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고 싶으면 미친 척해" "중매결혼은 어떠니?" 불안한 엄빠들
페이지 정보
본문
[아무튼, 주말]
꼬리무는 교제 폭력 사건에 딸 부모도, 아들 부모도 철렁 뤽 베송 감독의 액션 스릴러 테이큰2Taken2의 한 장면. 교제 폭력 사건이 빈발하면서, 납치된 딸을 구하려 물불 안 가리는 영화 속 아버지리암 니슨처럼 보호 본능을 불태우는 부모들이 늘었다. /20세기폭스사 경기도 분당의 50대 고모씨 부부는 대학생인 외동딸에게 요즘 ‘안전 이별’을 집중 교육 중이다. 딸은 아직 연애를 안 해봤지만, 나중에 연인과 사귀다 헤어질 때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걱정돼서다. 이들은 “감정 기복 심한 애는 걸러라, 싸우더라도 너무 자극하지 말고, 선물도 함부로 받지 마라, 술버릇 눈여겨봐라” 등등 일장 연설을 하다가, 비책으로 ‘미친X 되는 법’까지 전수했다고 한다. “씻지 말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거나 ‘집안이 망했다’ ’도박빚을 졌다’며 큰돈을 빌려달라고 하라”는 것. 고씨는 “이별을 통보했다가 맞느니, 모자라게 보여 버림받는 게 낫다”고 했다. 경남 창원의 아버지 정모씨도 “고교생 딸에게 ‘연애할 땐 모든 위험 신호를 즉각 부모와 공유하라’고 당부했다”며 “만약 내 딸이 위협당하면 ‘테이큰’Taken·납치된 딸을 구하는 아버지의 복수를 그린 영화 찍으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연인이었던 이들 간 스토킹과 폭행, 살인 등 교제 폭력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주로 피해자들이 젊은 여성이어서 딸 가진 부모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초등 6·3학년 두 딸을 키우는 서울 서대문구의 주부 이모42씨는 “옛날엔 ‘연애는 많이 해봐야 좋다’ ‘이별도 아름다운 청춘의 과정’이라고 했지만, 이젠 잘못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세상이니 관계 맺음 자체가 조심스럽다”며 “딸들에게 격투기라도 가르쳐야 하나 싶다”고 했다. 큰딸과 친구들을 모아 소그룹 성교육도 시켰다고 한다. 중2 딸을 둔 박미현씨도 “딸이 동정심이 많아 위험한 남자를 끊어내지 못할까 봐 벌써 걱정된다”며 “’너한테만 잘하는 것보단 주변 평판 좋은 애를 만나야 한다’ 등 여러 대화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공무원 양모씨는 “최근 뉴스를 보다 보니 대학원생 딸이 1년여 만나다 헤어진 남자가 신경 쓰이더라. 애가 늦게 귀가하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했다. 그는 딸에게 ‘겉만 보곤 사람 속을 모르니, 연애결혼 말고 부모끼리 맺어주는 중매결혼이 어떠냐’ ‘남자 만나지 말고 공부하고 커리어만 쌓는 것도 환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A 씨가 지난 8일 서울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고2·중3 아들을 둔 엄마 김모46씨는 “가뜩이나 남자애들이 공부도 여자애들에게 밀리고 어른들에게 어필도 잘 못하는데, 일부 극단적 사례 때문에 남자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게 불쾌하다”며 “애들한테 ‘여자와는 안 얽히는 게 상책이다’ ‘만약 여자가 괴롭히면 너도 절대 봐주지 마라’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아들 부모들 사이에선 “세상이 흉흉하니 딸 둔 부모가 예민하게 구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학교도 사회도 너무 여자애들 편만 들어준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시민 단체가 지난 2021년 교제 폭력 근절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데이트 폭력이란 용어는 폭력을 낭만적으로 호도할 수 있다는 정부 판단에 따라 2023부터 교제 폭력으로 통칭되고 있다. /뉴스1 마포구 주부 차모40씨도 “초등생 아들 성교육을 아빠한테만 맡겨선 안 되겠더라. 엄마가 여성의 감정을 설명해주고 아들이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다. 남매를 둔 아버지 김현식55씨는 최근 명문대생이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사건, 그리고 지난해 전직 국회의원 아들인 변호사가 아내를 죽인 사건을 들어 “좋은 학벌과 집안이 사람을 보장하진 않는다”며 “남녀 문제로 가르지 말고 학교와 가정에서 인성 교육을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닷컴 핫 뉴스 Best
[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정시행 기자 polygon@chosun.com |
관련링크
- 이전글[사반 제보] 결혼식 사진 날아갔는데…촬영기사 "만들어 드릴게" 24.05.18
- 다음글여의도 150m 상공 뜨는 서울의 달…주민들 "안전하냐" 걱정 24.05.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