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나를 만나면 왜 자꾸 실종될까? 나도 모른다"
연쇄 실종 사건의 중심에 있던 범인이 조사 과정서 내뱉은 충격적 증언이다.
전과 33범, 계속해서 법망을 빠져나갔던 그는 세상의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10년 전 오늘. 강화도의 한 야산에서 A 씨36의 시신이 발견됐다. 당시 알몸 상태로 나뭇가지와 흙으로 덮인 채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경찰은 타살을 강하게 의심했다.
실종신고를 한 A 씨의 아내에게 남편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김 씨라는 얘기를 들은 경찰은 살인 사건임을 직감하며 김 씨당시 36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왜 그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했을까?
◇내연녀의 의문 실종 가족들에겐 "해외에 있다" 안심시켜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 2001년 12월 17일, 김 씨의 내연녀였던 B 씨40는 친정집에 함께 머물던 중 여동생에게 강화도에 있는 자기 아파트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당시 B 씨는 내연남 김 씨와 함께 생활하던 아파트에서 나와 친정집에 머물고 있었다. 김 씨는 B 씨에게 아파트를 사줄 정도로 깊은 사이였지만, 김 씨가 B 씨의 딸을 추행하기 시작하자 B 씨는 이별을 통보했다. 이후 B 씨는 김 씨로부터 자신이 사준 건물을 내놓으라는 협박이 계속되자 김 씨를 만나기 위해 강화도를 찾았고, 이후 B 씨는 실종됐다.
B 씨가 실종된 몇 주 후 그의 건물의 명의가 김 씨에게 넘어갔다. 명의 이전 서류에는 B 씨가 직접 찍지 않은 도장이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은 B 씨가 실종된 지 3개월 후 알려졌다. 당시 김 씨는 B 씨의 가족들에게 그가 해외에서 잘살고 있다고 연락하며 안심하게 했기 때문이다. B 씨의 행방은 끝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두 번째 실종 사건, "땅 팔아라" 연락받은 지인…끝까지 행방불명
두 번째 사건은 2004년 발생했다. 당시 C 씨40대는 자신에게 땅을 판 김 씨에게 다시 그 땅을 팔라는 제안을 받았다. 김 씨는 우선 명의를 넘기면 땅을 팔아서 돈을 주겠다는 이상한 약속을 했지만 당시 김 씨와 깊은 친분이 있던 C 씨는 철석같이 이 말을 믿었다.
9월2일 C 씨는 김 씨와 만나기로 한 날, 함께 그와 인감증명서를 떼기 위해 집을 나선 뒤 실종됐다.
C 씨는 가족도 없었기 때문에 한 달 뒤에서야 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은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김 씨를 상대로 조사를 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 수사를 받던 김 씨는 "왜 나를 만나면 자꾸 누군가 실종되는지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내 팔자가 이상한 것 같아서 점쟁이를 찾아가 보니 넌 원래 그런 운이야라고 했다. 나도 정말 억울하다"라고 진술했다.
◇주변 조망권 둘러싸고 갈등 빚던 남성, 야산서 사망한 채 발견
2년여의 세월이 흐른 2006년 8월 19일 김 씨가 살고 있는 같은 마을의 펜션 관리인 D 씨50대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D 씨는 실종신고 보름 만에 마을 주변 야산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그는 주변 땅과 조망권을 둘러싸고 김 씨와 큰 갈등이 많았던 인물이었다.
김 씨와 연관돼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 세 번째 사망 사건이었다. 김 씨는 D 씨가 사라지기 전 펜션에 설치된 보안업체에 전화해 CCTV 위치 등 무언가를 확인하려 한 정황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그는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화재에 대한 문의를 미리 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진술을 했다.
D 씨의 시신에선 흉추와 늑골 등 다발성 골절이 발견돼 타살이 의심됐지만, 명백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결국 김 씨는 또다시 용의선상에서 빠져나오게 됐다.
◇세 번의 혐의 벗은 김 씨…또다시 발생한 네 번째 변사 사건
2001년, 2004년 2006년…
강화도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실종 및 변사사건의 중심에는 항상 김 씨가 있었다. 하지만 뚜렷한 증거를 포착하지 못한 이유로 사건들은 모두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고, 김 씨는 항상 혐의를 벗어났다.
이렇게 세 건의 실종 및 사망사건이 잊혀져갈 무렵, 또다시 변사사건이 발생한다.
◇토지 사기로 법정 다툼 벌이던 남성, 김 씨 만난 후 실종
2014년 8월 6일 타지역에 살던 A 씨는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강화도 인근의 땅을 김 씨에게 구매했다. 먼저 매매 대금으로 1억 1000만 원을 지불했지만, 김 씨는 돈을 받고 명의 이전을 해주지 않았다. 이에 법정 싸움으로 번진 갈등 끝에 판결까지 났지만, 김 씨는 끝내 매매 대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실종 당일 A 씨는 김 씨와 담판을 짓기 위해 강화도를 찾았다가 행방불명됐다. 당시 시신은 옷이 모두 벗겨져 있었고, 사망자의 휴대전화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됐다. 누군가 상황을 조작한 흔적들이 나타나자, 경찰은 A 씨의 변사사건을 타살로 규정하고 수사를 벌여나가던 중 김 씨가 연관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강력한 용의자인 김 씨를 체포한 경찰은 미제로 남은 앞선 세 건의 실종 및 사망사건도 함께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 결과 김 씨는 앞서 벌어진 모든 실종, 살인사건의 마지막 목격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증거불충분 등의 상황을 모두 꿰뚫고 있던 김 씨는 범행을 전부 부인했다. 이에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실시했지만 모두 "아니요"라는 대답이 진실이라는 반응이 나와 수사에 더 큰 혼선을 줬다.
또한 당시 전과 33범이었던 그는 경찰 조사에서 "나이 60 넘은 사람이 젊은 사람을 어떻게 죽였겠냐?"라고 반문하며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운 나빠서 사건에 휘말렸을 뿐" 끝까지 결백 주장
의심스러운 행적들이 발견됐지만 번번이 수사망에서 벗어났던 김 씨. 하지만 며칠 뒤 피해자 A 씨의 유류품에서 김 씨의 지문이 발견됐고, 사건 당일 신고 있던 슬리퍼와 집 문틀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검출됐다.
또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정황까지 CCTV에 포착됐다. 하지만 김 씨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운이 나빠서 이러한 사건에 휘말렸을 뿐"이라며 계속 결백을 주장했고, 취재진과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A 씨를 살해한 과정이 여실히 드러났지만, 김 씨는 재판 전까지도 자신이 누명을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2015년 9월 29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그가 확정받은 죄목은 A 씨를 살해한 사건이 유일하다. 그의 주변 인물들이 실종되거나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그에 대한 커다란 의혹이 제기됐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앞선 세건의 실종 변사 사건은 모두 미제로 남아있다.
한편, 김 씨는 유명 프로야구 선수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사건 당시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선수 김 씨는 아버지와 의절하고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khj80@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