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뇌수술 3번…환자에 더 빨리 가려고 운동화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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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갈등 이후 업무 폭증… 강릉아산병원 신경외과장 동행기
양구현46 강릉아산병원 신경외과장이 7일 오전 8시 이 병원 6층 신경외과 병동에 들어섰다. 짧은 반백발 머리는 헝클어졌고, 두 눈은 충혈돼 있었다. 양 교수는 “최근 2주간 집에 딱 한 번 들어가서 잤다”고 했다. 평소에도 바빴지만 ‘의료 파행’ 이후엔 병원 옆 집에도 들어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간호사에게 밤사이 환자 상황을 보고받았다. 환자 피부와 대변 사진을 살핀 뒤 병실을 돌며 회진병실 진료을 시작했다. 7일 강릉아산병원 6층 신경외과 병동에서 양구현 신경외과장이 회진을 돌고 있는 모습. 그는 응급 상황에 대응하느라 최근 2주간 집에 딱 한 번 들어가 잤다고 했다. 신발도 운동화를 신었다. 응급 상황 발생시 미끄러지지 않고 더 빨리 환자에게 가기 위해서다. /김지호 기자 양 교수는 검정 등산복 바지에 러닝화를 착용하고 있었다.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미끄러지지 않고 더 빨리 환자에게 가려면 등산복과 운동화가 제격이라고 했다. 등산화를 신을 때도 있다. 오전 9시쯤 14명 환자 회진을 마쳤다. 이어 혈관조영실로 내려갔다. 걸음이 경보競步 선수처럼 빨랐다. 3.5kg 무게의 납복방사능 보호복을 급히 입고 조영실에 들어갔다. 병상엔 왼쪽 뇌혈관 일부가 막혀 수술을 앞둔 할머니가 누워 있었다. 양 교수는 환자 몸에 직경 2mm 이하의 카메라 달린 관을 넣어 막힌 뇌혈관 주변을 촬영했다. 모니터를 응시하는 양 교수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진 않네. 다행이다.” 조영실을 나온 그는 무릎을 만졌다. 납복을 입고 서서 시술하고 나면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오전 10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자 합시다. 집중하고.” 그는 메스로 환자의 두피를 절개하고, 두개골 일부를 동그랗게 잘라냈다. 하얀 뇌경막을 잘라서 벌린 뒤 고정시켰다. 수술 현미경에 눈을 대고 바늘 구멍만한 절개를 해가며 출혈이 있는 혈관을 찾아들어갔다. 모래를 하나씩 헤집으며 사금砂金을 찾는 작업 같았다. 맨눈으로 보기 힘든 직경 1.5~6mm의 혈관을 다루는 양 교수는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눈을 현미경에 고정한 채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오른손을 천천히 움직여 옆에 선 간호사에게서 수술용 칼, 가위를 받아 수술 부위로 가져갔다. 문제의 혈관 주변에서 갑자기 피가 솟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석션피 흡입 해주시고. 문제 없어요”라고 했다. 기지개 한 번 켜지 못한 수술은 7시간 만인 이날 오후 5시에 끝났다. 양 교수는 수술 후 환자와 함께 1층 혈관조영실로 내려갔다. 수술이 잘됐는지 혈관 상태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모니터를 응시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환자 부모들에게 갔다. “경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아마 따님은 걸어서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노부부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그는 이날 아침·점심을 먹지 않았다. 큰 수술을 앞두고는 신경이 곤두서 식욕이 없어진다고 했다. 양 교수는 전날에도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응급 환자 수술을 했다. 이후 낮 12시 30분까지 외래 진료를 한 뒤 점심을 먹으려 했지만 뇌경색 응급환자가 들어왔다. 응급 수술을 끝내고 곧바로 뇌출혈 환자 수술을 했다. 오후 6시쯤 수술을 마치고 병원 옆 집에 가서 시래기 된장국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전공의 이탈로 밤에 환자 관련 지시를 내리는 일도 양 교수가 직접 하고 있다. 그는 4평 연구실에서 다음 날 수술 계획을 점검하고 2인용 회색 소파에 누워 쪽잠을 잤다. 그는 “요즘은 병원 연구실에 있는 게 집에 가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는 “밤에 응급환자가 들어올 수 있고, 몇 번씩 병동에서 ‘환자가 열이 난다’ ‘두통이 심하다’는 전화도 온다”며 “이젠 전공의도 없어 제가 직접 밤새 환자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요즘은 내과 의사인 아내와 초등학생 딸과 아들이 병원 1층 카페로 양 교수를 종종 만나러 온다고 한다. 그는 “뇌혈관 응급환자는 빨리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번도 다른 병원으로 보낸 적이 없다”며 “제가 마지막 의사라고 생각하고 사생결단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양 교수는 영동 지역에서 뇌혈관 수술과 시술스텐트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로 통한다. 그는 “강원도에 환자가 사는 게 죄가 돼선 안 된다는 게 제 신념”이라고 했다. 의대 증원과 전공의 반발에 대한 생각도 말했다. 양 교수는 “신경외과 전공의들은 바쁜데, 2000명 증원이 본인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깊이 생각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싶다”며 “다소 성급하게 환자 곁을 떠나는 결정을 한 게 아닌가 한다”고 했다. 또 “정부가 최근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 패키지는 구체적이지 않다”며 “지금은 성적 1등 인턴이 피부과를 간다. 정밀한 대책이 없으면 늘어난 의사들도 다 이렇게 인기과로 빠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교육의 질이 걱정”이라며 “저 역시 매일 외래진료와 수술 등으로 시간을 다 쓴다. 지금도 전공의 가르칠 시간이 없는데, 증원이 되면 더 힘들어지고 피해는 환자들이 볼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만약 의대 증원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은 필수 진료 의사들이 더 많이 나온다면 2000명이 아니라 2만명 증원이 돼도 상관 없다”고도 했다. 정부가 발표한 의료사고특례법에 대해선 “최선을 다한 의사는 보호해 줘야 한다”면서도 “일부 성형외과에서 마취 환자가 호흡을 하지 않는데도 늦게 대처한 사례처럼 기본기 없는 의사들이 낸 의료사고는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양 교수는 “벼랑 끝 환자를 살리는 게 의사라고 생각해서 신경외과를 전공했다”며 “나중엔 동해나 삼척처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진료를 하고 싶다. 1시간만 더 빨리 치료했다면 예후가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이털생명 의사 내과·외과·산부인과뿐 아니라 응급의학과·신경외과·흉부외과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진료과 분야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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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조백건 기자 loogu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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