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18년 전 오늘, 오전 7시 55분쯤 인천 서구의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이 교문 앞에서 남성에게 납치돼 성폭행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남성은 학교 주변을 서성이다 등교하는 여학생에게 접근해 보건실에 가져갈 짐을 함께 내리자며 도움을 요청, 유인한 뒤 차로 밀어 넣었다.
겁에 질린 아이에게 그는 "소리 지르면 죽는다"라고 위협한 뒤 인근 공터로 이동해 끔찍한 성범죄를 저질렀다.
◇학교 인근 CCTV 용의자 포착…범행 후 원래 장소에 내려주는 패턴
경찰이 확보한 CCTV 영상에는 흰색 카니발 뒷문을 열어둔 채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리듯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남자의 모습이 담겼다. 화질이 선명하지 않은 탓에 용의자 얼굴과 차량 번호를 특정할 수 없었다.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는 사이 인천 계양구에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앞선 사건과 마찬가지로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5월 24일 첫 사건 이후 8월까지 발생한 유사 사건은 무려 11건이었다. 용의자는 아동을 납치해 공원이나 일정 장소로 이동한 후에 범죄를 저지른 뒤 다시 아이들을 태웠던 장소에 내려주는 특이한 패턴을 보였다.
◇용의차량 흰 카니발 선루프·인터쿨러…추려진 1558대 소유주 확인
경찰은 동일범 소행으로 추정하고 광수대 전담반을 편성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용의자가 범행에 이용했던 차종은 흰색 카니발이었다. 지붕에는 선루프와 짐을 싣는 루프백이 장착돼 있었다. 보닛에는 인터쿨러가 설치돼 있었다.
수사팀은 자동차 출고 현황을 통해 동일 차종 1만 9000여 대 중 용의차량과 비슷한 외관의 차량이 6270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생산 연도별로 후미등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한 경찰은 용의차량이 2001년 9월부터 2002년 9월 이전까지 출고된 차량이라는 점을 파악했다.
그리하여 추려진 차는 1558대였다. 경찰은 차량 소유주, 가족 사항 등을 파악하고 CCTV에 찍힌 인물과의 외모를 비교하며 범인 찾기에 주력했다.
긴 시간에 걸쳐 1556대의 차량을 확인할 때까지도 소득은 없었다. 단 2대의 차량만 남은 상황이 되어서야 유력한 용의차량을 추려낼 수 있었다.
경찰은 2대 중 1대가 대포 차량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실소유주를 찾아 나섰다. 의정부에 거주하는 실소유주는 무단 전출자 A 씨였다. A 씨는 "5월 22일에 C 씨한테 400만 원에 차를 팔았다"고 진술했다. 또 C 씨에게 차를 넘기기 전 B 씨에게 구입한 차라고 전했다.
경찰은 B 씨를 찾아가 해당 차량이 범죄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전하며 범행 당일 흐릿하게 찍힌 CCTV 속 남성의 사진을 보여줬다. B 씨는 김근식을 지목하며 그의 몸에 문신이 있다며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전달했다.
◇전담반 편성 두 달 만에 특정된 범인…동생 여권 훔쳐 필리핀 출국
경찰은 진술을 토대로 피해 아동을 통해 용의자 확인에 나섰다. 피해 아동들은 김근식이 맞다고 진술했다.
전담반 편성 두 달 만에 범인을 특정한 경찰은 9월 7일 김근식과 가족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김근식의 친동생이 9월 1일 필리핀으로 출국했다가 9월 8일 입국한 기록을 확인했다.
2006년 미성년자 연쇄성폭행 혐의로 공개수배된 김근식2020.12.13/뉴스1 ⓒ News1
휴대전화 사용 내역을 확인한 결과 김 씨 동생의 휴대전화는 같은 기간 한국에서 줄곧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김근식은 동생의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필리핀에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김근식의 주변 지인을 탐문하던 중 13년간 각별하게 지내온 남성 D 씨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김근식이 그에게 접근할 것으로 판단한 경찰은 주변에서 잠복 수사를 펼쳤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현상금 500만 원 공개수배 하루 뒤 긴급 체포…범행 동기 묻자 침묵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또다시 유사한 범죄가 발생하자 경찰은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해 현상금 500만 원을 걸고 공개수배에 나섰다.
공개수배가 내려진 뒤에야 김근식은 D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D 씨는 만나기로 한 장소와 약속 시간을 경찰에 알렸고, 결국 김근식은 공개수배 하루 뒤인 9월 18일 긴급 체포됐다.
범행 4개월 만에 검거된 김근식은 "출국했다가 한국에 돌아온 이유가 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차피 여기 있는 걸 해결해야 하니까 들어왔다"고 답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또 "한 번 범행한 후에 그만해야겠다는 생각 한 적 있냐"는 질문에는 "있다"고 말했다.
◇16년째 미제였던 추가 여죄 드러나 재수감…2027년 10월 출소 예정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김근식이 강간치상 등 전과 19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2000년 10월 24일 서울 용산에서 미성년자를 강간한 혐의로 징역 5년 6월 실형을 선고받고 5월 8일 출소한 상태였다.
김근식은 출소 16일 만인 2006년 5월 24일부터 수도권에서 미성년자 11명을 잇달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교도소 수감 중에는 동료 재소자를 두 차례 폭행해 형기가 늘면서 총 16년형의 연속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22년 10월 17일 출소 예정이었던 김근식은 만기 출소 하루 전, 여죄가 추가로 확인됨에 따라 재구속됐다. 김근식은 2006년 9월 경기도 소재 초등학교 인근 야산에서 당시 8세였던 아동을 흉기로 위협해 강제 추행한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됐다. 김근식은 2019년 12월과 2021년 7월 전남 해남교도소 복역 중 교도관을 밀치고 협박한 혐의공무집행방해도 받는다.
지난 2월 대법원 1부는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간등, 공무집행방해, 상습폭행 혐의로 기소된 김근식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러나 검찰이 요청한 성 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10년에 대해 1, 2심에 이어 "성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극적으로 화학적 거세를 면한 김근식은 오는 2027년 10월까지 수감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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