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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분만실…임신중절 수술 후 그녀는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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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39회 작성일 24-08-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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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에서 임신 중지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의료계는 여전히 임신 중지 수술에 소극적이며, 일부는 진료조차 거부한다. 각자도생에 내몰린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체불명의 판매자를 만나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을 구매한다. 가짜 약인지, 진짜 약인지 확인이 어렵지만 지름 1㎝의 알약을 입안에 털어 꾸역꾸역 삼킨다. 정부와 국회는 뒷짐 진 채 여성들의 목숨 건 임신 중단을 관망 중이다. 뉴스1은 지난 2개월간 전국 산부인과 300여 곳을 전수 조사하고, 전국 곳곳에 있는 미프진 판매자들과 구매자 여성들을 직접 만나 대한민국 임신 중지 실태를 심층 분석했다.


홀로 남은 분만실…임신중단 수술 후 그녀는 울지 않았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홍유진 서상혁 김예원 장성희 기자 = "저희 그런 진료 안 봐요."


벌써 몇 번째인지 내쫓기듯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번호를 또 눌렀다. "아뇨, 저희 원장님은 그런 거 안 합니다." 그런 거란 임신 중단 수술을 의미한다. 어른들의 세계에선 임신 중절 수술은 그런 거 또는 그런 진료인 걸까. 열여덟살 소정가명 양의 고민이 깊어졌다.

임신 사실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산부인과가 아닌 내과에서였다. 그저 속이 울렁거려 컴퓨터 단층 촬영검사CT를 받으러 간 것뿐이었다. 복부 CT 사진 속 둥그런 낭을 가리키며 의사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신 아니면 암 둘 중 하나예요. 산부인과나 큰 병원에 바로 가보세요."

소정 양은 병원에서 나와 바로 택시를 탔다. 산부인과로 향하는 열여덟살 소정 양의 눈앞은 온통 희뿌옜다. 임신과 암 둘 중에 무엇이어야 다행인 걸까. 그래도 임신인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 진짜 임신이면 어떡하지. 산부인과 앞에 내려서도 임신과 암 중 무엇이 다행인지 결론 내리지 못했다.

병원에서 혈액과 소변 검사를 했다. 결과는 임신이었다. 임신 호르몬 수치가 정상 범위를 훌쩍 웃돈다고 했다. 11주 차였으니 그럴 만했다. 그래 암보다 낫지. 임신이 죽을병은 아니니까. 소정 양은 이런 위안을 마치 강제당한 기분이었다.

남자친구와는 헤어진 뒤였다. 부른 배로 교복을 입을 순 없었다. 내후년 스무살이 되면 전공을 살려 회계 직무로 취업할 생각이었다. 소정 양은 임신 중단이 강제당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수술동의서 아빠 유무에 없음…울음 없는 분만실

하지만 수술할 결심과 수술은 다른 문제였다. 부모님 동의 없이 수술받을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문자를 썼다가 지우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문자는 하나씩 지워지다가 이내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가 저절로 지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검증되지 않은 온갖 임신 중단 방법들이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배를 엄청 세게 때리거나, 아니면 담배를 한꺼번에 많이 피우는 것도 방법이래요. 근데 그렇게 해봤자 부작용이 더 클 것 같아 그만뒀어요."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연락할 수 있는 병원에는 모두 전화했다. 병원마다 임신 중절 수술 비용이 천차만별이었다. 수십만 원 차이가 났고 앞자리가 다르기도 했다. 수술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아이 아빠를 데려오라는 곳도 있었다.

온라인에서 불법 거래되는 임신 중절 약물 미프진도 잠시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짜일지도 모르는 약에 몸을 맡길 순 없었다. 미프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으나 국내에서는 허가 문턱을 넘지 못해 대부분 어둠의 경로로 구해야 한다.

"제 친구는 인터넷에서 몰래 구매한 미프진을 복용해 임신 중단에 성공하긴 했는데, 한 달 내내 하혈했다고 해요. 임신하고도 가지 않던 산부인과를 그제야 가더라고요."

임신 18주 차, 더는 혼자 안고 있을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임신 사실을 고백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이미 주수가 꽤 차서 유도분만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한 곳은 지역에서 손꼽히는 대형 병원으로 건물 전체가 산부인과였다. 으리으리한 모습과 달리 각종 비용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기준이 없었다. 영양제와 유착방지제부터 사산아 처리 비용까지 모두 병원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성명 무명, 엄마 박소정, 아빠 없음" "남성 파트너 동의 없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본원에서 지지 않습니다."

소정 양은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18년 인생 통틀어 가장 많은 사인을 한 날이었다. 문제가 생길 시 모든 책임을 온전히 지겠다는 서약이었다. 아빠 유무 칸에 없음을 적어 넣을 때 남자친구가 잠시 떠올랐다. 그가 원망스러웠지만 끝끝내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수술 당일 오후, 위층 분만실로 올라갔다. 옆방에는 다른 산모가 있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떠들썩한 옆방과 분리된 수술대에 소정 양은 홀로 누워 있었다.

순간 자신의 인생이 얄궂게 느껴졌지만 이제 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아직 고등학생인 소정 양은 생각했다. 그는 울지 않았다. 소정 양은 울음 없는 분만실에서 한동안 혼자 있었다.

◇낙태죄 폐지 5년…여전히 여성에게만 드리우는 굴레

함제이 씨44는 일을 하다가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 함 씨는 스물한 살부터 약 18년간 성매매 여성으로 일했다. 첫 임신 사실을 확인했을 때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다. 함 씨는 불행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몹시 아픈데 여기서 애를 낳는다면 아이도 나처럼 불행해지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버스정류장 맨 끝에 있는 산부인과를 찾아 문을 열었다. 걸을 때마다 나무 장판이 삐그덕거리는 허름한 병원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낙태 해주는 병원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었다.

별다른 상담이란 것이 없었다. 초음파를 보고 몇 주인지 일러주고 그대로 수술대에 오르는 식이었다. 나이 지긋한 의사는 "8주 차쯤 됐으니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 병원에 나의 몸을 맡겨도 되는 걸까. 그러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낙태죄가 살아있던 시절이었기에 함 씨는 죄인 된 심정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몇 년 뒤 다음 수술 때는 문제가 한층 복잡했다. 병원에서는 아이 아빠를 데려와야 수술을 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미 남성과는 헤어지고 난 뒤였다. 전 남자친구에게 연락했더니 "바쁘니 혼자 해결하라"는 무책임한 대답이 돌아왔다. 임신은 남성과 여성의 공동 결과물인데 매번 책임은 함 씨가 홀로 떠안았다.

"제발 한 번만 병원에 와줘. 나 좀 살려줘. 제발"

함 씨는 전 남자친구에게 간절히 빌었다. 헛구역질이 치미는 몸을 이끌고 계속 사정했다. 전 남자친구는 마지못해 병원에 얼굴을 비쳤다. 함 씨는 그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둔 황 씨의 삶과 일상은 변했지만 헛구역질 치미는 몸으로 간절히 빌었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 News1 DB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를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1953년부터 존재했던 낙태죄 조항은 사라졌다. 임신 중지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지만 아직도 진료를 거부하거나 쉬쉬하는 병원이 많다.

"왜 피임하지 않았느냐" "도덕이 결여됐다" "즐기고 책임은 피한다" 등 임신 중단 여성을 향한 시대착오적인 비난이 무엇보다 도를 넘었다. 임신에 따른 책임의 굴레를 여성에게만 드리우는 분위기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성이 홀로 책임지는 것은 대부분의 임신 중단 여성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실입니다. 임신 중절 후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심각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죄책감입니다. 생명권을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임신 중절한 여성의 인생을 다 아냐고. 이 여성이 겪은 수많은 과정과 경험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려 했느냐고."

덤덤하게 인터뷰하던 함 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일부러 진통제도 안 준다"…항암제로 중절 홍보까지

오늘날에도 산부인과 문턱을 넘기 쉽지 않다. 일부 산부인과에는 낙태죄의 왜곡된 잔재가 아직 남아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어떤 의사들은 임신 중지 여성에게 일부러 진통제 처방을 하지 않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의사 본인에게 단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소극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진료 행태도 문제다. 아예 진료조차 하지 않고 진료를 하더라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은 병원이 수두룩하다. 수술 전 상담 단계부터 사후 관리까지 일관된 기준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일부 병원은 임신 중지를 결심한 여성에게 태아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 부적절한 진료를 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2020년 발간한 인공임신중절 임상 가이드라인을 보면 수술 전 상담에는 부작용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궁천공 등 신체적 합병증뿐만 아니라 우울증, 사회적 낙인까지 수술 부작용으로 나열돼 있을 정도다.

임신 중지 수술이 음지에 머무는 사이 개원가에서는 아찔한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MTX 주사다. MTX는 본래 항암 치료제로 쓰이는 약물인데 주로 자궁외임신 등 비정상 임신에 한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개원가에서는 MTX 주사가 간단한 임신 중절 방법인 것처럼 거짓 홍보를 하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MTX가 항암제라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홍순철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일반적인 중절에 MTX를 쓰는 건 어느 교과서에서도 나온 적이 없는 방법"이라며 "자궁 외 임신일 경우 나팔관 절제를 피하기 위해 여러 부작용을 감수하고도 MTX를 사용할 만하지만 정상적인 임신을 한 여성에게 사용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cym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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