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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범죄 무조건 유죄 안돼" 판결에…"성인지 감수성 오해"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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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62회 작성일 24-01-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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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법관 필요성 보여주는 사례’ 의견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한수빈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한수빈 기자



대법원이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견지하더라도 피해자 진술에 따라 무조건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아 법원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성범죄 재판에서 이른바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이 작동하곤 해 2018년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 법리를 세웠는데, 이번 판결은 이 법리를 오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원심이 유죄로 판단한 사건을 지난 4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피고인이 지하철에서 여성 피해자에게 신체 접촉을 해 기소된 이 사건의 쟁점은 피고인에게 ‘추행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 2부는 피고인이 자폐성 장애로 의식하지 못한 채 신체 접촉을 했을 수 있다며 추행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그러면서 2018년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가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 판결을 거론한 대목이다. 이 판결은 성범죄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형사사건에 적용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2부는 이 판결에 대해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해야 하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했다.

또 “성범죄 피해자 진술에 대해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보더라도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타당성 뿐만 아니라 객관적 정황, 다른 경험칙 등에 비춰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됐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법원 안팎에선 대법원 2부의 이번 판결을 두고 성인지 감수성 법리를 오해한 ‘허수아비 논증’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성인지 감수성 법리는 ‘성범죄 피해자는 으레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는 피해자다움이 성범죄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마치 이 법리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나 성인지 감수성 법리는 이번 판결에서 무죄 판단의 핵심 쟁점도 아니었다.

조윤희 변호사는 21일 “성인지 감수성 법리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피해자다움의 편견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고 피해자의 말로만 유죄를 인정하라는 취지도 아니다”라며 “이번 판결이 피해자 진술로 유죄 판결을 선고할 수 없다고 이해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성인지 감수성 법리는 성범죄 사건의 당사자가 피고인만 있는 게 아니라 피해자도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어떤 상황에서 피해를 당했는지 충분히 성찰하라는 의미”라며 “그 성찰을 한다고 무조건 유죄로 판단하라는 의미가 아닌데 이번 판결은 오해에 기반해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이 성범죄 피고인들의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오선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기존의 성인지 감수성 법리에 반하거나 그 법리를 폐기하는 판결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피해자 진술을 공격하는 사건에서 악용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형사소송의 대원칙임을 감안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서 심리해야 하는지를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한 판결”이라며 “기존 입장에 제동을 걸었다거나, 다른 판단의 시발점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민유숙 대법관이 퇴임한 뒤 여성 대법관이 한 명도 없는 소부에서 선고됐다. 이를 두고 젠더 사건 등에서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는 여성 대법관의 필요성을 또다시 보여주는 사례라는 의견도 나온다. 대법원은 오는 25일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공석인 대법관 2명의 후보자를 추려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추천한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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