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 보내도 "번호표 뽑아라" 경찰 발 묶인 사이…사기 친 돈 다 숨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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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강준 기자, 최지은 기자, 김미루 기자, 김지은 기자, 김지성 기자] [MT리포트] 범죄수익 환수, 타이밍에 달렸다 上
[편집자주] 사기 범죄가 늘면서 피해 금액도 증가하고 있다. 돈을 빼돌리기 위한 범죄수익 세탁 방법은 진화하고 있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인력과 제도는 뒤처져 있는 현실이다. 범죄수익은 반드시 토해내게 돼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사기 범죄를 줄이는 길이다.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사기관의 노력과 제도 개선책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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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범죄수익 추적하는 경찰에…공무원 "번호표 뽑고 기다리세요"
━ #지난달 한 시도경찰청 소속 범죄수익추적수사팀 수사관은 사기 피의자의 재산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수도권의 한 주민센터에 방문했다. 해당 센터에 피의자의 가족관계증명서 제공 공문을 보냈지만 "직접 받으러 와야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받아서다. 담당 주민센터 직원을 만났지만 이 직원은 수사관에게 "번호표 뽑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 수사관은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다 반나절을 무의미하게 보냈다. 사기 범죄자들의 범죄수익을 추적하는 경찰들이 겪는 일상이다. 경찰은 사기 피의자가 재판을 받기전 범죄수익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자산을 동결시키는 기소전 몰수·추징 보전을 검찰을 통해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자료 제공이 지지부진해지면 그동안 사기범은 범죄수익을 숨길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만약 가상자산쪽으로 수익을 감추기 시작하면 찾기 더 어려워진다. ◇범죄수익 추적, 10일내 끝내야 하는 속도전인데…느린 유관기관 협조에 애타는 경찰
범수계는 속도전인 범죄수익 추적 수사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범죄수익 추적은 대개 피의자 체포 시점부터 시작되는데, 경찰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10일이다. 이 기한 안에 검찰에 넘기지 않을 경우 경찰은 피의자를 석방해야 한다. 피의자들은 이 기간을 최대한 활용해 범죄수익을 세탁하려 노력한다.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고급 아파트 등 부동산을 비롯해 부동산 분양권, 자동차, 예금부터 골드바·백화점 상품권 같은 현물도 활용한다. 경찰은 피의자가 특정 자산이 범죄수익으로 거둔 점이라는 걸 △소유관계 확인 △거래 흐름 분석 등을 거쳐 입증해야 한다. 근거가 부족하면 경찰이 기소전 추징 보전을 법원에 신청해도 기각될 수 있다. 문제는 피의자 범죄수익 관련 정보가 여러 부처와 기관에 분산돼 있다는 점. 경찰은 국세청 같은 기관과 달리 피의자의 재산 보유 현황을 자유롭게 확인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매번 영장을 신청하고 발부받아 집행하거나 유관 기관에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같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도 경찰은 하루 종일 지자체에 협조를 읍소해야한다. 은행에서 계좌내역을 제공받으려 해도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담당자를 붙잡고 반복해서 설득해야 한다. 타 기관에 범죄수익 추적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동안 피의자는 사기 범죄로 벌어들인 재산을 빼돌릴 시간을 확보하는 셈이다. 한 시도청 경찰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에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이 구축돼 있는데, 가족관계증명서 등 자료는 세정기관과 달리 경찰은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도 해당 전산을 통해 바로 볼 수 있는 상황이라 기술적으로 다른 서류를 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며 "당위 면에서도 기관에 공문 보내면 받을 수 있는 자료인데, 공문 없이 전산망을 이용하면 범죄 수익 추적 시간이 더욱 단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담인력도 태부족…"영장 발부 절차, 유관기관 협조 요청 절차 등 간소화 필요"
전문가들은 다른 기관에 협조를 구하는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피의자 한 명에 대한 사기사건이라면 영장 발부를 한 번만 받아도 모든 재산 내역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거나, 관세청 등 세정당국과 경찰청 간 직원 파견을 보내 수사 협조를 위한 핫라인 구축도 거론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어 범죄수익이라도 제대로 환수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사기 공화국이라 할 만큼 사기 범죄가 많고 처벌 수위는 낮다.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정비해 경찰에 범죄수익을 최대한 환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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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 좀 대신" 이런 알바까지 쓴다…돈 빼돌리는 법도 가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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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경찰은 A씨로부터 제보를 하나 받았다. 골드바를 대신 구매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는데 어딘가 의심스럽다는 내용이었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북경찰서가 집중 수사를 벌인 결과, 아르바이트 업체는 자금 세탁 일당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저금리 대환 대출을 미끼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뒤 수익을 중국으로 빼돌리려 했다. 아르바이트 직원들 통장을 대포 통장으로 이용해 돈이 들어오면 골드바를 구입하게 한 뒤 2차·3차 수거책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경찰은 추적 끝에 국내 총책 황모씨 등 12명을 검거했다. ◇보이스피싱 수익금 175억… 백화점 상품권으로 자금 세탁 경찰이 범죄 수익 환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범죄 조직들의 수익 세탁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골드바, 백화점 상품권 등을 구입하거나 가상자산을 이용하는 등 수법이 다양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해 10월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 3명과 대만 환치기 조직 조직원 3명을 포함한 총 21명을 사기 등의 혐의로 검거하기도 했다. 환치기는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계좌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계좌로 돈을 넣고 다른 국가 계좌로 빼내는 범행 방식을 말한다. 일당이 범죄 세탁을 위해 선택한 것은 백화점 상품권이었다.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은 국내 보이스피싱 범죄 수익금으로 백화점 상품권을 구매한 뒤 다시 판매해 1차로 범죄 수익금을 세탁했다. 국내 피해자들의 1인당 피해액은 최소 수백만원에서 최대 1억원에 달했다. 그 다음으로는 대만에 거점을 둔 국제 환치기 조직이 국내에 있는 무등록 환전소를 통해 테더코인이라는 가상자산을 매수한 후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매도하는 방식으로 2차 세탁해 범죄 수익금을 해외로 빼돌렸다. 일당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인근에 일반 사무실로 꾸며진 무등록 환전소를 운영하며 범행에 나섰다. 이와 같은 수법으로 빼돌린 범죄수익금만 최소 175억5000만원이다. 경찰은 이 중 71억원을 압수했다. ◇코인은 안전한 세탁 방법?… "경찰은 모두 잡아낸다"
경찰은 지난해 3월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자금세탁 조직 총책인 권모씨 등 25명을 검거했다. 권씨는 2020년 8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무역 법인, 환전소를 설립하고 보이스피싱 범죄 자금을 무역 대금으로 바꿔 해외로 송금했다. 이후에는 가상자산을 구매해 국내에 보내는 방식으로 1조5000억원 규모 가상자산 환치기를 벌였다. 당시 경찰은 금융 거래 내역, 세무 자료, 통신 자료 등을 모두 분석해 강남 사무실과 을지로 환전소 등 10곳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범죄 수익 10억원 상당을 압수했으며 범죄 수익 9000만원에 대해서도 추징 보전했다. 대전경찰청 역시 지난해 5월 1조6000억원 불법 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받는 40대 총책 등 16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2021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허위 법인 사업자 9개를 설립하고 온라인 결제대행사PG로부터 가상계좌 생성 권한을 전달 받아 6만4602개 가상 계좌를 피싱했다. 이후에는 범죄 조직에 이를 유통해 1조6000억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세탁했다. 경찰은 PG 회사를 압수수색하고 계약서, 가상계좌 거래 내역, 민원 관리 엑셀 파일 등을 확보했다. 경찰은 13억원 상당을 기소 전 추징 보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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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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