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밟아도 버스 전복…미끄럼틀 같은 남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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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급경사·급커브 많아… 미끄러지거나 충돌 사고 빈번
지난달 24일 오후 12시 30분 서울 중구 남산 둘레길에서 순환버스 한 대가 빗길에 미끄러져 옆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이 타고 있지 않아 인명 피해는 없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버스가 전복된 곳은 라이딩을 즐기는 자전거 운전자들에게는 ‘명소’로 꼽히는 ‘남산 둘레길’이다. 서울 국립극장부터 이어지는 소월길과 함께 운전자들에겐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이지만, 다른 도로들보다 사고 위험이 커 악명 높은 곳이기도 하다. 경사도 경사지만 길 양쪽 숲이 우거져 있고, 보행자가 많이 없어 운전자들은 이곳을 지날 때 무심코 속도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산에서 자전거를 즐겨 탄다는 김모38씨는 “업힐오르막길 중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고, 밤에 내려오면 한적해서 속도를 즐기기가 좋다”고 했다. 자전거 동호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이곳이 ‘전국에서 가장 라이딩하기 좋은 코스’ 5순위 내에 꼽히기도 했다.
그래픽=이철원
순환 버스 운전기사 A씨는 “내리막길은 진짜 위험하다”며 “나무와 식물이 우거져 있어서 겨울엔 눈이 잘 녹지 않고, 시야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버스 운전기사 B씨도 “한번 미끄러지면 그대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데, 도로가 꺾여 있어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며 “보조 브레이크까지 밟아도 둘 다 제동이 안 걸려 차가 미끄러져 당황한 적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버스 기사들은 경찰과 관할 구청에 “미끄러워 위험하니 도로를 개선해달라”는 민원도 여러 번 넣었다고 한다.
실제 사고로 이어지는 일도 빈번하다. 지난 5월 20대 남성이 오후 11시쯤 이 도로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던 중 자동차를 피하려다 자전거에서 튕겨 나가 목숨을 잃었다. 작년 8월에는 30대 남성이 오후 10시쯤 자전거를 타고 남산 둘레길 내리막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마주 오는 차량과 정면충돌했다. 같은 해 2월에는 이 길을 내려오던 오토바이가 미끄러져서 운전자가 골절상을 입은 일도 있었다.
2022년에도 자전거를 타던 한 남성이 이 길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는데, 경찰이 당시 자전거에 부착돼 있던 속도계를 확인한 결과, 시속 20km로 달리던 자전거가 시속 40~50km로 갑자기 속력이 붙으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한 자전거 동호회 회원은 “1년에 2~3차례 정도 남산 자전거 사고를 목격한다. 그중 90%가 남산 둘레길 내리막 사고”라고 했다.
경찰은 “남산 둘레길 내리막은 속도가 시속 20km로 제한돼 있지만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단속을 자주 하는 수밖에 없지만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했다. 본지 기자가 지난달 27일 직접 남산 둘레길 내리막길을 찾았을 때도 제한 속도를 지키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급커브 한 구간에만 차량 속도를 측정해 운전자에게 과속 경고를 하는 안내판이 3개 설치돼 있는데, 이날 오후 2시쯤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삐익’ 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빈번한 사고 때문에 라이더들 사이에서도 남산 둘레길은 자전거 출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22년 남산 둘레길 사고로 사망한 남성과 같이 자전거를 탔었다는 한 동호회원은 “자전거 라이더들에게 정말 매력적인 곳이지만 그만큼 위험한 곳”이라며 “남산 둘레길에 아예 자전거 출입을 금지해야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제한 속도를 현재 시속 20km에서 10km 정도로 낮춰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내리막길은 물론이고 커브길의 경우 제동 거리가 더 길기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자전거나 버스 등 차량이 넘어지거나 전복될 가능성 크다”며 “사고를 예방하려면 커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커브를 돌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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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기자 bob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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