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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나는 수입 SUV 뒤에 붙은 문구, 쓴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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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19회 작성일 24-08-07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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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택시 운전사] 택시를 하면서 알게 되는 사실들

[김지영 기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씨X"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저녁 9시 30분. 7시간째 운전을 하고 있었다. 10시간 하루 노동 시간 중 2/3를 넘겼다. 졸음이 쏟아지는 시간을 이를 악물고 견디면 졸음이 멈추는 것처럼 몸의 고단함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서울 교외에 손님을 내려주고 중심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한참을 달려 교외를 벗어나려는데 다시 교외에서 부르는 배차 콜이 울렸다. 저녁 10시 심야 할증이 시작되기 전에 중심지로 가야 했다. 발목을 잡혔다는 짜증이 솟구치면서 반사적으로 튀어 나온 욕이었다. 욕은 중심지에 도착할 때까지 콜 끄는 걸 잊은 나에게도 향해 있었다.

마음에서야 얼마든지 했었지만 어지간해서 입으로 뱉을 일 없던 욕이었다. 그러던 것이 택시를 하면서 자주 하는 혼잣말이 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내게 욕 먹을 하등의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택시를 부른 게 죄라면 죄였다.

그와 나는 같은 택시를 탔지만 서로의 욕망은 종류가 달랐다. 그는 집에 가야 했고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내 욕에 적의는 없었다. 순간의 노기는 곧 휘발됐다. 그는 창 밖을 응시했고 나는 전방을 주시했다.

언젠가는 2.8키로미터를 달려 도착한 출발지에서 탄 손님의 목적지가 650미터 코 앞이었다. 이 때도 나는 튀어 나오는 욕설을 간신히 참아냈다. 물론 나를 부른 그 손님에게 의식적인 가해 의도는 없었다. 그는 비 오는 날 바지가 젖어가며 걸어가기 귀찮았을 뿐이다.

운수運數업
간지나는 수입 SUV 뒤에 붙은 문구, 쓴 웃음이 나왔다
승강장에 줄지어 서있는 택시
ⓒ 연합뉴스


택시 운전을 하면서 소소한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를 발견했다. 게다가 욕이라니. 누구 눈치도 볼 일 없이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가 싶었다. 습관이 되기 전에 멈춰야 했다.

방법이랄 게 따로 없었다. 택시는 운수運數업이라는 조어가 있다. 택시기사들 사이에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이 때 운수는 여객이나 화물을 이동시키는 직업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우연히 발생하는 손님운에 좌우되는 직업의 특성을 말한다.

매일 같은 운전을 하지만 다니는 길도 태우는 사람도 다르다보니 기사들 사이에서 저절로 공감되어지는 말이다. 그런 우연에 일희일비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게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그러거나말거나 내게 닥치게 될 우연은 닥치게 되어 있고 이는 내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택시업이 지닌 속성이다. 내 의지가 반영된 건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두 시점 밖에 없다. 시작했다면 끝낼 때까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손님도, 출발지도, 목적지도 내 선택이나 결정이 아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감정을 쏟지 말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자 마음 먹었다. 그러기를 며칠, 욕은 멈췄다. 세상사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 이런 경우다.

사람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택시는 택시 만의 환경이 있다. 택시 고유의 직업 환경이 있고 택시를 둘러싼 사회 환경이 있다. 택시운전사는 그 환경에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한다. 욕설에 얽힌 경험이 내겐 직업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이었다.

택시를 하기 전에 가장 저어했던 점이 택시 하면 절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단어들이다. 현실에서의 시민들은 승차거부와 난폭운전 그리고 불친절과 불필요한 대화2022년 택시서비스 시민만족도 조사. 서울연구원를 순위로 올렸지만 나에게는 냄새와 말이었다.

냄새와 말
손님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내부 모습
ⓒ 김지영


낡은 택시 문을 열었을 때 훅 하고 끼쳐오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차 안 어디선가 녹이 슬어가고 거기 배인 담뱃진 냄새가 스멀스멀 밑에서부터 연기처럼 몸을 감싸는 느낌이다. 당장은 불쾌함이 앞서지만 임금으로 보상 받지 못하고 하찮고 업신여기는 사회적 시선까지 받아 내는 고단한 노동의 은유인가 싶어 괜히 울적해지곤 했다.

거기에 예고 없이 불쑥 내뱉는 무례한 질문을 받았을 때의 난감함도 있었다. 혼자 만의 생각에 빠지거나 뭔가를 읽으면서 조용히 가고 싶은데 그걸 방해 받았던 기억은 오래 남았다. 모든 택시가 그러진 않았을텐데 일부 택시에서의 강렬했던 부정적인 경험이 전체를 수렴한다.

부정적인 경험들이 사회적 평판으로 자리잡으면 사람들은 택시를 탈 때마다 방어기제가 먼저 작동되고 사소한 사안에도 민감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때론 너무 친절한 택시기사의 응대가 오히려 불편하다. 의외성에 대한 반사적 감정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 택시도 예외는 아니다.

택시기사가 되기 전, 냄새와 말로 각인된 택시에 대한 주관적 인식은 택시 기사가 된 내게 강박적이다. 사람은 자기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객관적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인생의 경험으로 객관적이라는 말을 자주 강조하는 사람이 가장 주관적이고 독선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인 나는 더욱 방어적으로 매일 차를 닦고 몸을 씻는다.

내가 씻어내는 건 나에게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다. 밤 사이 택시 안에는 각종 냄새들이 계통없이 뒤섞인다. 청담동 명품 거리에서 탄 젊은 여자 손님이 남기고 간 샤넬 향수와 어느 낡은 먹자 골목에서 탄 초로의 남자가 거친 숨과 함께 뿜어 내는 막걸리 냄새는 차 안을 맥락 없는 냄새로 들쑤신다. 나는 그걸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씻어내고 또 씻어낸다. 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우리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태어난 존재가 아닌 것처럼 내가 택시를 하는 이유도 손님의 편안하고 안전한 이동을 위해서가 먼저는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나는 택시를 직업으로 삼았다. 모든걸 떠나서 나는 내 택시가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아니라는 걸 견딜 수 없다. 택시는 곧 내 자존이다.

손님을 태우고 운전하는 동안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다. 평소에도 잔 말이 없는 편이지만 택시를 하면서는 더욱 말수가 줄었다. 가끔 말을 주고 받는 택시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적절하게 응대를 하지만 내 말을 앞세우는 법은 없다. 그런 사람들의 목적은 우정을 쌓자는 게 아니다. 단지 시간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서다. 적절한 추임새만 넣어주면 된다.

간지나는 수입 SUV

복잡한 서울 길을 운전하다보면 과속 난폭 운전하는 택시들이 있다. 최장 시간 노동에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비롯된 오래 묵은 악습이다. 그런걸 감안해도 고쳐야 한다. 택시를 해 보니 서울에서 과속 난폭 운전을 해서 벌 수 있는 액수가 큰 차이가 없다. 위험만 가중될 뿐 어떻게 해도 고임금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택시운전사 입장으로 같은 길을 운전하다 보면 과속 난폭 운전차 중 일반자가용도 많다는 걸 발견한다. 그 중에서도 유독 간지나는 수입 SUV가 많다. 나만의 확증편향이다.

관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차 뒤에 붙은 스티커도 발견하게 된다. Baby on board. 미국 아기용품 회사의 마케팅용 광고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이 스티커가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서 대유행하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과속 난폭 운전하는 엄마 아빠들이 왜 그러는지를 추론할 수 있는 또 다른 스티커가 있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 팔고 있는 "위급시 아이들 먼저 구해주세요" 스티커
ⓒ 11번가


위급상황시 아이 먼저 구해주세요. 스스로도 과속 난폭운전을 하는 줄 알고 있고 따라서 사고가 날 확률도 크다는 걸 본인들도 알고 혈액형까지 함께 써서 붙인 스티커인가 싶어 쓴 웃음이 나왔다. 저 스티커의 말과 달리 위급 상황시 구조대원들이 가장 먼저 구하는 대상이 위중한 환자부터라는 건 상식적인데다 이미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다.

자기 아이는 특히 소중하고 운전하는 습관도 매우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하필 커다랗고 값비싼 수입 SUV를 좋아하는 사회적 맥락이 뭘까를 깊이 생각해봤다. 하지만 택시운전사인 나는 감히 그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그저 만나면 조용히 피한다.

도로 위에서의 사소한 자리싸움에서도 경적을 울리며 보복운전 낌새까지 보이는 위협적인 차들도 대체로는 그런 차들이다. 내게 학습된 결과로 나는 그런 차들을 비켜가고 양보하고 상대하지 않는다. 매일 택시 운전을 하며 마주쳐야 하는 그런 차들 때문에 시간과 감정을 소비할 새가 없다. 특히나 영업용 운전은 비겁해야 오래 안전하다.

나는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그런 날이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될 때도 있다. 경적은 대체로는 이미 사건이 벌어진 후에 울리게 되는 자기 날 선 감정의 표현이다. 급박하게 필요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쓸데 없는 감정 낭비다.

보통사람들의 부끄러움

다리 건너 고속화 도로를 타기 위해 끝차선에 길게 줄을 서 있는데 텅 빈 옆차선에서 시원하게 달려온 얌체 같은 차가 냉큼 내 앞에 끼어들려 할 때가 종종 있다. 없는 인내심을 꺼내서 거북이 걸음을 참아가고 있는데 억울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경적을 울리고 앞차와의 거리를 바짝 좁혀 양보해 주지 않는다.

그 차는 날쌔게 더 달려가 훨씬 앞에서 끼어들어 유유히 사라진다. 그런데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직전의 적개심은 간데 없이 무력하고 담담하다. 그 차가 내 앞에 끼어드는 거나 저 만치 앞에서 끼어드는 거나 내게 주는 피해는 마찬가지인데 왜 마음이 다를까를 생각해 봤다.

당장 내 앞을 막아서는 당사자에게 직면하는 위험과 저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입장 차이다. 내가 입은 피해는 같은데 사건이 어디에서 벌어지느냐에 따라 태도와 감정은 간극이 크다. 사람이 이렇게 옹졸하다.

내 앞에 직면하는 위험만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지만 저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무력하다. 거리가 그렇고 상황도 직관을 벗어났다. 그래도 다수가 피해자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결국 수준 높은 도덕성이 해결할 수 있다.

맹자가 말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옳음의 극치다."

부끄러워서 끼어들 수 없는 마음이 사회 저변에 무겁게 자리잡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듣고 보는 언론과 방송에 나오는 우리 사회의 수준은 참담하다. 거기 가장 많이 출연하는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말과 행동은 도무지 부끄러움이 없다. 그 모습이 너무 천연덕스러워 그걸 보는 보통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을 부끄러워한다. 옮음의 사회는 우리에게 아직 요원하다.

비가 개고 장마가 그쳤다. 낮과 밤이 따로 없는 폭염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여름 휴가의 절정을 즐기려 도시를 떠나지만 도로 정체는 변함 없다. 도시는 한가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떠난 자리를 누군가가 금방 채운다.

하찮은 택시운전사인 나는 오늘도 차를 닦고 몸을 씻고 부끄러움 모르는 도로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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