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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텃밭에 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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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90회 작성일 24-05-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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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전미경 기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마트 가는 길에 텃밭을 가꾸는 노인과 잘 자란 농작물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는데 "요즘 농약 안 치곤 안 돼. 벌레가 생겨서"라고 강조한다. 놀라서 몇 번이고 돼 물었지만 농약은 필수라고 했다. 집에서 길러 먹는 용도의 소량임에도 농약을 안 치면 안 된다고 하니, 대량 생산의 농산물은 말할 것도 없겠다.


몸에 좋다고 먹는 야채 과일이 농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텃밭마저 위협받고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흙도 시골의 흙과 다르네요"라고 하니 모래흙인 마사토라고 한다. 내가 아는 흙은 진짜 흙냄새 나는 흙색의 진한 고동색인데 환경의 변화로 이젠 시골서도 흙다운 흙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다. 농약과 비료로 인한 토질이 점점 변하는 것 같다.

샐러드 빵을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양상추를 자주 산다. 마트에서 양상추 하나를 사고 계산하려는데 시선에 들어온 모니터 금액이 상이했다. 가격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데 품목도 수입 양상추라고 찍혀 있다. 놀라서 "이거 수입인가요? 국산이라고 되어 있던데요"라고 말하자 캐셔가 다른 직원을 호출해 금액을 정정한다.

품목도 국산으로 바뀐다. 눈앞에서 품목과 금액이 변경되는 것을 보니 찜찜해서 양상추를 사지 않고 돌아섰다. 양상추도 수입이 있다니... 나만 몰랐던 걸까. 양상추 같은 신선 야채도 수입이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심란했다. 야채만큼은 우리 농산물로 먹고 싶은데 먹거리가 비상이다. 시골서는 흔해서 처치곤란인 양상추였는데 배신감이 따로 없다.

"이건 농약 안 친 거예요"라며 늘 푸릇하고 싱싱한 양상추를 갖다 주던 아무개가 생각났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개가 양상추 가져오면 남 주지 말고,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이제 아무개가 양상추 농사를 안 짓는다고 했다. 돈이 안 된다고. 용역 나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농사를 안 지으면 어떡하냐고. 나는 땅이 없어 야채도 못 길러 먹는다고. 괜히 내가 불만을 토하자 엄마는 베란다에 텃밭을 만들어 야채를 조금씩 길러 먹으라고 했다. 기르기 쉬운 상추부터 시작해 보라고 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먹거리에 진심이라 채소에 관심이 많았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가능한 채식위주로 식단을 꾸몄다. 하지만 베란다에서 고추, 토마토, 오이 기르기를 실패했다.

사계절 고추를 먹을 수 있다는 유튜버를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농사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생명을 길러내는 게 만만한 것도 아니다. 온 우주가 동원되듯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쏟아도 생사는 내 의지가 아니었다. 환경이라는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이유다.
베란다 텃밭에 벌이 찾아왔다
▲ 카라꽃 꽃이 벌을 부르는건지 어느날 부터 벌이 들어와 놀다가 나간다.
ⓒ 전미경


채소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같이 시작한 블루베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2년 산 블루베리를 사다가 3년째 기르고 있는데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맺지 않는다. 그걸로도 만족했다. 살아있다는 것에. 그런데 얼마 전 시장에 나갔다가 2년 산 블루베리도 열매를 맺는다며 팔고 있었다. 꽃씨도 맺지 못하는 나의 블루베리가 궁금해 블루베리 구입 농장에 전화를 걸었다.

"물만 주어서는 안 돼요. 양분이 필요해요. 베란다용으로 구입하셨으면 자가 수정이 되기 때문에 꽃씨가 트이면 면봉으로 꽃가루를 이동해 주셔야 해요. 그런데 꽃씨도 안 틔웠으니 양분 부족인 거 같아요."

담당자의 설명이다. 물만 열심히 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결정체를 맺지 못한 블루베리를 생각하니 세상엔 뭐든 저절로 되는 게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비료를 준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뭐든 자연으로만 자연스럽게 된다고 생각했고 기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베란다 야채 기르기 실패할 때도 친구는 벌 나비 같은 수정체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땐 믿지 않았다. 설마 했는데 알아보니 정말 모든 식물도 수정할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인공수정을 해야 하는데 수정을 하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농작물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닐 텐데. 알수록 신기한 작물들의 세상이다. 혹, 열매를 맺어도 해충으로부터 보호하려면 농약을 쳐야 한다는 설명인데 벌들에겐 농약이 치명적이니 생태계의 악순환이다. 나아가 경제에도 영향을 끼친다.
▲ 양상추 베란다 8일째 제법 잘 자라고 있는 듯 보인다.
ⓒ 전미경


돈이 안 돼 양상추 농사를 포기한 아무개. 나는 농약 없이 키운 양상추를 먹기 위해 시장에 나가 모종 6개를 사서 베란다 블루베리 옆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심었다. 그리고 방충망을 열어두었다. 혹시나 벌이나 나비가 찾아올까 싶어서다.

방충망을 열어놓자 바람도, 햇볕도 온전히 받는 것 같았다. 5일째 되던 날 신기하게도 벌이 들어와 윙윙 대고 돌아다녔다. 꽃을 피운 칼라꽃 속을 윙윙 돌다가 베란다 식물 전체를 한 바퀴 훑어보고 나갔다. 다음날 다시 찾아오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친구도 데리고 온다.

예전엔 방충망이 열리면 어쩌다 파리가 들어오긴 했어도 이렇게 벌이 찾아오긴 처음인 거 같다. 꽃과 나무가 어떤 작용을 한 것일까. 벌을 불러들이는 것만 같다. 예전 같으면 벌을 쫓아내기 바빴을 텐데 이젠 가만히 둔다. 저 혼자 놀다가 알아서 잘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벌들이 다른 생명을 연결해 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숭고한 느낌마저 든다. 앞으로도 방충망을 계속 열어둘 참이다. 벌과 나비가 찾아오는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무럭무럭 곤충들이 숨을 쉬는 작은 정원을 꿈꾼다. 곤충이 살고 채소도 살고 인류도 사는 섭리를 작은 공간에서나마 느끼고 싶다.

엄마는 베란다 양상추에도 비료를 줘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비료 없이 키우고 싶어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8일째 6포기 모두 생존 신고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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