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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G.R Range.O 메뉴판 읽다 포기…"결국 딸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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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56회 작성일 24-02-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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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와 식당에 영어로 표기된 메뉴판. /사진=독자 제공
#.50대 후반에 접어든 이모씨는 딸과 카페에 가면 곧장 자리로 향한다. 작은 글씨에 영어로만 적힌 메뉴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다. 이씨는 "주문한다고 나섰다가 민망한 일을 겪고 싶지 않아 언제부턴가 그냥 딸한테 맡긴다"며 "요즘 카페에선 한국어로 크게 적힌 메뉴판을 찾아보기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식당과 카페에서 메뉴, 가격 등 기본적인 정보를 외래어로 표기하는 사례가 적잖다. 전문가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원하는 소비자에겐 마케팅 효과가 기대되지만 외래어 사용이 익숙지 않은 소비자의 경우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봤다.

최근 대구의 한 일식당에서 음식 가격을 원화가 아닌 엔화로 표기해 갑론을박이 일었다. 이 가게 메뉴판에는 엔화¥로 표기된 가격은 0을 붙여 원화로 계산해 주세요라는 안내와 함께 예시로 ¥100→1000원이 제시됐다. 가령 이 가게에서 파는 오징어 먹물 리소토 몬자야키는 1580엔이라 표기됐지만 실제로는 1만5800원인 셈이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매장 앞에 걸리는 간판에는 한글 맞춤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외래어 표기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하는 게 원칙이다. 외국어로 표시할 경우 한글을 병기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메뉴판은 옥외광고물에 해당하지 않아 규제할 방법이 없다.

시중 식당, 카페 등에서 외래어로 표기된 메뉴판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주로 찾는 한 유명 카페에서는 미숫가루를 M.S.G.R로, 오렌지주스를 Range.O로 표기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래어 사용이 익숙지 않은 소비자는 메뉴판 앞에서 주춤하게 된다.

직장인 설모씨58는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은 주문하고 싶어도 못 하고 어떤 음식인지도 모르고 사야 한다"며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건데 한국어로 최소한의 설명은 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 사는 김모씨56도 "메뉴판 글씨가 작아 잘 안 보이고 괜히 영어를 읽다 실수하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젊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잘 안 간다"며 "그런 곳을 힙하다고들 하는데 동의 못 하겠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메뉴판도 못 읽는 상황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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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일식당 메뉴판. 가격이 엔화로 표기됐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2030세대도 외래어를 남용한 점포가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 김모씨32는 최근 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한 식당을 찾았다가 유로화로 표기된 가격표를 발견했다. 김씨는 "가격에 한화가 같이 쓰여 있지도 않고 그날 유로화 환율을 따져 계산하는데 그렇다고 유로화를 받지는 않더라"며 "이걸 감성 포인트로 파는 가게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는 유모씨30는 "새로운 카페가 생기면 리뷰하려고 일부러 찾아가는데 이런 신상 카페는 영어로만 메뉴를 표기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알파벳으로 쓰인 메뉴판도 영어가 아니거나 필기체로 적혀 있으면 해석하는 데 시간이 걸리곤 한다. 작게라도 한국어를 같이 표기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대다수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점에서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업체 입장에서는 이국적이거나 이색적인 점을 강조해 다른 점포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려고 하는 것 같다"며 "이런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에게는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보 접근성이 제한돼 아예 선택할 수 없는 구조가 된다. 시장 전체 측면에서 격차가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도 "일부 트렌디한 소비자한테는 마케팅 효과가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소비자가 대부분"이라며 "한국에서조차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메뉴를 표기한다는 건 영어가 통하는 소비자를 선호한다는 인식을 줘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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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 기자 so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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