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英 MZ들에 한국어는 판타지"…옥스퍼드대, 외국어로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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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재 집필하는 조지은 옥스퍼드대 교수
조지은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랭귀지 센터에서 쓰일 한국어 교재를 만드는 중인 조 교수는 “한류 팬들의 눈높이에 맞는 한국어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옥스퍼드대 랭귀지 센터에서 가르치는 외국어는 현재 프랑스·독일·스페인어 등 유럽권 국가 언어 8개와 일본·중국·아랍어다. 한국어 교육은 이르면 오는 10월 시작한다.
센터에서 쓰일 한국어 교재를 조지은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과 교수가 집필하고 있다. 조 교수는 20일 본지 인터뷰에서 “지금껏 옥스퍼드대가 채택한 외국어는 학생과 교직원의 생활권에 속한 유럽 국가나 학문·비즈니스 차원에서 필요한 국가 위주였다”며 “한국어는 순수하게 영국 MZ세대 수요가 높아 채택된 것으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옥스퍼드대는 올해 초 처음 ‘한류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한국 문화와 역사 전반에 대해 가르치는 교양 강좌다. 지난 6월 배우 차인표가 위안부를 주제로 쓴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한국학 전공 필독서로 선정하고 교내 모든 도서관에 비치했다. 지난달엔 작곡가 김형석을 초청해 옥스퍼드대 셸더니언 극장에서 특강을 열었다. 17세기 건립된 이 극장 무대에 아시아 대중음악인이 오른 건 처음이다. 조 교수는 이런 최근 한국 관련 행사를 모두 주도했다.
왜 옥스퍼드대가 최근 들어 한국 교육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일까. 조 교수는 “단순 K팝이나 K드라마 등 한류 열풍 때문이라는 차원은 넘어섰다”고 말했다.
-한류 때문만은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인가.
“영국 MZ세대에게 한국어는 이른바 ‘판타지 언어’가 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가본 적 없는, 잘 모르는 프랑스나 스페인 언어를 중·고교 때 제2외국어로 선택해서 듣지 않느냐. 그것처럼 영국 학생들에겐 한국어가 세련되고 ‘쿨하다’는 느낌이 드는 언어다. ‘한국어 판타지’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영국 교육 현장에서 한국어 인기가 많아지고 있나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영국 초·중·고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규 과목도 아닌 한국어를 방과 후에 가르치는 학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육 당국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해서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2022년 45개, 작년 68개 등으로 매년 빠르게 증가 추세다.”
-영국 교육부도 한국어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영국 교육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학생들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쓰는 데다 인공지능AI 번역 프로그램까지 쏟아지니 굳이 외국어 공부를 안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한국어는 알아서 공부하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올해 영국 교육부 의뢰로 관련 연구도 진행 중이다.”
영국은 프랑스어, 독일어 등 유럽 주요 국가 언어를 공교육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영국 중등 교육과정 평가 시험GCSE에서 프랑스어를 선택한 학생 수가 2000년 30만명을 넘었는데, 2021년 약 13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독일어는 약 14만명에서 4만명 정도로 폭락했다. 외국어 공부하는 학생이 전체적으로 많이 줄어든 것이다.
-영국 교육부 의뢰로 진행하는 연구는 무엇인가.
“한국어를 배우려는 동기를 분석하고 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영국인 130명을 인터뷰했다. 에든버러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K팝 팬도 아니고 K드라마는 본 적도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한국을 막연히 동경하며 한국어를 배우려 한다. 한류를 즐기는 영국 MZ세대 분위기에 휩쓸려 ‘한국어 판타지’를 갖게 된 것으로 분석한다.”
-영국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다른 이유는 없을까.
“맨체스터에 사는 40대 학부모는 중학생 딸 때문에 배운다고 했다. 한류에 심취한 딸과 공통 관심사를 만들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난민으로 영국에 정착한 학생은 ‘소속감’을 찾으려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답했다. 소셜미디어에서 ‘K팝 팬’으로 활동하며 잃어버린 소속감을 찾았다는 것이다.”
-옥스퍼드대 랭귀지 센터에서 쓸 한국어 교재는 어떻게 집필하고 있나.
“난이도별 7권으로 이뤄진 ‘안녕 코리안’이라는 교재다. ‘한국어는 이제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는 전제로 쓰고 있다. 2021년 ‘K팝’을 주제로 한 트윗이 세계적으로 78억개에 달했다. 이들은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퍼진 ‘대박’ ‘먹방’ 같은 단어를 자기들 언어와 조합해 쓰면서 즐긴다. 한류 팬들끼리 가상의 ‘K세계관’을 만들었고, 한국어가 놀이 도구다. 이들 눈높이에 맞춘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들 눈높이에 맞는 한국어 교육이 무슨 뜻인가.
“한국어를 단순히 ‘한국에서 쓰기 위한’ 말로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 학생들에게 ‘소복소복’ 뜻을 물으면 답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영어로 된 어떤 한국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 단어를 한국어 배우는 외국인들은 다 안다. 이처럼 ‘K세계관’ 단어를 위주로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소복소복’은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이 2020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발표한 곡 ‘크리스마스 러브’에 나오는 가사다. 영어로 ‘falling falling’으로 단순 번역됐는데 팬들 사이에서 정확한 뜻을 유추하는 게 당시 일종의 놀이처럼 퍼졌다.
-일각에선 한류 열풍이 잦아들고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한류가 시들해져도 한국어는 남을 것이라고 본다. 1970~1980년대 세계적으로 일본 만화 붐이 일었을 때 일본어 배운 외국인들이 넘쳤다. 이후 일본 만화 붐은 잦아들었지만 이들이 일본 문화를 자기들 언어로 번역해 쌓아놓은 유산은 남았다. 이게 아직도 재생산된다. 한류가 주춤해도 지금 한국어를 배우는 MZ세대들이 쌓은 유산은 남을 것이다. 이들이 사회 주류가 되는 시점에 두 번째 한류 열풍이 불 수도 있다.”
☞조지은 교수
서울대 아동가족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딴 뒤 2007년부터 영국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제2 외국어 습득 연구 분야 권위자로 옥스퍼드대가 발간하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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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태준 기자 pyotaej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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