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 6·25때 서울대병원 1000명 총살…진실화해위 이제야 학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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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경찰 잘못만 들춘 진실화해위, ‘北 학살’ 20년 만에 첫 규명

6·25전쟁 당시 서울대병원에서 북한 인민군이 우리 부상 군인과 민간 환자 1000여 명을 살해한 사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후문에 세워진 위령비.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라는 제목이 붙은 이 위령비는 1963년 6월 20일 세워졌다./ 조인원 기자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진실화해위는 내달 초 전체 회의를 열고, 인민군 43사단과 4사단 5연대 소속 북한 인민군 50여 명 등이 1950년 6월 28~29일 서울대병원에서 이틀간 우리 군과 민간인 환자 1000여 명을 무차별 학살했다고 공식 판단할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서울대병원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사건을 목격한 고故 유월임씨 조카 최롱82씨가 지난 2022년 6월 진실 규명을 신청해 그해 9월 조사에 들어갔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을 조사한 미 극동사령부 ‘한국전쟁범죄조사단Korean War Crimes Division·KWC’의 80쪽짜리 결과 보고서에 담긴 북한 포로 및 사건 목격자들 진술 등을 토대로 현장 조사 및 기타 문헌 자료를 비교·대조하는 방식으로 이 사건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6·25전쟁 발발 나흘째인 1950년 6월 28일 새벽 1시. 서울로 진입하던 북한군 50여 명은 상부로부터 서울대병원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곳에서 치료받는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환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이었다. 부상이 마찬가지로 심각했던 북한 부상병들을 치료할 공간을 확보하고자 함이었다. 이 학살엔 우리 국민도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오전 9시에 도착한 북한군은 먼저 가 있던 서울 성동구 노동당본부 소속 9명에게 다발총과 소총 수십 정을 받았다. 3시간 뒤인 낮 12시부터 북한군은 서울대병원 1~3층 병실 곳곳을 다니면서 환자들을 무차별 총살했다.
학살은 이튿날인 29일에도 이어졌다. 새벽 6시 북한군은 입원실에 남아있던 국군 부상병 180여 명을 병원 건물 뒤 야산으로 데려가 몰살했다. 부상병들이 “총살하려면 속히 총살하라”고 외치자 북한군들은 “응, 그렇게 해주마”라며 방아쇠를 당겼다. 북한군 4명이 수류탄을 던지는 동시에 50명은 총을 4~5발씩 쏘았다. 북한군은 국군 시신을 시체 안치실과 야산, 쓰레기장에 방치했고, 일부는 한강변에 묻었다.

‘서울대병원 집단 학살 사건’ 당시 희생된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시신 32구가 묻힌 지점에 꽂힌 표식. 희생 당일인 ‘1950년 6월 28일’이라고 적혀 있다. 사건 이듬해 미 극동사령부 한국전쟁범죄조사단이 이 곳을 촬영해 북한 인민군 학살 증거로 보고서에 첨부했다./국립중앙도서관
정부의 이번 사건 규명은 전쟁 전후 민간인·군인 희생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설립된 독립 조사 기관인 진실화해위가 지난 2005년 출범한 지 20년 만에야 이뤄졌다. 학살이 발생한 지 75년 만이다. 이 사건은 이미 미군의 조사 등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던 사건이다. KWC는 1954년 5월 해체되기 전까지 북한 포로 진술, 현지 주민 탐문, 현장 조사 등을 진행했고, 관련 보고서도 외부에 공개돼 있다. 1963년 서울대병원 후문에는 ‘이름 모를 자유전사自由戰士비’라는 제목의 위령비도 건립됐다. 그러나 국가보훈부가 이 위령비를 현충 시설로 지정한 건 사건 60여 년이 지난 2012년이었고, 정부 차원 조사는 70여 년이 지난 2022년에야 시작됐다.
이는 우리 정치권 및 역사계가 국군이나 미군에게 당한 민간인 피해만 집요하게 들춰왔던 과거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 출범한 1·2기 진실화해위는 보도연맹이나 여순 사건 등 우리 군과 경찰 등에게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만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반면 북한이 저지른 사건은 사실상 외면하다시피 했다. 이번 사건 조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시작됐다.
이달 초 진실화해위는 2년 6개월 조사를 마치고 지난 25일 소위원회를 열어 안건을 통과시켰다. 내달 전체 회의에선 박선영 위원장 및 여야與野가 각각 추천한 상임위원 2명, 비상임위원 6명 등 총 9명 중 재적 위원 과반 찬성을 얻으면 최종 통과된다.
진실화해위는 유족들 보상을 위한 국회 차원 입법, 정부의 공식 사과 요구, 추모 사업 지원 및 역사 교과서 반영 및 교육을 권고할 예정이다. 박선영 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엄연한 북한의 학살 범죄를 역사적으로 규명·규정하는 데 의미가 크다. 국내는 물론 유엔UN과 각종 인권 운동 국제기구들에 결과를 제출해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대병원 집단 학살 사건
6·25전쟁 당시 서울대병원을 지키던 국군 1개 소대와 입원해 있던 환자 및 병원 직원 1000여 명이 북한군에 의해 집단으로 학살되거나 산 채로 묻힌 사건.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병원 뒤쪽 이들이 묻힌 장소에 ‘이름 모를 자유 전사의 비’가 세워져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항일 독립운동과 6·25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권위주의 통치기에 일어난 인권침해 등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적 조사 기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출범해, 2010년 활동을 마쳤다. 202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개정돼 그해 12월 2기 위원회가 출범했고, 올해 11월 활동이 만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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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 기자 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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