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삶터에 또 공항…"수라갯벌 보존하라"
페이지 정보
본문
저어새·좀도요에 고라니까지… 공동행동 "신공항 건설 사업 계획 철회해야"
[최나영 기자]
"저기 멀리 하아~얀 색 새들 보이세요?"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공동단장이 수라갯벌 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둔치에 모여 있던 10여 명의 사람들이 각자 망원경을 들고 수라갯벌을 살펴본다. 이어 무언가를 발견한 듯 제각각 한두 명씩 "와아~"하는 탄성을 낸다. 오 단장이 말을 이어갔다. "저건 저어새라고 하는 새인데요. 원래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00여 개체가 생존하고 있는데, 우리 수라갯벌에서 연중 100~150여 개체가 보이고 있어요. 굉장히 많은 개체가 수라갯벌에 있는 것이지요." 저어새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다. 자리를 옮겨 수라갯벌 안쪽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삐요삐요삐요 하고 새소리가 들린다. 오 단장은 "우리나라에는 약 50여 종류의 도요새가 찾아온다"며 "그 중 유독 청다리도요만 뿅뿅뿅 이렇게 특별한 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오후 2시 40분쯤 전북 군산시 수라갯벌 앞 둔치에서의 풍경이다. 이날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은 수라갯벌에 들기 행사를 진행했다. 참가자 19명은 이곳 둔치를 시작으로 수라갯벌 안까지 들어가 수라갯벌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했다. 수라갯벌은 30년 넘게 진행 중인 새만금 개발사업의 사업지 안에 있는 갯벌이다. 새만금 사업 부지 중 수라갯벌은 운이 좋게도 일부를 제외하곤 매립되진 않았지만, 2006년 완공된 방조제에 막혀 바다와의 흐름이 끊겼다. 수라갯벌에 깃들어 살던 생명들도 사라져갔다. 시민들의 요구 끝에 하루 두 번 해수유통이 이뤄지면서 수라갯벌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일부나마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날 수라갯벌에서 관찰된 수많은 생물들이 그 방증이다. 쇠제비갈매기·저어새부터 수달까지… 멸종위기종 삶터 실제 이날 수라갯벌에서는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다양한 종의 새들을 볼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낙하하듯 내려와 물 아래 먹이를 낚아채 먹는 쇠제비갈매기,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검은머리갈매기, 한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민물도요 등이 관찰된 것이다. 갯벌로 들어가니 물과 땅의 경계선쯤에선 좀도요 10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있는 것도 보였다. 망원경을 통해 자세히 보니, 이들은 물에 고개를 처박고 바쁘게 돌아다니며 먹이를 먹고 있었다. 그 밖에도 혹부리오리, 중대백로, 메추라기도요 등을 볼 수 있었다. 갯벌 주변 자갈길에서는 왜가리 털, 흰물떼새의 알 등도 발견됐다. 오 단장은 "좀도요·흰물떼새·민물도요 같이 작은 새들은 작은 먹이들을 먹다 보니 큰 저서생물해수와 담수 서식지의 바닥에 사는 수중생물이 없어도 먹을 것이 있어서 이곳에 모인다"며 "여기에 바닷물이 많이 교환돼서 저서생물이 많이 번성하면 큰뒷부리도요나 알락꼬리마도요같이 조금 더 큰 새들도 이곳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라갯벌에 깃들어 사는 생물은 새들만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포유류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멧돼지의 흔적이 발견됐다. 올방개 수풀을 헤집어 생긴 물웅덩이가 그것이다. 멧돼지는 올방개 같은 습지식물의 뿌리를 먹는데, 그 먹이원을 찾는 과정에서 부리로 수풀을 다 뒤집어엎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물웅덩이가 생긴다. 그리고 이 물웅덩이는 자연스럽게 수채잠자리 애벌레를 비롯한 다양한 생명이 깃드는 공간이 된다. 실제 이날 물웅덩이에서는 다리가 달린 올챙이가 보였다. 오 단장은 "개구리가 이곳에 있으면 먹이사슬에 따라 또 다른 파충류가 들어오고 그 뒤로 또 다른 종이 들어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한편으로 멧돼지의 흔적은, 수라갯벌에 해수유통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갯벌과 육지로 이어지는 배후습지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기도 하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갯벌에 바닷물이 충분히 유입되지 않으면서, 염분농도가 낮은 곳에서 사는 올방개와 같은 식물이 자라나고, 그에 따라 올방개 등을 먹는 멧돼지 같은 동물들도 이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오 단장은 "갯벌은 소중하고 배후습지는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며 "물론 새만금 사업을 하기 전에 이곳에 더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갯벌이 또 다른 형태의 자연으로 바뀌면서 그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수라갯벌의 습지대에서는 수달의 흔적도 발견됐다. 갯벌에 난 수풀에는 물이 있는 곳까지 풀이 일자로 눕혀져 길이 난 곳이 있었는데, 조사단은 이를 수달이 지나다닌 자리로 추정했다. "수달이 하도 지나다니니까 길이 난 것"이라는 설명이다. 수달은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1급이다. 그밖에도 이날 수라갯벌에서는 고라니를 비롯해 여러 포유류의 똥과 발자국을 찾을 수 있었다. 오 단장은 "수라갯벌에는 너구리, 수달, 삵, 고라니 등의 발자국이 다 있다"고 말했다.
바닷물 유입 정도 따라 서식 생물 변화… 배후습지 확대되기도 아울러 수라갯벌에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도 살고 있었다. 특히 염생식물과 습지식물이 혼재해 살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일반 습지대에 사는 올방개나 갈대뿐 아니라, 염생식물인 퉁퉁마디나 해홍나물도 발견됐다. 과거 이곳에는 염분이 더 높을 때 서식하는 칠면초가 주로 많이 자랐다. 오 단장은 "칠면초가 살았을 때보다 염분이 더 떨어지면 해홍나물이, 더 떨어지면 퉁퉁마디가, 더 떨어지면 나문재 같은 식물이 진입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다만 조개류의 경우 이날은 거의 다 폐사한 모습만 보였다. 이날 수라갯벌에서 발견된 폐사한 조개류는 재첩, 하얗게 변해버린 가무락 등이었다. 조사단에 따르면 가무락은 검은색이지만 상태가 안 좋아지면 누렇게 변한다. 갈게·농게가 만들어 놓은 구멍은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오 단장은 "현재 수라갯벌에는 재첩과 칠게, 갯지렁이 등이 아주 조금 살아남은 상태인데, 새만금 사업으로 해수가 많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상류부에 사는 재첩 등이 이곳에서 조금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며 "해수가 자주 들어오면 염분이 높은 곳에 사는 노랑조개 등이 들어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제 기억엔 예전새만금 사업 전엔 보통 어민 100~200명 정도는 이곳에 들어와 가무락 등 조개를 캐는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조개가 없어 조개를 캐는 작업이 중단된 상태"라며 새만금 사업 이후 갯벌이 변해버렸다고 토로했다. 공동행동 "새만금 신공항, 생명 다양성 해치고 경제성도 없어"
문제는 이렇게 미완의 회복 상태로나마 살아 숨 쉬고 있는 갯벌이 또 한 번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29년 개항을 목표로 수라갯벌에 새만금 신공항을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새만금 신공항 건설로 수라갯벌이 매립되면 생물 다양성이 또 한 차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새만금 신공항이 건설되면 새들과 항공기가 충돌할 위험이 크고, 신공항 건설 예정지는 해수면 상승과 잦은 기상재난으로 인해 침수될 가능성도 높으며, 새만금 신공항 사업은 경제성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공항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새만금 신공항 부지 바로 옆에 수요가 없어 매년 3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누적시키고 있는 군산공항이 버젓이 운영되고 있고, 지역마다 유령·적자 공항으로 전락한 국제공항들이 즐비한 마당에 새로운 공항을 더 짓겠다는 국토교통부는 도대체 어느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수라갯벌을 비롯한 새만금 갯벌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의 핵심기착지이며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생태지역에 속한다"며 "거대 토건자본의 이윤일 뿐인 사업으로 없앨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갯벌과 바다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1인 미디어 고요의숲에도 실립니다.
최근 주요기사
▶오마이뉴스 시리즈에서 연재하세요! ▶오마이뉴스 취재 후원하기 ▶모바일로 즐기는 오마이뉴스 ☞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
관련링크
- 이전글훈련병 잡은 수류탄…실전용 투척 훈련 꼭 필요한가 [뉴스] 24.05.22
- 다음글외도 의심 끝내 여자친구 목 졸라 살해…"평소에도 잦은 폭행" 24.05.2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