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살려달라며 부산서 분당 응급실까지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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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차여성병원 소아응급센터 르포
“전국서 몰려, 의료진 번아웃 호소”
“요즘에는 ‘우리 아이를 살려 달라”며 충청권, 강원권, 심지어는 부산에서도 소아 응급환자가 옵니다.”
4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소아응급센터에서 만난 백소현 센터장은 “최대한 수용하려 하지만 불가피하게 ‘저희도 받기 어렵다’고 할 때가 있는데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하느냐’며 울부짖는 부모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소아응급센터는 소아 응급환자를 24시간 진료할 수 있는 의료진과 장비를 갖춘 응급실로 전국에 11곳 지정돼 있다. 경기 지역에선 이 병원이 유일한데 이 때문에 평일에는 하루 평균 50∼60명, 주말에는 100여 명의 소아 응급환자가 이곳을 찾는다.
이날 오후 2시 20분경에는 유치원에서 열경련 증상을 보이던 여아6가 이송됐는데 구급대원은 “유치원과 가까운 대학병원의 응급실 병상이 다 찼고 수용 문의전화도 안 받아 급하게 왔다”고 했다. 또 “최근 소아와 성인을 불문하고 병원 응급실이 아예 전화를 안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몸부림치는 아이 옆에는 의료진 3명이 붙어 피를 뽑았고 보호자로 따라온 아버지는 소리치는 아이 옆에서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연신 달랬다.
소아 응급의료는 성인과 진단 및 치료 방법, 약제가 다르기 때문에 소아응급 전문의가 필수적이다. 과거에도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가 낮고 사법 리스크가 커 만성적 전문의 부족에 시달렸는데 의료 공백 후 몇 안 되던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마저 떠나고 배후 진료를 맡을 다른 필수과 전문의도 줄며 소아응급실 운영을 중단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동시에 분당차여성병원처럼 진료를 대부분 유지하는 병원으로 전국의 소아응급 환자들이 몰리며 남은 의료진은 극심한 ‘번아웃’소진을 호소하고 있다. 백 센터장은 “축 늘어져 온 아이들이 건강해져서 방긋 웃는 모습이 좋아 10년째 소아응급 현장을 지켰는데 이제는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소아응급실 11곳중 7곳 진료제한… “환자 더 받고싶어도 못받아”
4명이던 응급의, 주간 2명만 근무… 필수 의료진 없어 진료중단도 빈번
“정부, 소아응급 의료대란 막으려면… 인건비 등 더 적극적 지원 나서야”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응급센터에는 의료공백 사태 전까지만 해도 의사 4명이 12시간씩 교대근무하며 환자를 진료했다. 하지만 전공의가 이탈하면서 지금은 주간오전 8시∼오후 8시에 전문의 2명, 야간오후 8시∼다음 날 오전 8시에 전문의 1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백소현 센터장은 “혼자일 때 심폐소생술CPR을 해야 하는 중환자가 오거나, 의사가 구급차에 동승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전원 환자가 오면 다른 환자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상황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 소아응급실 운영 중단 병원 줄이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용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 떠도는 소아응급 환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4일 분당차여성병원에서 퇴원한 20개월 남아의 경우 2일 충북 음성군에서 119 구급차를 타고 오느라 1시간 이상 걸렸다고 한다. 이 병원 관계자는 “하루에 열경련을 3번이나 해 즉시 검사와 처치가 필요했음에도 인근에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고 들었다”며 “아이가 응급실에 도착한 뒤 또 경련을 하자 놀란 아버지가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겨우 응급실 문턱을 넘더라도 응급 처치 이후 진료를 담당할 배후 필수과 의료진이 부족해 진료가 중단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빈번하게 나타나는 ‘장중첩증’장이 꼬이는 질환의 경우 응급실에선 초음파 검사로 진단하고 초기 처치만 할 수 있다. 만약 수술을 맡을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으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분당차여성병원도 소아외과 의사가 부족해 영유아 장중첩증 환자는 평일은 짝수 날에만, 주말은 둘째·넷째 주에만 진료가 가능하다.
소아응급 전문의 및 배후 필수과 전문의 부족으로 진료 제한이 생기는 건 다른 병원들도 마찬가지다. 5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 등에 따르면 전국 11곳의 소아응급센터 중 7곳가천대길병원, 분당차여성병원, 세브란스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에서 진료가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응급센터는 월·수·금요일 오전 8시∼오후 8시에만 환자를 받고 있다. 이 병원은 2010년 9월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전국 1호 소아응급실 운영 기관으로 지정된 곳이다. 아주대병원 응급실은 매주 수, 토요일에는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소아응급 환자를 받지 않는다.
● “정부가 지원 늘려야 버틸 것”
서울대병원 소아응급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도균 교수는 “소아 환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추석 연휴를 떠올리기만 해도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고 말했다. 또 “의료공백 사태 이후 계약을 맺고 투입된 전문의 계약 기간이 대부분 내년 2월까지”라며 “당장은 동료를 위해 버티지만 내년 2월이 지나면 현장을 떠날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응급의학을 전공한 소아응급 전문의 중에는 최근 천정부지로 급여가 오른 성인 응급진료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의료계에선 소아응급의료 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 센터장은 “정부가 소아응급센터에 지원하는 인건비 기준이 의료사태 이전에 머물러 있다”며 “의료진이 많이 빠져나간 상황이라 추가 채용을 위해 인건비 지원을 늘려 달라고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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