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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이 본 건국전쟁…이승만의 5가지 빛과 3가지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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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24-02-1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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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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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계기로 그의 업적과 과오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 전 대통령의 주된 공으로 농지개혁,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의무교육 도입 등 5가지를, 과오로는 민간인 학살, 부정 선거 등 3가지를 꼽는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오후 당 관계자들과 영화를 본 뒤 기자들과 만나 "이 전 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것, 농지개혁을 해낸 것.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며 "그분의 모든 것이 미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시대적 결단이 있었고, 충분히 곱씹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후보 때인 2021년 11월 전남 나주 주민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이승만 정부가 나쁜 짓만 한 것이 아니다"라며 "성과가 있었는데 최대 성과가 농지개혁"이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의 첫번째 성과는 한 위원장과 이 대표가 거론한 농지개혁이다. 농지개혁은 1950년 3월 공포된 농지개혁법을 근거로 단행됐다. 정부가 대지주의 농지를 지가증권을 발행해 매입하고 이를 소작농들에게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골자였다. 북한이 1946년 무상몰수 방식의 토지개혁을 실시한 점, 토지개혁을 원하는 농민이 많은 점 등이 개혁의 배경이었다. 개혁을 통해 전근대적 경작제도인 소작제가 철폐됐고, 각 농가가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농지개혁은 부의 양극화 완화와 중산층 형성 뿐 아니라 인적 자본 축적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대형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객원 연구원이 2021년 한국경제학보에 실은 논문 한국의 농지개혁이 인적자본의 축적에 미친 효과: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1945년 해방 당시 47%였던 경북 지방 초등학생 취학률은 1948년 70%, 1955년 80%로 높아졌다.

우 연구원은 이 논문에서 "농지개혁은 소득효과 또는 자산효과를 통해 취학률 상승에 유의미한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농지개혁을 통한 취학률 상승은 이승만 정부에서 단행한 원 포인트 농지분배, 미군정의 소작료 정책 등 여러 조치가 누적된 결과"라고 했다.

두 번째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이다. 이승만 정부는 1953년 10월 미국과 한·미동맹의 출발점이라고도 불리는 이 조약을 조인했다. 이듬해 11월 발효된 조약은 대한민국이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원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북한의 적화통일 의지를 꺾고 한국이 아시아의 제1세계 국가로서 발전하는 원동력을 확보해 남북간 체제경쟁에서의 승리를 가능케했다는 후대의 평가를 받는다.

세 번째로는 원자력 인프라 구축을 꼽을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전력난 해결을 위해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원자력 업무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원자력법을 공포했고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를 설치했다. 국민소득 80달러에 그치던 시절 이승만 정부는 1인당 국비로 훈련비 6000달러씩 써가며 미국으로 전문가 유학을 보내 관련 기술을 익히게 했고, 한국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이 산업을 위한 안정적이고 값싼 에너지원을 확보하고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씨앗을 뿌린 셈이다.

네 번째로 이승만 정부는 전국민 초등학교 6년 의무교육을 실시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는 제헌 헌법 제16조가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광복 당시 2800개였던 전국 초등학교 수는 1960년에는 4600여개로 늘었다. 전 국민에게 남녀 불문 계층 불문 동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평등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 전 대통령의 마지막 업적은 광복 전 독립운동이다. 그는 실력양성·외교론에 기반한 독립운동가였으며 열강의 힘을 빌려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1919년 9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됐다. 그는 1930년대 국제연맹 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청원했으며, 태평양전쟁 발발 후 미국에 임시정부를 한국의 대표로 승인해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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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2.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한편 이 전 대통령에게도 과오는 있었다. 이승만 정부의 첫 번째 과오는 민간인 학살이다. 제주 4·3사건 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으로 대표되는 민간인 학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4·3사건은 남로당을 진압하겠다며 제주에 파견된 토벌대가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2023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위원회는 이 사건 희생자 수를 1만4738명으로 집계했다.

국민보도연맹은 정부가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등록해 보호하겠다며 만든 단체다. 다만 조직이 확대되면서 실제 좌익과 관계없는 사람도 많이 가입하게 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가입자를 소집해 구금했고 남쪽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학살이 일어났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희생자 수는 20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 당시 소집된 청년 장병 5만명이 추위·굶주림에 사망하는 국민방위군 사건도 발생했다.

두 번째는 정치 테러, 부당한 개헌을 통해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가 1952년 임시정부 부산에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 의원들을 체포한 부산 정치파동이 대표 사례다. 야당 의원이 구금된 상태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이 전 대통령은 같은 해 8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1954년에는 대통령 3선 제한 철폐를 핵심으로 하는 사사오입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이 전 대통령은 3선 연임에 성공했다.

세 번째로 이 전 대통령과 자유당은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주도했다. 이 전 대통령이 측근인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저지른 부정선거로 유권자 매수, 투표함 바꿔치기 등 부정이 자행됐다. 전국적으로 표출된 부정선거 규탄 여론이 김주열 열사 사망 사건을 도화선으로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하야한 뒤 미국으로 망명했다.

김재원 가톨릭대 국사학과 겸임교수는 머니투데이 the300더300과의 통화에서 "독립운동가 이승만이 강조했던 외교가 현실에서 중요했고, 농지개혁으로 대지주만 이득을 취하는 구조는 사라졌다"이라며 "동시에 민간인 학살에 책임이 있고, 본인의 권력 유지를 위해 개헌을 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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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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