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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갇힌 갈비뼈 사자가…흙 밟고 낮잠을 잡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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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70회 작성일 24-06-0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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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동물 복지에 진심인 청주동물원…사람과 싸워가며 더 나은 환경 만들어
시멘트 대신 흙과 풀 깔고, 동물 떠나면 채우지 않고 공간 넓혀
갈 곳 없는 동물들 구해, 비좁은 실내서 죽어가던 갈비뼈 사자의 안온한 여생
"동물원 오는 분들이 지적해야 해요, 동물들 그리 두지 말라고"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세상이 처음 불편해졌지요. 직접 체험해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며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가 보이도록 힘쓰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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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콘크리트 바닥의 비좁은 실내 동물원에 갇혀 있었던, 사자 바람이.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 갈비 사자라 불렸었다. 그랬던 바람이가 청주동물원에 온지 1년여 만에 이리 건강해졌다. 풀과 흙을 맘껏 밟고, 햇볕을 쬐며 평온하게 졸고 있다./사진=바람이 보면서 멍 때리다 함께 졸고 있는 본분 잊은 남형도 기자
갈비뼈 사자라 불렸다. 갈비뼈가 보일 만큼 삐쩍 말라서였다. 이름은 바람이었으나 이름답게 살지 못했다. 바람, 하늘, 비, 구름, 흙. 자연 중 그 어떤 것도 누리지 못했다.


사자. 포효가 8㎞씩 쩌렁쩌렁 울리고, 달리는 속도가 빠르면 시속 80㎞. 먹이를 찾으러 24㎞씩 가기도 하는 야생 동물.

그런 동물이 갇혔던 곳은 김해 부경동물원. 가로 14미터, 세로 6미터.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 비좁은 공간. 거기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했다. 무려 7년이나 그랬다. 무기력했다. 숨 쉬는 것마저 버거워 보였다. 꽉 막힌 작은 창문이 유일한 창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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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었던 바람이. 살리기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사진=김해시청
2004년 태어나 이미 20살이 됐다. 죽어갔다. 여생이 타들어갈 때 구하러 간 이들이 있었다. 청주동물원 사람들이었다.

지난해 여름 구조돼 1년여가 흘렀다. 바람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청주동물원에 가봤다.

여름 내음이 짙어지던 늦봄. 오르막길을 오르자 야생동물 보호구역 간판이 보였다. 그 안에, 갈색 갈퀴가 멋진 수사자가 저만치 보였다. 바람이었다. 저 멀리 작게 보여 좋았다. 그렇단 건 여기가 꽤 크단 것이므로.
어떤 포즈인지 쉬이 와닿지 않겠지만, 바람이가 발라당 누워 있는 모습. 잠이 많아질 나이. 여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리 지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사진=바람이의 중요 부위를 모자이크 못해줘서 미안한 남형도 기자바닥은 흙이었다. 곳곳에 토끼풀과 나무가 심겨 있었고, 공간은 이전 실내동물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바람이는 배를 까고 풀과 흙 위에서, 새소리가 잘 들리고 바람이 솔솔 부는 땅에서, 세상 곤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동물원 비버 죽고 들었던 말…"새로 바꿔줄게, 너무 맘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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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의 청금강앵무새의 정형행동. 스트레스 등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걸 뜻한다. 지속적으로 털을 뽑는 행동을 했다. 자연적 서식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을 때 자주 나타나는 것./사진=어웨어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
사육곰 철창에 하루 갇혀본 뒤2022년 9월 3일 자, 사육 곰 철창에 갇혀…10시간을 보냈다 기사 참조 가두는 모든 것에 거부감이 심했다. 동물원 동물들을 다 꺼내고 싶었다. 그건 지극히 단순한 발상이었다. 야생이란 집을 잃은 동물들이 다 어디갈까 싶어서.

정말 힘든 건 그걸 매일 마주했을 때, 그게 괴로운 고민이었을 이들. 청주동물원 변재원 수의사처럼.

변 수의사는 어느 아쿠아리움이 첫 직장이었다. 거기엔 실내동물원이 딸려 있었다. 환경이 열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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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보호색으로 숨은 올빼미를 찾고 있는 변재원 수의사./사진=이미 올빼미 찾은 남형도 기자
비버가 동물원에 들어오던 날이었다. 변 수의사는 새 동물을 기대했다. 동물원에 도착한 비버는 수십 개의 상처가 있었다. 비용을 줄이려 좁은 케이지에, 짐짝처럼 욱여넣어진 줄 몰랐다. 옮겨지는 긴 시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서로 물어뜯었다. 그의 책에 이리 썼다.

비버는 내 손안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자책감과 좌절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결과를 겨우 받아들임과 동시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마음을 다 추스르지도 못하고 결과를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자 들려 온 대답은 뜻밖에도 고생했다. 곧 다른 새 비버로 교환될 것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마라였다.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수의사 저, 6월 출간 예정
부천의 실내동물원에서 발견한, 사자의 정형행동. 반복해서 계속 비좁은 공간을 오가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신입 수의사로 쉴 새 없이 분노하고 포기하던 시간이었다. 햇빛 없는 실내 사육으로 동물은 자주 병들고, 아픈 동물들은 뒷방으로 옮기기 급급했다. 아쿠아리움을 그만두고 동물병원에서 일하며, 외국으로 가야겠단 생각까지 하고 있을 때.

변 수의사가 별수 없다고 여겼던 일들에 맞닥뜨려 싸우는 이가 있었다. 청주동물원의 김정호 수의사였다. 국내 최초로 사육곰을 구조하고, 예산을 투입해 하나하나 동물 복지를 높이며, 시스템을 깨며 장쾌하게 나아가던 사람. 그걸 보고 변 수의사는 청주동물원으로 갔다. 김 수의사에 대해선 이리 말했다.

"팀장님김정호 수의사은 온종일 동물만 생각해요. 자기 건강 관리도 안 하시고요. 자기 먹는 건 진짜 달걀 한 개, 사과 이렇게 드시고…."



동물들 지키려고…사람과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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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건, 여기서 일한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한때는 잘못된 길을 갔더라도 다시 옳은 방향으로 되돌아 가서 행동했단 것.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사진=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형도 기자
청주동물원 초기였던 2001년부터 있던 사람. 그게 김 수의사였다. 처음엔 동물 다치면 치료해주고 그 정도였단다. 그러다 2017년 팀장이 된 뒤부터 동물 복지를 위해 환경을 바꿔나갔다. 계기가 있었을지 물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느낀 날이 길었다.

"동물들이 죽으니까요. 계속 죽고, 다치고. 마지막은 제가 만졌었고요. 갈기늑대도 있었는데 2년도 안 돼 죽고요. 워낙 시설이 안 좋아 그렇구나 느꼈어요. 시멘트 바닥에서 오래 살면 이상한 거잖아요. 저는 동물을 치료하고 잘 아는데, 저건 고통스러운 모습인데, 보는 사람들은 좋다고 깔깔거린다,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싫은 소릴 자꾸 해야 했다. 동물을 지키려니 사람과 이리 싸워야할 줄 몰랐다. 그렇게 안 해도 돈 나온다, 왜 유난이냐, 난 이만큼만 하겠다, 그런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고. 정작 동물들은 아군이 되어줄 수 없었다. 그게 외로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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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바깥에서 바라볼 때,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나무 등으로 배려한 흔적들./사진=남형도 기자
팀장인 김 수의사 말을 안 듣는 무리가 생겼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까지 당했다. 무혐의가 나왔다. 부침을 겪으며 떠날 사람들이 떠났다. 동물에 진심인 이들이 대신 모였다. 변 수의사와 홍성현 수의사, 좋은 복지사들까지.

청주동물원은 청주랜드 사업소 내 팀 정도의 작은 조직. 그건 외려 장점이었다. "그래, 한 번 해봐"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속도가 빠르게 붙기 시작했다.



늑대가 직선으로 신나게 뛰고, 붉은 여우는 땅굴을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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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사육장의 예전 모습왼쪽과 개선한 현재 모습오른쪽. 사육곰을 구조해 바꿔나간 게, 청주동물원 동물 복지가 높아지는 시작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청주동물원
2018년 사육곰반달가슴곰 구조를 시작으로 환경을 하나씩 바꿔나갔다. 우선 동물을 사지 않은 지 5년이 됐다. 숨지고, 갈 수 있는 동물은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그리 비게 된 공간은 부수어 기존 동물을 위해 넓혀주었다. 최대 130종이 넘었던 동물들이, 70종300마리로 줄었다.

늑대사에 도착했다. 다섯 녀석이 있단다. 기다랗고 널찍한 오르막 공간. 거길 따라 자유로이 오가는 걸 봤다. 철조망 겉엔 키만한 수풀들을 빽빽히 심어두었다. 사람들로부터 편안하게 해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변 수의사가 말했다.

"4개로 나뉘어 있던 동물사를 하나로 합친 거예요. 늑대들이 직선 주행을 좋아하거든요. 이걸 길게 해주기 전엔 한 번도 못 봤었는데요. 진짜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전력 질주를 하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장난치고, 뛰어다니고. 활동량 자체가 달라졌어요."

CCTV로 그걸 본단다. 수의사들도, 동물 복지사들도 동영상을 찍는다. 다 같은 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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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바닥만 있었던 붉은여우사 예전 모습왼쪽과 방사장을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만든 현재 모습오른쪽. 숨을 곳이 많도록 수풀도 일부러 길게 놔두었단다./사진=남형도 기자
붉은 여우들이 사는 곳에 왔다. 3년 전까진 시멘트 바닥으로 된 내실만 있었다. 거기서 잠만 잤단다. 그 아래쪽에 널따랗게 방사장을 만들어 흙을 밟게 해주고, 나무와 수풀을 심었다. 고민이 다 담겨 있었다. 김 수의사가 말했다.

"풀밭에 풀도 잘 안 깎아요. 여우들이 좀 숨기도 해야 하니까요. 저기 보시면 굴 파 놨잖아요. 많이 파요. 거기서 자는 걸 좋아해요. 시멘트 바닥에선 그걸 못 했어요."

방사장을 자유로이 걸어다니는 붉은여우./사진=남형도 기자그로 인해 많은 게 달라졌다. 자는 모습만 봐도 다르단다. 그냥 무기력해서도 자지만, 편안해 보인다고. 예전에는 불안해 보이고, 하루를 어떻게 견디나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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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물새장의 모습. 멀리서 보는 걸로도 충분하다. 새가 편안할 수 있다면./사진=망원경 보다가 눈이 빙글빙글 돌았던 남형도 기자
물새장은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원래 관람객이 들어가 볼 수 있었으나, 조류독감을 계기로 아예 출입 금지 구역이 됐다. 대신 망원경을 두어 멀리서 볼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은 불편해졌지만, 물새들은 한결 편해졌다. 그 덕분에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비행하는 아름다운 장면도 볼 수 있게 됐다.



"엄마, 호랑이가 안 보여"…그게 좋은 동물원이야


천천히 거닐다 사람을 본 뒤 내실로 들어가버린 청주동물원의 시베리아 호랑이 호순이. 그럴 수 있는 공간은 어느 동물에게나 필요하다./사진=남형도 기자나무와 수풀과 흙이 우거진 공간을 호랑이가 천천히 걸어 다녔다. 17살 시베리아 호랑이 호순이였다. 앞에서 변 수의사와 내가 떠들자, 호순이는 싫은 듯 내실로 휙 들어가 버렸다. 그걸 보며 변 수의사가 말했다.

"얘는 사람을 진짜 싫어해요. 원래는 호랑이사 뒤쪽도 관람할 수 있게 했다가, 저희가 다 막아버렸어요."변재원 수의사

"아, 왜요?"기자

"동물들도 사람들 눈을 피하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 뒤쪽에 가서 편히 쉬라고요.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변재원 수의사

"동물이 들어가고 싶은데, 못 들어가게 막아둔 동물원도 있어요?"기자

"웬만한 데가 다 그럴 거예요. 내실 문을 닫아버리면, 사람을 피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지요. 이유는 하나에요. 보라고 전시하는 거죠."변재원 수의사

부천 실내동물원 호랑이의 모습. 아주 비좁은 공간을 계속 맴도는 정형행동을 하고 있다. 피할 곳조차 없어 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아주 좁다란 곳에 두어, 언제든 가까이에서 보고, 맘껏 사진 찍고, 먹이를 줄 수 있게 해둔 부천 실내동물원이 생각났다. 거기 있던 호랑이는 10분에 100바퀴씩 좌우로 빙빙 돌고 있었다.

그날 청주동물원 호랑이는 그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덥기도 더웠기에. 그걸 모르고, 호랑이를 보러 온 엄마와 아이가 유리창에 붙었다. 두리번거리던 딸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호랑이 보고 싶은데 안 보여." 그걸 듣고 속으로 대답했다.

숨고픈 호랑이 마음을 존중해 주는 거야. 그게 더 좋은 동물원인 거란다.



갈비 사자 바람이 보러 제주에서도 와…동물 생각하니 더 유명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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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물원의 두 사자 도도와 먹보. 둘은 정말 사이가 좋았다고./사진=청주동물원
이미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멸종 위기인 동물들.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보호하고 치료해주고. 예전처럼 동물 전시에 방점을 찍은 게 아니라, 그리 역할을 바꿔나가고 있는 거였다.

갈비뼈 사자로 유명한 바람이를 구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지난해 초여름, 김 수의사가 바람이를 만나러 갔다. 상태를 본 뒤 청주동물원으로 입양하자고 했다.

동물원엔 사자 두 마리가 있었다. 암사자 도도와 수사자 먹보였다. 도도와 먹보는 단짝이었다. 좁은 평상에서도 몸을 붙이고 떨어지지 않았다. 언젠가 도도가 수술했을 땐, 먹보가 내실 문을 긁으며 울었다. 그러던 먹보가 나이들고 아파 병원에 실려가던 날이었다. 이모 청주동물원 해설사가 그날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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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보는 노령으로 건강이 악화돼 결국 안락사 되었다./사진=청주동물원
"먹보가 앰뷸런스에 실렸어요. 그런데 도도가 그 숨소리라도 듣겠다고, 자꾸 기대는데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먹보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땐 이미 바람이가 동물원에 와 있을 때였다. 사자들이 함께 살다 죽으면 밥도 안 먹는단 말도 있었는데, 바람이가 먹보의 자릴 자연스레 대신하게 되었다. 도도와의 합사를 계획했다.
7년 넘게 콘크리트 실내동물원 바닥에 갇혀 지내다, 청주동물원에 와서 처음 흙을 밟아보는 사자 바람이. 감격스러운 순간. 이 영상은 조회수 53만 건이 나왔다./사진=청주시청 유튜브좁은 실내동물원이 온 세상이었던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에 오고도 땅을 밟을 줄 몰랐다. 흙을 느끼고 비를 맞은 게 너무 오래되어서. 드넓은 방사장에 처음 나오던 날, 조심스레 발을 뗀 뒤 가장 많이 걸어 다녔다. 땅 밟고 바람 맞고 햇볕도 느꼈다. 몸무게도 늘고 활력도 좋아졌다. 뒷다리 관절이 좋진 않아 체중 유지를 해주고 있단다.

이야기의 힘이 엄청났다. 동물을 늘리지 않아도, 좁은 공간에 욱여넣지 않아도. 청주동물원 관람객이 주말엔 수천 명에 달한다고. 청주시 유튜브 채널 동영상 846개 중 조회수 1위가 바람이의 첫 외출이다. 무려 53만 명이 봤다. 조회수 상위 20개 영상 중 14개가 청주동물원 영상이었다. 김정호 수의사가 말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 방사장을 천천히, 가장 많이 걸어다녔던 바람이./사진=청주시청 유튜브 "관람객이 동물 오래 보지도 않아요. 길어야 30초 볼까요? 130종 많이 둬봐야 다 기억도 못 하고요. 그렇게 많이 있을 필요가 없는 거죠. 오히려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면 콘텐츠가 돼요. 자연스레 체류 시간도 길어지고요."

이 해설사도 이리 말했다. "우리 바람이 보러 제주도, 부산, 서울, 전국 각지에서 다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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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물원에 다녀간 학생들이 남긴 방명록./사진=남형도 기자


"동물원 찾는 사람들이 지적해야 해요"…그럼 바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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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일정 간격으로 붙어 있는 점은, 새들이 유리창에 충돌해 죽지 않도록 배려한 스티커.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가 한 해 800만 마리다. 어찌 보면 사소하게 여길 부분에서조차 마음이 다 느껴지는 것./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나 청주동물원은 진행형이라 했다. 변 수의사는 자기반성 같은 고백을 했다.

"청주동물원이 엄청 괜찮다는 듯 알고 오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여긴 함께하는 사람들이 훌륭하고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도 뛰어나지만, 아직 똥 같은 시설들이 많거든요.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나은 편에 속한달까요. 20% 정도밖에 못 왔고, 80%는 바꿔야 해요. 조금씩 해나가는 중인 거지요."

가만히 있는 게 더 편하단 걸 알지만, 동물을 위해 옳은 방향으로 가자 했을 때 뛰어들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가득한 청주동물원. 그러나 여전히 열악한 동물원이 너무 많기에, 갈 길이 멀다.
나무도 하나하나 복지사들이 자연에서 구해다가 놓은 거라고. 이를 좋아하며 갖고 노는 반달가슴곰들. 구조된 사육곰들이다./사진=남형도 기자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지 물었다. 변 수의사가 말했다.

"일단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이 지적해야 해요. 여긴 동물이 너무 가까이 있는 것 같다고, 불편하다고, 이런 얘기도 많이 하고요. 동물원 입장에선 서비스 해줬는데 욕을 계속 먹으면 더러워서 안 하거든요. 그게 시작인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제가 봤을 땐 소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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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83년 중 절반 정도 산 인간 기자 동물. 원래 스라소니가 살던 곳인데, 체험해보라고 이리 만들어두었단다. 기억해야 할 것. 인간도 동물이다. 그걸 깨달아야 공존한다./사진=엄마 말 잘 안 들은 건 팩트였던 남형도 기자
그런데 동물원을 향해 지적하려면, 동물 입장에서 뭐가 필요한지 배워야 한다고. 김 수의사가 말했다.

"올빼미 청각이 예민해, 그럼 내가 지금 조용히 얘기해야겠다,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알면 행동할 수 있으니까, 동물원이 그런 걸 계속 알려주는 곳이면 좋겠어요. 알면 잘해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청주동물원에 처음 있을 땐 생각을 안 하다가, 배운 뒤에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처럼요."
오후 2시에 일어난다고 해서, 가서 차분히 기다렸더니 물살을 가르며 시원스레 헤엄치던 멋진 수달./사진=그날 너무 더워 함께 수영하고 싶었던 남형도 기자아침에 수달이 안 보이길래 의아했는데, 수달사 앞에 잠꾸러기 수달이라 적혀 있었다. 기상 예상 시간은 오후 2시라고.
운이 좋아야 동물을 볼 수 있는 좋은 동물원. 그 뜻에 동의한 이들이 모인 곳. 이날은 행운이었다. 바깥에 나와 있는 수달을 보다니./사진=함께 놀고 싶어 꿈틀거리던 남형도 기자이에 따라 시간 맞춰 왔더니, 물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수달을 볼 수 있었다. 좋았다. 찾아보니 아주 작은 소리도 잘 듣는다고 해서, 인기척을 줄이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더 중요한 건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이라고. 그리 알고 바라보니 잘 지켜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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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물원 추모 공간에 붙은 나무 명패들. 이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의 동물원은, 내가 살 때보다 나아졌느냐고. 다른 동물들을 위해 부디 바꿔달라고. 남이 바꾸길 기다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해달라고./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호붐이시베리아 호랑이, 2023년 4월 20일.
먹보사자, 2023년 10월 11일.
직지표범, 2023년 2월 7일.
민국이늑대, 2021년 2월 10일.
검이자칼, 2021년 1월 21일.

나무 명패에 검은 글씨로 곧게 새겨져 걸린 이름들. 청주동물원에 살다가 떠난 동물들의 추모 공간. 거기엔 관람객들이 놓고 간 꽃다발이며, 사진이며,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먹보야, 사자별에선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해. 사랑해. 노란 포스트잇이 품은 마음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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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복지사들이 일하는 곳을 바라보도록, 방향을 잡은 붉은여우 동상. 떠나보낸 뒤 그리워했을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붉은여우사 앞엔 동상이 있었다. 여우의 시선이 하늘을 보는 듯했는데, 변재원 수의사가 이리 설명했다.

"시선이 저희 동물원 복지사들이 일하는 데로 가게 해놨거든요. 동물들이 떠나면 그분들은 저희와는 또 다른 슬픔을 겪어요. 진짜 가족처럼 지내던 친구가 떠난 거니까. 자기들을 바라보게 만들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추모관에서 낭독한 적이 있었다. 떠난 동물과 제일 친했던 복지사가 글을 읽었다. 그날 일하기 힘들 정도로 다들 오열했다. 책에서 본 문장이 기억났다.

길들인 것에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다.생텍쥐페리 - 어린 왕자 中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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