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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행진곡 정율성은 영웅대접,압록강 행진곡 한유한은 잊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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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4-09-2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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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행진곡’광복군 한유한, 기념비도 없고 현충원에 안장 못해

군가기념사업회 ‘대한민국 군가의 태동과 발전’ 주제 제2회 군가 세미나

광복군 ‘한유한’과 북한군 ‘정율성’ 비교 등 주제발표와 토론 병행

"군가기념관 건립하고 한유한 ‘압록강 행진곡’ 등 기념비 세워야"



‘나가! 나가! 압록강 넘어, 백두산 넘어가자’ 대표적인 광복군가 ‘압록강 행진곡’의 노랫말이다.

지난 24일 오후 ‘전쟁기념관 이병형홀’에서는 광복군가와 초창기 우리 군가를 조명해 보는 뜻깊은 세미나가 열렸다. 군가는 군대 문화의 기본일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안보 역사와 함께하는 국민의 노래인 만큼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등 군대를 보유한 여러 나라에서는 큰 의미를 두고 기억하거나 국민들에 애창돼 왔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유독 군가가 방치되다시피 해왔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속에서 많은 군가들이 사랑받았는데도 전쟁기념관이나 다른 군사박물관에도 군사는 전시돼 있지 않다.

‘대한민국 군가기념사업회’이사장 정덕기 전 백석대 음악대학장와 ‘서울안보포럼’이사장 김민석 전 국방부 대변인이 공동 주관한 이날 세미나에서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는 ‘군가 작곡가 한유한본명 한형석과 정율성본명 정부은’ 주제발표를 통해 "대부분 외국곡 선율에 가사를 붙였던 독립군가와 달리 한유한 선생은 광복군에 투신한 유일한 작곡가로 ‘압록강 행진곡’, ‘조국 행진곡’ 등을 창작한 군가 개척자였던 반면, 비슷한 연령대의 정율성은 중국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중국군가 작곡가로, 또 광복 후에는 북한군 창건과 6·25전쟁 시기 ‘조선인민군행진곡’, ‘조선인민유격대전가’ 등 다수의 북한 군가를 짓고 활동하면서 북한군의 사기를 앙양시켰다"며 동시대 대표적 군가 작곡가의 대조적인 행적을 비교했다.

민 교수는 "한유한과 정율성은 같은 점도 다른 점도 많다. 1910년대 한국에서 출생했으며, 항일 군가 작곡가,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 잊혀졌다가 뒤늦게 알려진 작곡가라는 점, 현재 기념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점이 닮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다른 점은 한유한은 일제강점기 중국 국민당과 민족진영인 광복군에서 활동하다가 광복 후 대한민국으로 귀국했으며, 광복 후에는 음악 활동보다는 주로 아동연극 활동과 중국어 교수로 활동했고 국적은 대한민국"이라며 "그에 비해 정율성은 중국 공산당원 일원으로 마오쩌둥 부대에서 활동하다가 광복 후 북한으로 귀국했으며 북한에서 북한 군가를 개척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다시 간 중국 국적의 조선족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의병가 독립군가는 대부분 기존의 노래에 새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인 데 비해 광복군가는 우리나라 사람이 작곡한 노래라는 특징이 있다. 1942년 한유한은 ‘국기가’작사 이범석라는 광복군가를 발표했다.

민 교수는 "한유한이 작곡한 광복군가의 역사적 의미는 첫째 모두 광복군이 만든 가사를 노랫말로 작곡했으며, 둘째 우리나라 창작 군가의 시원이며, 셋째 광복군가라는 새 장르의 음악을 개척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유한의 광복군가는 일종의 군가이지만, 군가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서정적인 노래, 예술성이 높은 가곡풍의 노래, 우리 음악의 미개척 분야인 서사적 가곡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한유한의 광복군가는 대한민국 창작 군가의 시원이었다"고 분석했다.

한유한은 1996년 86세에 별세해 경남 양산의 솔밭산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본인 유언에 따라 현충원에 안장되지 않았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가로 서훈됐다. 한유한은 2011년 국가유산청전 문화재청에 의해 한유한이 편찬을 주도한 ‘광복군가집 제1집’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반면 정율성은 광복과 함께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에 따라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가 북조선로동당에 가입했고, 1946년 1월부터 황해도 도당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음과 동시에 황해도 해주음악전문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이후 김일성도 만났다. 1949년 ‘해방행진곡’‘조선인민군행진곡’ 등 군가를 작곡하기 시작, 6·25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인민유격대전가’ 등 여러 편의 인민군 군가를 발표했다. 중국 하얼빈에 정율성 기념관이 있으며 북한에서는 1991년 ‘음악가 정율성’이란 영화를 제작해 상영하기도 했다.

1996년 10월 국립국악원이 정율성동요발표회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광주시 양림동에서 정율성 생가 표지석 제막식, 2005년부터 광주에서 정율성 국제음악제, 2008년 생가 근처에 정율성 거리전시관이 설치됐다. 2009년 생가 부근에 정율성로라는 도로명이 생겼다.

특히 광주시는 대한민국에 항적한 정율성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48억 원을 들여 동구 불로동 소재 ‘정율성 생가’ 추정지에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이 밖에도 ‘정율성 국제음악제’ ‘정율성동요제’ 등 온갖 명목으로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세금을 쓰고 있었다. 이는 광주시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 산하 자치구인 남구 역시 또 다른 ‘정율성 생가’ 추정지 인근에 정율성로路를 만들고, 정율성 흉상을 해당 거리 초입에 설치했다. 광주 남구, 동구와 함께 또 다른 ‘정율성 고향’인 전남 화순군도 12억 원을 들여 ‘정율성 고향집’을 만들고, 정율성이 잠시 다녔다는 능주초에 ‘대형 벽화’와 함께 각종 기념 시설을 조성했다. 이 역시 전부 세금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광주시는 애초 문제의 발단이 된 ‘정율성 역사공원’을 포기하지 않았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 소재 정율성로 역시 그대로다.

토론에 나선 최영훈 전 공군정훈공보실장은 "적군의 군가를 지어 침략전쟁을 일으킨 북한군 정율성에 대해서는 기념관, 역사공원 등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벌이는 반면, 침략자들을 물리치며 불렀던 우리 군가는 방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마디로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연배의 남한 출신 천재 음악가라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정율성은 골수 사회주의자로서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중국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었고 한유한 선생은 광복군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우리나라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드러난 정율성의 발자취는 기록상으로 명백하다. 골수 사회주의자이자 중국과 북한의 고위공산당원 겸 고위급 장교로 주요 사건의 시공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6·25전쟁에 직접 참전했고, 북한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의 사기와 전투의지를 고양하는 대표적 군가를 다수 작곡해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사후까지도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전 실장은 "대한민국을 결단내려는 공산적국의 군대와 군인들을 위해 작곡활동을 하며 살아온 사람을 단지 예술적 뛰어남과 명확하지 않은 항일운동 흔적, 남한 태생이라는 이유중국,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자기 고향으로 간 점에서 고향인 광주를 버리고 북으로 간 것은 그가 진짜 공산주의자 였음을 간접 입증만으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역사적 재평가를 한다는 것은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한국 내에서 정율성 기념 사업은 이미 특정 지자체와 단체에 의해 활발히 추진되거나 진행되고 있다"며 "음악제, 기념비, 도로명, 동상 건립, 출판, 전시관, 생가보존, 역사공원 설치 등 매우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 군과 관련 기관 단체에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사실 인식과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율성과 비교해 한유한 선생과 같이 대한민국 군대의 정통성과 부합하는 천재 군가 작곡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것이 오늘의 서글픈 현실"이라며 "더욱이 한유한 선생은 김동진육군가, 용진가, 6.25의 노래, 행군의 아침 등 다수 군가 작곡, 김성태공군가 작곡등 여전히 친일 논란의 족쇄에 갇혀있는 유명 작곡가들에 비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모든 면에서 떳떳하고 고결한 인물이다. 듣기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웅혼한 감동을 주는 ‘압록강 행진곡’을 비롯해 여러 곡의 광복군가를 작곡한 그는 중국국민혁명군과 한국광복군의 최일선에 복무하며 얻은 체험과 영감으로 ‘압록강행진곡’을 작곡했기 때문에 더욱 우리들 가슴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최 전 실장은 "한유한 선생과 같이 우리 대한민국과 국군을 위해 헌신한 분을 기념은커녕, 기억조차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며 "적어도 우리 군에서는 위대한 독립투사이자 애국자, 문화예술사업가, 천재 작곡가인 한유한을 기리고 추모하는 동상 건립, 전시회, 공연이나 학술행사 등 기념사업들을 꾸준하게 추진해야 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군가의 역사와 작사자, 작곡자를 제대로 모르면 우리의 역사는 특정 세력에 서서히 점령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비극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를 기획한 군가 전문가 정성엽 박사는 "선진 여러 나라와 달리 400곡에 이르는 우리 군가에 대해 어떤 정부 기관과 군사박물관도 기념하는 곳이 없는 것은 모순된 현실"이라며 "우리 군가의 가치 선양과 리뉴얼 작업을 통해 K팝 못지않은 K-밀리터리 송Military Song의 우수성을 발굴, 발전시켜 나가자"고 요청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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