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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몰렸다, 주민들이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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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71회 작성일 24-06-0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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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유명 관광지 거주 주민들 “일상을 보호해달라” 호소

‘소곤소곤 대화해 주세요’를 다른 나라 말로 어떻게 쓰는지 알고 싶다면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가면 된다. 이 동네 담벼락마다 ‘조용히 해달라’는 경고문이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와 중국어로 적혀 있다. 한옥을 구경하러 가는 동네지만, 경고문은 최신식일뿐더러 글로벌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마을 주민들이 고통을 토로하고 있다. 관광객이 몰려들어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과잉 관광,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때문이다.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은 후지산 인증샷 찍으러 오는 관광객을 막겠다고 차단막을 설치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세계 최초로 ‘도시 입장료’ 정책까지 도입했지만 관광객 증가를 막지 못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조용히 해주세요’ 표지판 뒤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관광객들은 한옥집 대문 앞에서 땀을 식히고 간식을 먹었다. /이미지 기자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조용히 해주세요’ 표지판 뒤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관광객들은 한옥집 대문 앞에서 땀을 식히고 간식을 먹었다. /이미지 기자

이탈리아 도시 포르토피노는 인증샷을 찍는 사람에게 최대 275유로약 41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호텔 신축을 금지하기로 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상인들은 “관광 산업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관광객 때문에 피곤한 주민들은 “관광객은 이제 그만”을 외친다.


◇관광객 찾아오니 주민은 짐 쌌다

지난 3일 오후, 북촌 한옥마을의 중심이라 불리는 북촌로 11길. 한복을 차려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거리 곳곳에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문구를 든 안내원이 서 있었지만 히잡을 쓴 여성들은 한옥 대문 앞에 앉아 음료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고, 깃발 든 인솔자를 따라온 중국인 관광객들은 서로를 부르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캐리어를 끌고 온 관광객은 걸음마다 ‘드르륵 드르륵’ 소음을 남겼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한옥 스테이와 카페, 일반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뒤섞인 탓에 주민들이 거주하는 빌라나 다세대주택은 한국어와 영어로 쓰인 ‘외부인 출입 금지’ ‘흡연 자제’ 경고판을 금줄처럼 둘렀다. 일부 골목은 아예 ‘진입 금지’ 표지판을 길 한가운데에 놓아 동선을 차단했다. 좁은 골목을 게걸음으로 걷더라도, 불청객을 막겠다는 의지가 훨씬 강한 것이다. 지난 5년간 북촌 거주 인구는 12.1% 줄었다. 서울 전체 인구 감소율3.1%보다 9%포인트 높다.

전국 최대 규모 한옥촌인 전주 한옥마을 상황도 비슷하다. 한옥을 개조한 숙박업소인 한옥 스테이들이 ‘주민 거주지, 절대 조용히’ ‘흡연 금지’라 쓰인 안내문을 세웠지만 민원은 끊이지 않는다. 결국 주민들은 떠나고 상인들만 남았다. 전주 한옥마을이 있는 전주시 풍남동 인구는 2014년 5891명에서 올해 4월 3612명으로 38.7% 줄었다.

주민들이 떠난 집은 카페와 식당으로 변했다. 주요 상권에 있는 상가 대부분은 주택용에서 상업용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를 변경한 곳이다. 전주에 사는 김숙희씨는 “기존 주민들이 대부분 떠났고, 외국인 입맛에 맞는 일식·중식 같은 식당이 생겨 한옥마을의 정체성도 모호하다”며 “주말이면 인근 도로가 마비돼 이 근처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피란민촌村 부산 감천문화마을 역시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교통 혼잡, 쓰레기 투기 등으로 불편을 호소하던 사람들이 동네를 떠나 2010년 3161명이었던 주민이 작년 말 기준 1462명으로 반 토막 났다.

◇맛집 골목에서도 “제발 나가세요”

서울 합정동 한 골목에 세워진 ‘호소문’. ‘골목에서 빨리 나가달라’는 표지판이 4개나 있었다. /이미지 기자

서울 합정동 한 골목에 세워진 ‘호소문’. ‘골목에서 빨리 나가달라’는 표지판이 4개나 있었다. /이미지 기자

관광지만이 아니다. 대기 줄로 인기를 증명하던 식당들도 주민들의 골칫덩이다. 이날 저녁 서울 마포구 합정동. 맛집으로 소문난 돈가스 집 골목에 ‘이 골목에서 빨리 나가라’는 내용의 호소문이 4개나 세워져 있었다. ‘당신들의 소음은 주민들을 힘들게 하고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당신들의 작은 소리도 집 안은 큰 소리로 울립니다’도 적혀 있었다. 상인들도 주민들의 불편을 의식했는지 ‘주변 이웃 분들을 배려해 달라’는 공지를 붙이고, 가게 앞에서 줄을 서는 대신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도록 안내했다.

음식점과 카페, 술집이 임차료가 싸고 분위기가 고즈넉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는 요즘 트렌드는 갈등을 증폭시킨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가게가 주택가로 침투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개인 간 갈등이라 불법 주차·쓰레기 투기 금지 안내판을 붙이는 정도로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잠실 일대의 송리단길, 연남동과 망원동, 성수 카페 거리의 상황도 비슷하다. 신촌에 거주 중인 회사원 이지운씨는 “이화여대 앞에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와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골목 맛집 찾아오는 한국인들마저 시끄럽게 굴어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출입 제한·지역 분산 등 대책 강구

지자체도 대책을 내놓는다. 종로구청은 오는 7월 북촌 한옥마을을 특별 관리 구역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2018년 관광 허용 시간제평일·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를 도입한 데 이어 북촌 일대 관광버스 진입 제한과 특정 시간 이후 관광 시 과태료 부과 등을 검토 중이다. 전주시는 한옥마을로 몰리는 관광객을 인근 호수로 분산하기 위한 ‘케이블카 설치 타당성 조사’를 시작했고, 부산 사하구는 마을 주민을 위한 상생 재원 마련, 차로 확대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특정 지역에 사람이 몰리면서 수용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아직도 우리 정부는 ‘올해 방한 관광객 2000만명’ 같은 숫자를 정책 목표로 내놓는다”며 “지역별 수용력을 기반으로 정책을 마련하고, 관광 구역과 시간대 분배, 주민의 참여 방안 등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름 휴가철이 오고 있다. 여행을 떠난 주민은 관광객이 되고, 관광객은 다시 돌아가 주민이 될 테니까. 당장 실현 가능한 해법은 ‘배려’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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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기자 image071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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