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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동물원] 얼룩말 씹어먹는 멧돼지 "내가 비건인 줄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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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84회 작성일 24-05-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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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킹 30주년 특집 3탄
’품바’로 유명한 혹멧돼지, 사자왕국 최측근 대우받지만
현실에선 ‘가장 맛있고 만만한 사냥감’ 신세
살가죽 두꺼워 산채로 뜯겨먹는 일 다반사
시체 뜯어먹는 ‘청소부’ 모습도 보여

멧돼지가 얼룩말 사체를 뜯어먹고 있다./ 페이스북 @Animals World

멧돼지가 얼룩말 사체를 뜯어먹고 있다./ 페이스북 @Animals World

올해는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 ‘라이온킹’이 개봉한지 30주년되는 해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이야기의 뼈대를 얻어 아프리카 사바나 짐승들을 의인화한 이 작품은 등장 짐승들의 생태와 습성이 사실과 전혀 다른 터무니없는 설정으로 오류와 억지가 넘쳐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원작 만화영화에 이어 뮤지컬, 실사영화, 관련 캐릭터 산업으로 무한 반복·확장하며 월트디즈니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습니다. 라이온킹을 빛냈던 주·조연급 짐승 캐릭터들의 적나라한 속살을 연중 게재합니다. 하쿠나 마타타~

-수요동물원장-

야생의 매력은 반전입니다. 통념을 깨고, 예상을 뒤엎고, 예측을 빗나가는 장면은 충격과 놀라움과 함께 짜릿함을 안겨주죠. 만년 동네북 먹잇감으로 치부되던 짐승이 피와 살을 탐하는 맹수의 면모를 보이는 순간도 사바나가 선사하는 반전이라 하겠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우선 짧은 동영상Animals World Facebook을 한 편 보시죠.


찹찹찹, 찌익, 후루룩... 생생한 ASMR이 귀에 착착 감기듯해요. 혹멧돼지가 모처럼 여유로운 식사를 즐기고 있어요. 라이온킹에서 감초 연기의 정석을 보여준 혹멧돼지 품바는 만화에서 형형색색의 애벌레들을 쩝쩝 폭풍흡입하는 먹방을 선보이지만, 현실 속 혹멧돼지는 먹을 수 있다면 썩어문드러져가는 얼룩말 사체까지 탐하는 생계형 잡식동물입니다. 놈은 어쩌면 으스대듯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어이, 인간들! 내가 비건인줄 알았나?”

혹멧돼지가 스캐빈저청소부가 돼 얼룩말 사체를 뜯어먹고 있다. /Animals World Facebook

혹멧돼지가 스캐빈저청소부가 돼 얼룩말 사체를 뜯어먹고 있다. /Animals World Facebook

녀석의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건 바로 몇시간전까지 함께 사바나를 뛰놀았을지도 모를 얼룩말 사체입니다. 사자나 표범, 하이에나 등 ‘1차포식자’에 붙잡힌 모양이에요. 야들야들한 식감에 영양도 가득한 내장에 이어 살코기 중 연하고 부드러운 부분들도 1차 포식자들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근육과 뼈에 늘어붙은 거친 살점 따위만이 남아있겠죠. 그래도 초원의 청소부 스케빈저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양식입니다. 주로 잡아먹히는 장면에서 비극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혹멧돼지가 모처럼 고기살점을 뜯는 모습을 보니 낯설면서도 갸륵하기도 해요. 이 장면은 넓은 의미에서는 한 집안 내 동족포식카니벌리즘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얼룩말도, 혹멧돼지도 모두 유제류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거든요.

월트디즈니의 라이온킹 장면을 모티브로 만든 월페이퍼. 현실에선 이런 장면이 나올 가능성이 절대 없다. /Disney Parks Blog

월트디즈니의 라이온킹 장면을 모티브로 만든 월페이퍼. 현실에선 이런 장면이 나올 가능성이 절대 없다. /Disney Parks Blog

유제류. 있을 유有에 발굽 제蹄자를 써서 발굽이 있는 동물들을 총칭합니다. 따그닥 따그닥 또각 또각 걸을 때마다 소리나는 그 단단한 발굽을 가진 동물들 말이죠.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요. 우선 발굽이 홀수인 기제류가 있어요. 말과 코뿔소가 여기에 속하고요. 발굽은 네 개지만, 유독 가운데 발굽이 큰 구조를 가진 맥테이퍼 또한 기제류에 속합니다. 발굽이 짝수인 우제류는 훨씬 거대한 그룹이예요. 소·기린·낙타·영양 거기에 돼지까지 거의 모든 발굽동물들을 총망라한답니다. 재미있는 건 어떤 ‘제류’이든 속할 것 같은 코끼리는 아예 유제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코끼리의 육중한 발을 감싸고 있는 그것은 발굽이 아니라 ‘발톱’이기 때문이죠.

암사자가 새끼멧돼지를 잡은 뒤 혀로 할짝이고 있다. 잠시 이 새끼멧돼지는 산채로 뜯어먹혔다. /Ranger Wildlife Videos Facebook

암사자가 새끼멧돼지를 잡은 뒤 혀로 할짝이고 있다. 잠시 이 새끼멧돼지는 산채로 뜯어먹혔다. /Ranger Wildlife Videos Facebook

육중하고 우람한 덩치, 멋진 뿔을 가진 거대 초식동물이 총망라돼있는 유제류의 메이저 그룹 우제류 중에서 돼지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기도 해요. 덩치도 왜소하거니와 생김새도 멋지다는 통념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죠. 하지만, 주변 환경에 맞춰 적응하는 생존능력만큼은 유제류 중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대표적인게 식성이예요. 나무 열매나 뿌리 등 초식에만 그치지 않고, 뱀·개구리·달팽이·새알·쥐 등 육식까지 곁들이면서 잡식성으로 진화했기 때문이거든요. 초식의 뿌리를 타고나 육식으로 선택지를 넓힌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이렇게 피와 살코기를 먹음으로써 주기적으로 몸에 기운을 북돋워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초원의 청소부 노릇까지 한다는게 이 동영상을 통해 확인된 것이죠.

사자무리가 사냥한 혹멧돼지들을 숨통도 끊어놓지 않고 산채로 뜯어먹고 있다. /Nombekana Wildlife Photography Facebook

사자무리가 사냥한 혹멧돼지들을 숨통도 끊어놓지 않고 산채로 뜯어먹고 있다. /Nombekana Wildlife Photography Facebook

라이온킹에서 혹멧돼지 품바는 심바·날라 등 사자왕국의 왕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거의 준왕족급 대우를 받습니다. 하지만 만화는 어디까지나 만화일 뿐입니다. 혹멧돼지는 실제 사바나에서도 라이온킹의 모토인 ‘생명의 바퀴’를 묵묵히 굴려가는 원동력 역할을 충실히 합니다. 맹수들의 포식자로 자기 한몸을 희생하는 거죠. 인간세상에서도 돼지만큼 차별받지 않고 골고루 사랑받는 식재료는 없어요. 소주 한 잔에 곁들이는 삼겹살, 따뜻한 밥 한 숟갈 위에 얹어먹는 스팸, 달큰한 양념을 골고루 묻혀 석쇠위에서 굽는 돼지갈비, 햄버거의 감칠맛을 더해주는 베이컨.... 혹멧돼지 역시 사바나의 미식가 포식자들에게 골고루 사랑받습니다. 얼룩말처럼 강력한 뒷발을 가진 것도 아니고, 물소처럼 뿔이 달린 것도 아니고, 임팔라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사냥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거든요. 게다가 좀 비정한 얘기지만, 가족 생활을 하고 부모·새끼·동기간에 밀착해서 생활하다보니 한번에 여러마리를 사냥하는 일도 종종일어납니다. 젊은 사자들이 구덩이에 숨어있던 혹멧돼지를 끌어내는 장면Latest Sightings Facebook 잠깐 보실까요?

문제는 다른데 있습니다. 거친 사바나에서 살아갈 수 있는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다보니 살가죽이 상대적으로 두꺼운 편이에요. 다시 말해서 사냥감을 틀어쥔다음 숨통을 끊는게 생각만큼 여의치는 않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혹멧돼지의 피식현장은 다른 동물들보다 눈뜨고 못볼 정도의 참상일 때가 많습니다.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몸부림치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상황에서 산채로 뱃가죽이 찢기고 내장과 살점이 뜯겨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합니다. 막 출산을 앞두고 어미뱃속에서 꿈틀대던 새끼들이 도륙되는 처참한 장면도 벌어지곤 합니다. 사냥당한 혹멧돼지들은 이미 몸의 절반이 뜯겨나가고 뼈와 근육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데도 두눈을 그렁그렁 꿈뻑이며 ‘꿰~’ 하고 울부짖는 장면이 보일때도 있어요. 사자·표범·하이에나·리카온 등 육상 맹수 뿐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꽂듯 습격하는 수리의 사냥감으로 희생당하기도 합니다. 어린 혹멧돼지가 사냥당하는 장면The Latest Sightings Facebook 잠깐 보실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지금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는 수천마리의 혹멧돼지들이 산채로 거죽이 찢기며 처절하게 멱이 따이고 있을 겁니다. 이런 비참한 생의 말로에 대한 근본적 한을 풀어주기 위해 어쩌면 사자 왕국의 준 왕족 취급을 받는 비현실적 캐릭터를 구현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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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기자 xanad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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