵, 미사일. ④ 비방 중상 말자. 15일 즉시 중단북. 남도 방송. 괴뢰 ⑤ 자주는 외세 배격 아니다. 나의 방북, 햇볕정책. 4대국 한쪽 택하고 한쪽 적 하면 자주自主 어렵다 ⑥ 통일에의 접점 찾은 것 큰 의의 ⑦ 이산가족 ⑧ 경제협력의 중요성국민의 안전, 분단비용 절감, 남한 경제에서 0000, 남북 공생 경제성장 ⑨ 문화·예술·체육 교류 ⑩ 각 시군도 교류 협력 준비하기를 - 차분히



5. 21세기와 한국의 운명 ① 19세기의 교훈 ② 21세기 - 역사의 소명남북 화합, 지식정보화



6. 대통령의 5대 지표



7. 여러분의 협력만이 성공의 길 ① 여야 초월 역사의 큰 흐름 동참하자지역감정 못하면 ② 인생도 한번, 대통령도 한번 ③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오늘의 역사를 후일에 남기자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7월3일 김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시도지사들과 오찬을 했다.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김 대통령의 국정노트를 보면,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를 ‘남북 간 이해와 신뢰의 시작’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다시 전쟁하면 남북 모두 공멸이니 전쟁하지 말자’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이 말은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했던 얘기였다. 김대중이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루려 했던 목표도 바로 그것이었다.



※ 이번 회를 끝으로 ‘박찬수의 DJ 국정노트’ 연재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박찬수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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