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45년 베테랑, 인지능력 셀프 테스트 해보곤 화들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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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 만든 운전능력 검사 앱
인지·운동 테스트와 설문으로 구성 고령 운전자 스스로 경각심 갖게 돼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바이오·의료 창업 혁신 플랫폼 ‘바이오허브’ 사무실. 운전 경력 45년의 베테랑 택시 운전기사 손양욱73씨가 휴대전화 앞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스타트업 ‘투엔티닷’이 고안한 운전능력 검사를 받는 중이었다. 검사 첫 단계인 인지능력 테스트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간단하게 이뤄졌다. 실제 도로 운전을 한다고 가정하고 휴대전화 화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가로등이 도로 양 옆에 위치한 신호등과 일직선을 이룰 때 화면을 터치하는 방식이다. 1분여간 총 40회의 터치가 끝나자 검사도 종료됐다. 이 검사는 국립재활원이 뇌손상 환자에게 제공했던 운전 인지평가 검사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곧바로 운동능력 테스트가 진행됐다. 손씨는 지지대에 부착된 휴대전화에서 앱을 실행하고 전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자 카메라가 손씨의 신체 전신을 인식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후 손씨는 앱의 음성 신호에 맞춰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1분 내에 25회의 동작을 완료하는 방식이었다. 테스트 결과 46점 이하일 경우는 위험, 47~54점일 경우 경계, 55점 이상일 경우 양호 판정을 받게 된다. 위험 등급을 받은 운전자는 갓길 주차 시 인도와의 거리 등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투엔티닷 측의 설명이다. 손씨는 인지능력 테스트 40회 가운데 10회를 맞춰 ‘위험’ 등급을 받았다. 그는 “처음 검사를 하다보니 익숙하지 않아서 수치가 낮게 나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손씨에겐 “평소 운전을 조심히 해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잇따르는 고령 운전자 사고
지난달 1일 16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 이후 최근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관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운전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검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고령 운전자는 면허 갱신 시 인지능력 검사를 받는다. 다만 이 검사만으로는 실제 주행 능력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도 고령자에 대한 운전능력 평가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이와 별도로 민간 영역에서도 관련 검사 개발 작업이 한창이다. ‘투엔티닷’이 창안한 운전자 능력 평가가 좋은 예다. 김하영 투엔티닷 대표는 “부모님이 1년에 한두 번 작은 접촉사고를 내는 걸 보며 모두의 안전을 위해 운전자가 스스로 운전 능력을 자각할 수 있는 서비스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투엔티닷의 운전자 능력 테스트에 참가한 임해수51씨와 송용석51씨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두 사람은 운동능력 시험의 경우 합격 기준25회을 통과했다. 그러나 인지능력 테스트총 40회에선 각각 12회, 9회를 성공하는 데 그쳤다. 임씨와 송씨의 인지능력은 각각 100점 만점에 37점과 34점에 그쳤다. 임씨는 운전 경력 25년의 베테랑임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임씨는 “최근 고령 운전자의 운전 미숙으로 인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렇게 스스로 운전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씨도 “나이가 들면 확실히 운전 능력이 떨어지는 건 맞는 것 같다”며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 법제화를 통해 운전 능력 검사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관련 규제를 강화해야 할 듯하다”고 강조했다.
실효성 있는 검사 부재
정부는 현재 만 75세 이상 운전자의 경우 면허 갱신 전 의무적으로 교통안전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 가운데 하나로 인지능력 검사도 실시한다. 사실상 고령 운전자에게 치매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테스트다. 정부는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를 2019년부터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다만 이 검사가 운전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사실상 인지능력 검사 자체의 효과가 거의 없다”며 “외국에선 검사 결과에 따라 면허 시험을 못 보게 하고 있지만, 한국은 얼마든지 재시험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운전능력 평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운전자가 스스로 경각심을 느끼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김 교수는 “무작정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 면허를 박탈하기보다 그들의 생계권과 이동권도 보장할 수 있는 융합적 대안이 필요하다”며 “그들이 자발적으로 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능력평가 보편화
이미 선진국에선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운전능력 평가가 활발히 시행 중이다. 미국자동차협회AAA의 고령 운전자 프로그램은 온라인상에서 검사를 진행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오스트리아는 비엔나 검사를 통해 운전자의 안전운전 적합도를 살펴보고 있다. 이 시스템에는 심리학을 포함해 21가지 검사가 포함돼 있다. 글로벌 기준에 뒤처진 한국의 고령 운전자 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은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2월 발간한 자료에서 “현행 운전 적격성 평가 방식은 고령자의 실제 운전능력을 평가하는 데 미흡한 측면이 있다”며 “해외 국가는 실차 주행을 통한 운전능력 평가와 조건부 면허 제도를 연계해 고령자의 이동성과 교통안전의 균형을 꾀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경찰도 부랴부랴 관련 제도 마련에 나섰다. 현재 경찰청은 36억원을 투입해 ‘고위험 운전자에 대한 운전능력 평가 기술개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경찰은 올해 말까지 연구를 마치고 고위험 운전자에 한해 조건부 면허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는 운전자의 운전능력에 따라 야간이나 고속도로 운전 금지, 최고속도 제한, 첨단 안전장치 부착 등 조건을 부여해 운전을 허용하는 제도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 [국민일보 관련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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