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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서가 피로 물들었다…"그녀가 마지막 본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아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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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63회 작성일 24-05-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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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안동시청 주차장서 여성 공무원 살해
‘이별 통보’ 이후 3년 동안 스토킹


“수많은 여성이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범죄로 고통받고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한때 연인이었다가 섬뜩한 살인자로 돌변한 얼굴을 생의 마지막 장면으로 눈에 담은 채 황망히 삶을 마감하는 비극을 맞는다.”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부부장 이민형는 2022년 10월 13일 살인죄로 기소된 A당시 44세씨에게 “피해 여성 B당시 50세씨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사랑하는 가족이 아닌, 평생 마주치지 않길 간절히 바랐던 A씨의 살기 가득한 얼굴이었다”며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전자발찌 부착 15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B씨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2022년 7월 5일 아침은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게 됐다”고 했다.


A씨는 7월 5일 아침 청바지 차림으로 경북 안동시청 주차타워에서 B씨를 기다렸다. A씨는 시청 공무직 공무원, B씨는 6급 팀장 여성 공무원이다. 그는 오전 8시 50분쯤 출근하는 B씨가 주차장 2층에 차를 세운 뒤 내리자 허리춤에서 흉기를 꺼내 “할 얘기가 있다. 차에 타라”고 요구했다. B씨는 완강히 거부했다. 실랑이가 점점 심해지자 B씨는 차량 사이로 뛰며 달아났고, A씨가 쫓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출근길에 현장을 목격한 동료들도 손쓸 틈이 없었다. B씨는 6차례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사망했다.

판결문에 ‘A씨는 시 공무원 여럿이 목격하는 가운데서도 B씨를 붙잡아 복부를 1차례 찌르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발버둥 치는 그녀를 흉기로 여러 차례 더 찔렀다’며 ‘피를 흘리는 B씨를 그대로 둔 채 자기 차를 몰아 그 길로 안동경찰서에 가서 자수했다’고 적었다. “너 때문에 내 가정 파탄 났다”
法 “자기 불행을 남 탓으로 돌려”


둘은 2019년 같은 부서에서 일할 때 교제했다. 유부남·유부녀였다. B씨는 교제한지 1~2개월 지난 그해 10월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A씨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반면 A씨는 더 집착했다. 그는 2021년 7월 “아직 잊지 못했다”, 이듬해 1월 “내 가정이 파탄 났다. 아내와 정리할 테니 나랑 같이 살면 안되겠냐”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B씨의 남편에게 “이혼하라”고 요구했고, 시부모에게는 교제 사실을 얘기했다.

자기 아내에게는 외도를 들켰다. A씨는 2022년 7월 아내에게 보낸 문자에서 “내가 니한테 제일 상처와 배신감을 줬던 때가 2019년 9월이지?”라고 썼다. 3년 전, B씨와 교제할 때 들통난 거다. 이튿날에는 “내가 B를 정리해줄게. B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고 공허함에 도박에 다시 손댔다. 그런데 B는 잘 먹고 잘산다. B는 죽는다. 그 뒷일은 니가 겪어봐라”라고 보냈다. 그는 부부간의 불화로 아내 및 자녀와 떨어져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판결문은 “A씨는 자신의 모든 불행을 B씨 탓으로 돌리는 망상에 빠져 적개심을 키우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분석했다. 이어 “A씨와의 관계를 끊고자 온 힘을 다해 밀어내던 B씨는 출근길을 노리고 잠복하던 그의 날카로운 흉기에 차가운 주차장 바닥에 쓰러져 처음 겪는 고통으로 많이 아팠을 것이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피를 보며 많이 무서웠을 것이다. 남편에게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마 품을 그리워할 어린 두 자녀를 떠올리며 많이 서러웠을 것”이라고 피해자의 마음을 감성적 표현으로 헤아렸다.

재판부는 여자친구 엄마가 문을 두드리며 애원하는 화장실 안에서 ‘여친’을 흉기로 살해하고2022년 충남 천안 원룸 살인사건-조현진, 순찰 근무에 나선 동료 여성을 쫓아가 흉기로 찌른2022년 서울 신당역 살인사건-전주환 스토킹 범죄를 예로 들며 위험한 사회를 지적하고 A씨의 형벌 고민을 토로했다.

그 고민은 ‘위험한 사회, 방치된 안전, 비참한 희생자’, ‘이 사건 참극이 벌어지기까지’, ‘살인죄의 책임과 양형, 우리 사회의 고민과 재판부의 숙의’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나눠 앞서 서술한 범행 과정과 함께 현재 형사사법 형벌의 한계와 문명사적 의미까지 담은 판결문을 통해 드러냈다.
흉악 범죄가 급증합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직시하고 아우성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습니다. 사건이 단순 소비되지 않고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과 더 안전한 사회 구축에 힘이 되길 희망합니다.
재판부 “형벌 제도 ‘인간존엄성 역설’
-다른 생명 훼손한 범죄자 안전 보장”
↔“그럼에도 ‘사형’ 선진사회에 반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도주의로 형성된 현대적 형벌제도는 남의 생명·신체를 훼손한 범죄자의 생명·신체 안전을 보장하는 역설을 부른다”며 “피해자의 사체는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찢기고 얼굴은 고통으로 처참한 모습임에도 범죄자는 신체의 완전성이 조금도 훼손될 우려 없이 그저 재판장의 입에서 새어 나올 형기에만 촉각을 곤두세울 뿐이다”고 했다. 이어 “살인자는 매일 괴로워하고 죽는 날까지 참회하겠다는 틀에 박힌 말을 꺼내는데, 그의 흉기에 처형당한 생지옥을 겪는 유족의 고통과 비탄에 비할 바는 아니다”며 “범죄자의 심신은 피해자와 가족보다 우대받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많은 시민이 생명을 경시한 사람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 피해자가 왜 살인자의 흉기에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왜 살인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 옳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의 답도 뒷맛이 개운치 않고 모호함만 남긴다”며 “그럼에도 한 사람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한 피고인에게 동등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우리가 선진사회로 진입하며 쌓아온 복합적인 사회적 합의와 성숙도에 반하지 않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고 A씨에게 극형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A씨 처벌과 관련해 사형 및 무기징역을 포함한 법정형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B씨가 느꼈을 고통과 원통함에 합당한 처벌, 균열된 정의 회복을 위한 노력, 유사 범죄로 위협받는 사회 안전시스템 구축과 범죄자 엄벌을 외치는 잠재적 피해자의 목소리까지 하나하나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하며 형량을 정했다”며 “B씨의 공포, 유족의 충격과 설움, A씨의 잔혹함 등 모든 감정과 상황을 평가하면 유기징역의 상한인 30년의 징역형 외에 달리 적정한 양형을 선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29년보다 1년 높다.

1심 재판부에 수십차례 반성문을 써내고 선고 전에 검찰의 구형이 내려진 결심공판에서 “죗값을 달게 받겠다. 깊이 반성한다”고 했던 A씨는 1심 선고 나흘 뒤 항소했다.

징역 30년→20년 확정
“자수하고 정신 다소 불안”


항소심은 맡은 대구고법 제1형사부는 지난해 3월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는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졸피뎀 성분이 든 약물을 복용했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하지만 확인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상태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유족도 엄벌을 탄원한다”면서도 “자수했고, 잘못을 인정하고, 정신이 다소 불안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1심 형량보다 10년 낮췄다.

A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지난해 6월 기각해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이천열·김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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