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아이에 "지구에 물이 없다면?" 영작 문제…사교육비 29조원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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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코리아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어학원이 만 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레벨 테스트’ 영작 기출 문제다. 아이들은 이 학원에 다니려면 이런 작문 문제를 포함해 단어·문법·독해 문제를 약 1시간 만에 풀어야 한다. 일대일 영어 면접도 한다.
매년 말 치러지는 레벨 테스트에 수백 명이 응시하지만 입학 정원은 30~40명 수준이다. 한 번 불합격하면 수개월간 재응시도 못 한다.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 이른바 ‘7세 고시만 5세’라고 불린다. 이런 7세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만 4세 이하 아이들이 별도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고, 심지어 자녀를 레벨 테스트에 합격시키는 팁을 가르치는 ‘학부모 대상 인터넷 강의’까지 등장했다.
만 5세 어린이 10명 중 8명이 각종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간 통계 사각지대에 있던 영유아 사교육비 현황을 정부가 조사해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교육의 저低연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교육부는 13일 이런 내용의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7~9월 만 6세 미만 영유아 가구 부모 1만32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로, 내년 본조사국가승인통계를 하기 전 시험 조사한 것이다.
조사 결과, 작년 7~9월 3개월간 전국 영유아들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은 8154억원이며, 전체 사교육 참여율은 47.6%였다. 영유아 둘 중 하나는 사교육을 받는 것이다. 사교육에 참여하는 영유아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이다.
만 2세 이하사교육 참여율 24.6%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14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만 3세50.3%는 31만4000원, 만 4세68.9%는 38만4000원, 만 5세81.2%는 43만5000원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사교육 참여율이 높아지고 비용도 늘어났다.
과목별 1인당 사교육비는 영어가 41만4000원으로 가장 높았고, 취미·교양12만7000원, 체육12만7000원, 음악12만2000원 순이었다. 어린이집·유치원 대신 가는 반일제 영어 학원이른바 ‘영어 유치원’의 1인당 월평균 비용은 154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1년으로 계산하면 1854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간 평균 대학 등록금683만원의 세 배에 가깝다.
◇초중고 사교육비 29조원
정부는 이날 ‘2024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작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조1000억원7.7% 증가했다. 학급별 사교육비 총액은 초등학교가 약 13조2000억원, 중학교가 7조8000억원, 고등학교가 8조1000억원이다.

그래픽=김현국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 기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9만2000원에 달했다. 학급별로 보면 초등학생이 50만4000원으로 전년 대비 4만1000원9% 늘어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중학생 월평균 사교육비는 62만8000원으로 전년 대비 3만2000원5.3%, 고등학교는 77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3만3000원4.4% 증가했다.
가장 사교육비를 많이 쓰는 과목은 영어26만4000원로 나타났다. 다음은 수학24만9000원, 국어16만4000원, 사회·과학14만6000원 순이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가정일수록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했다.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7만6000원이고, 300만원 미만 가구는 20만5000원이었다.
전문가들은 공교육 부실과 정권마다 바뀌는 교육 정책이 사교육비를 치솟게 한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의대 증원처럼 입시에 큰 영향을 주는 정부 정책이 정치권 상황에 따라 요동친 것도 영향을 줬다는 의견이 많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30~40대인 학부모들은 정권마다 교육 정책이 바뀌며 ‘실험 대상’이 된 경험을 한 세대이자, 그 난관을 사교육에 의존해 극복한 세대”라며 “공교육 불신이 가장 심한 세대이기 때문에 그 경험을 자녀에게 투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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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태준 기자 pyotaej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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