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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응원 손편지에 버텼죠"…전국 첫 24시간 무인서점 연 MZ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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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4-10-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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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24시간 무인서점 밤산책방을 운영하는 김소라 대표. 사진 밤산책방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24시간 무인서점 밤산책방을 운영하는 김소라 대표. 사진 밤산책방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지하에 자리한 서점 ‘밤산책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 사이에 명소로 떠올랐다. 2년 전 전국 처음으로 ‘24시간 연중무휴ㆍ무인서점’으로 문을 연 작은 책방이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 등 책을 통한 교감과 위로를 원하는 이들이 책방을 찾고 있다.


“7살에 얻은 백반증, 모르는 곳 떠나고팠다”
지난 23일 오후 2시30분쯤 밤산책방을 찾았다. 입구에는 ‘서툴지만, 열심히 사는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어서, 위로가 되길 바라는 책을 팝니다’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책방93㎡에는『아무것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등 위로와 자기성찰을 주제로 한 책 50여종이 진열돼 있었다. 김소라35 대표가 직접 쓴 책 소개ㆍ추천 글도 함께 놓였다.


김 대표는 “본래 이곳은 공황장애를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만든 아지트였다. 아픔이 있는 이들과 이 공간을 공유하고 싶어 책방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책방을 소개하며 밝게 웃는 김 대표의 눈가가 희게 빛났다. 어릴 적부터 앓았던 백반증 흔적이다. 백반증은 색소세포 파괴로 여러 크기와 모양의 흰색 반점이 피부에 나타나는 후천적 질환이다.

지난 23일 오후 방문한 부산시 수영구 밤산책방 입구에 책방을 알리는 안내문구 등이 놓여 있다. 김민주 기자

지난 23일 오후 방문한 부산시 수영구 밤산책방 입구에 책방을 알리는 안내문구 등이 놓여 있다. 김민주 기자

부산에서 태어나 할머니와 큰아버지 손에 자라던 김 대표가 백반증에 걸린 건 7살 무렵이다. 팔에서 시작한 반점은 얼굴·목·손끝 등 몸 곳곳으로 번졌다. 김 대표는 “병 때문에 주변 어른과 친구들이 늘 ‘딱한 아이’로 여겼다. 학교에서도 힘들 때가 많았다”고 했다. 피부색만 변할 뿐 통증은 없는 병이다. 하지만 얼굴이나 손을 보고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는 주변 반응이 어린 김 대표 마음엔 고스란히 상처로 남았다.


서울살이 10년, 못 이룬 정규직 꿈
김 대표는 “늘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고교 과정을 마친 20살 때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시청 앞 전자기기 가게 경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의류매장·콜센터·카드사 등을 떠돌았다. 그는 “1, 2년 계약이 끝날 때마다 직장을 옮겨야 했다. 더 나이 들면 써주는 데도 없어질까 봐 불안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정규직을 꿈꿨다. 마지막으로 일한 카드사에서는 ‘실적만 내면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회사 방침이 바뀌면서 꿈은 무산됐다.
지난 23일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밤산책방 내부에 위생밴드가 놓여 있다. 오래 걸어 발이 까진 방문객이 붙일 수 있도록 김소라 대표가 놓아둔 물건이다. 김민주 기자

지난 23일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밤산책방 내부에 위생밴드가 놓여 있다. 오래 걸어 발이 까진 방문객이 붙일 수 있도록 김소라 대표가 놓아둔 물건이다. 김민주 기자



“나만 힘들 리 없다” 생각에 아지트를 책방으로
카드사 퇴직 후 부산에 돌아왔지만 ‘실패했다’는 자책감이 깊었다. 이유 모를 성화나 불안감이 커 새 직장 동료, 가족과도 자주 부딪혔다. 이때 공황장애가 생겼다. ‘나쁜 생각’마저 들었을 때, 그는 출퇴근길에 지나치던 지하실지금의 책방을 월세 30만원에 계약했다. 카페 바리스타를 하며 월급으로 110만원을 받던 때다.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밤산책방에서 방문객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밤산책방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밤산책방에서 방문객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밤산책방

혼자있을 공간이 절실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새벽에 퇴근했는데, 코로나19에 9시 통금이 생겨 달리 갈 곳도 없던 때다. 빔프로젝터와 간이침대를 넣고 이곳에서 혼자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술 취해 잠들기도 했다. 심신을 조금 추슬렀을 때 문득 김 대표는 ‘나만 이렇게 힘들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 아지트를 비슷한 아픔을 겪는 다른 사람과 함께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다 ‘비대면 24시간 무인서점’을 떠올렸다. 김 대표는 “밤늦게라도 편히 와서 쉬고 가라는 의미에서 ‘밤산책방’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내 가게지만, 내 맘대로 닫을 수 없어요”
밤산책방은 2022년 6월 문을 열었다. 길을 지나던 이들이 하나둘 책방에 찾아왔다. 이들 중 일부가 ‘감성 책방’ 등 태그를 달아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지금 책방 수익은 처음 지하실을 얻던 때 직장에서 받던 월급110만원보다는 많아졌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일상의 상처를 견디면서 어디선가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책방을 운영하는 동안 공황장애도 크게 호전됐다.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밤산책방 내부 모습. 사진 밤산책방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밤산책방 내부 모습. 사진 밤산책방

‘24시간 무인 영업’을 노린 책 도둑이나 쓰레기 투기꾼 등 어려움도 많았다. 폭우로 책방이 물에 잠겼을 땐 폐업도 고민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곳을 소중히 여기게 된 사람들이 많다. 내 가게지만,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방문객이 남긴 응원의 손편지와 방명록도 큰 힘이 됐다고 한다. 김 대표는 “밤산책방을 운영하며 있었던 일을 엮어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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