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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일부러 월세 살고, 車 파는 아빠들…미혼모에 양육비 안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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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71회 작성일 24-05-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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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에 양육비 주는 아이 아빠 15% 미만…대부분이 도망간다"
"끝까지 아이 책임지는 미혼모에 사람들 맹비난, 너무 억울하다"

[※ 편집자 주=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의 인터뷰 기사는 분량이 많아 세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첫 번째입니다. [삶] 인터뷰 기사는 자서전적 인터뷰이다 보니 첫 번째 인터뷰 기사에는 개인 성장 스토리가 많이 들어갑니다. 다음 주 중반에 나가는 두 번째 기사는 미혼모에 대한 차별 문제, 그다음 주 초중반에 송고되는 세 번째 기사는 미혼모 관련 정책 문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삶] quot;일부러 월세 살고, 車 파는 아빠들…미혼모에 양육비 안주려고quot;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미혼모는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진 사람들입니다. 아기를 낙태하지 않았고, 보육원에 보내거나 입양을 선택하는 대신에 직접 키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몸을 함부로 굴렸다고 하고, 책임도 못 질 아이를 낳아서 국민 세금으로 애를 키우려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민정50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지난달 25일과 30일 연합뉴스와의 두차례 인터뷰에서 "미혼모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미혼모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생명이 생겼는데, 이를 죽이거나 버리지 않고 지킨 사람들"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미혼모가 된 것은 대체로 아이 아빠들이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아이 엄마 모르게 이사를 하고, 전화번호를 바꾸는 남자들도 꽤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의 아빠들 가운데 자기 자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도 미혼모에게 양육비를 매달 주는 사람은 15% 미만"이라면서 "명목상의 소득수준을 낮추기 위해 자동차를 팔고, 자기 집의 명의를 부모에게로 돌려놓고는 월세를 살기도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소득수준이 낮으면 양육비를 안 줘도 된다는 점을 악용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심지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1974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야간 상업고등학교와 야간 전문대를 졸업했으며 31살 때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기를 가졌다. 남자 친구가 낙태하라고 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낳아서 직접 키웠다. 김 대표의 아들은 현재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됐다.

김 대표는 2013년부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서 일했고, 작년부터 이 단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에 출범한 한국미혼모협회는 2천600명 정도의 회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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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은 어디인가.

▲ 경남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에서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했다. 먼저 아버지가 출가해 스님이 됐고, 이에 화가 난 외할아버지가 어머니를 데려갔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살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에 찾아온 적이 있나.

▲ 아버지는 1년에 1∼2번 오셨는데, 3∼4년간 안 오시기도 했다. 아버지는 집에 오시면 하루 이틀 정도 머물다 가셨다. 어머니는 집에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다른 분과 재혼했다.

-- 어머니 얼굴을 전혀 모르고 자랐나.

▲ 집에는 엄마 사진도 없었으니 얼굴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엄마를 볼 기회가 한 번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소풍날이었다. 우리 학교는 집에서 걸어가면 20∼30분 걸리는 곳에 있었는데, 아이들은 학교 앞 구멍가게에 몰려가서 소풍지에 가서 먹을 것을 미리 사고 있었다. 나는 돈이 없으니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더니 2만원을 줬다. 나는 그때 그분이 나의 엄마인 것을 알았다.

-- 엄마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나.

▲ 정확히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키가 나처럼 작았고, 얼굴도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엄마가 소풍날 맞춰서 학교 앞에 온 것인가.

▲ 일부러 나를 보기 위해 온 것은 아닌 듯했다. 엄마는 근처의 친정에 왔다가 아침 일찍 서울로 되돌아가던 중에 우연히 나를 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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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혼자 손주 두 명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 초등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큰 아버지는 할머니 혼자 아이들을 키울 수 없으니 우리 자매를 보육원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스님인 아버지가 그 옆에 앉아 있었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울기만 했다. 그때 할머니는 본인이 혼자 키우겠다고 했다. 아버지 형제들은 반대했지만, 할머니는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 성장 과정에서 생활 형편이 어려웠나.

▲ 집에 쌀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반찬은 김치, 간장, 고추장뿐이었다. 쌀밥 대신에 보리밥과 수제비, 칼국수를 먹는 날이 많았다. 할머니는 칼국수에다 라면 하나를 넣어 끓여주시곤 했는데, 라면 맛이 나지는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전과참고서나 문제지 등을 사본 적이 없다. 매달 학교로 배달되는 이달의 학습지를 구독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으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원도 가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나는 보육원에 갔더라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군것질은 해본 적이 없나.

▲ 다른 친구들은 과자를 사 먹곤 했다. 당시에는 생라면을 부숴서 먹는 것이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걸 먹는 친구들이 엄청나게 부러웠다. 나도 엄마 아빠가 있으면 사 먹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 도시락을 싸 가는 것은 문제가 없었나.

▲ 내 키가 153㎝밖에 안 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점심때 굶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매일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만 싸주시니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계란말이, 감자조림 등을 싸 와서는 여럿이 둘러앉아 같이 먹곤 했다. 나는 김치 반찬이 싫어서 아예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는 교실 밖의 계단에 앉아 있곤 했다. 언니는 나와 달랐다. 매일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를 갖고 학교에 가서 꿋꿋하게 다 먹었다. 언니의 키가 나보다 5㎝ 더 큰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내가 도시락을 싸간 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논이나 냇가에서 메뚜기를 잡아 팔면 돈을 조금 받았는데, 이걸로 소시지를 사서 반찬으로 만들어 학교에 가져간 날이 있었다.

-- 집안일도 많이 했나.

▲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빨래를 했다. 더운물이 없으니 한겨울 빨래터는 냇가가 아닌 우물가였다. 우물물이 냇물보다는 덜 차갑기 때문이다. 그때는 고무장갑도 없었다.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는 남의 집 모내기, 벼 베기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는 품삯을 조금 받았다. 겨울에는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떨어진 솔잎을 모아서 포대에 담아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었다. 가을에는 밤나무밭에 가서 할머니의 밤 수확을 도왔다. 가시 장갑 없이 맨손으로 밤을 수확하려니 가시에 많이 찔렸다. 마을 사람들은 부모 없이 홀할머니와 사는 우리 자매를 보면 "불쌍하다. 잘 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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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는 어디로 진학했나.

▲ 부산에 있는 야간 상고로 갔다. 낮에는 금정구에 있는 작은 실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가서 주산, 부기, 타자를 배웠다. 먹고 자는 것은 실 공장 기숙사에서 해결했다. 언니도 같은 여상을 다녔고, 같은 공장에서 일했다. 그때가 1990∼1992년이었는데, 실 공장에서 15만원가량의 월급을 받았다. 엄청난 박봉이었다.

-- 본인은 상고 졸업 후에 대학에 갔나.

▲ 야간 전문대학교에 가서 세무회계를 배웠다. 낮에는 창원의 엔지니어 회사 등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다. 내가 아이를 가진 것은 만 30세였던 2004년이었다.

-- 남자 친구는 어떻게 만났나.

▲ 단체 인터넷 채팅에서 그가 눈에 띄었다. 말이 통하는 것 같았다. 우리 두 명은 개인 채팅으로 빠져나갔고, 커피숍에서 얼굴을 봤다. 남친은 제약회사 영업직 사원이었다. 2년 정도 지난 시점에 나는 아이를 가진 것을 알았다.

-- 임신에 대한 남친의 반응은.

▲ 낙태하라고 했다. 자기 부모님께 나를 소개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핑계를 댔다, 나로서는 황당했다. 아기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이 낙태를 요구하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알겠다. 그런데 낙태는 못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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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낙태를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 임신하면 생명이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스님이어서 불교 영향도 받았다. 불교에서는 살생하지 말라고 한다. 벌레도 죽이지 말라고 하는데, 배 속의 아기를 죽이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직접 키울 생각은 없었다. 혼자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우리 자매를 힘들게 키우면서 우리가 잘되기만을 바라시는데, 책임도 안 지는 남자의 아이를 낳아서 혼자 키운다는 것은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해외에 입양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 왜 국내 입양이 아닌 해외 입양을 생각했나.

▲ 아이가 해외에서 살면 영어를 잘할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아이가 모국어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잘살고 있으니 아이한테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입양 보내면 아이가 무조건 좋은 양부모 아래에서 잘 살고, 행복하게 살 것으로 생각했다.

-- 결국, 남자친구와 헤어졌나.

▲ 남친은 아이를 입양 보내고 오면 다시 만나겠다고 했다. 임신 9개월째 되는 시점에 나는 입양을 포기하고 직접 양육하기로 결정했다. 남친에게 전화해 내 결심을 이야기했더니 그는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 왜 내 발목을 잡으려 하느냐"고 했다. 나는 "내가 키우면서 양육비 달라는 소리 안 할 테니 모른 척하라"고 했다. 그 이후 남친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 입양을 포기한 이유는.

▲ 서울의 한 미혼모시설인 애란원에서 지냈는데, 아기를 입양 보낸 엄마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아기를 키우지 못하고 버렸다는 죄책감에 계속 울었다. 그 엄마들은 다른 엄마의 아기를 보면 또 눈물을 쏟았다. 아이를 직접 키우는 엄마들은 나이가 어린데도 아기를 잘 돌봤다. 그걸 보면서 나도 직접 키우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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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아이를 가진 사실은 남자 친구 외에 아무도 몰랐나.

▲ 그렇다.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그러다 출산 직전에 한 살 위의 언니가 알게 됐다.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가족한테 알려야 한다고 해서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낳아서 입양 보낼 생각이라고 했더니 언니는 "니 미쳤나?. 아이를 왜 입양 보내나?. 우리가 키우면 되지"라고 했다.

-- 할머니는 본인의 출산을 전혀 몰랐나.

▲ 할머니와 친척들이 알게 된 것은 아이가 4살 때였다. 할머니 생신날 아이를 데리고 부산의 큰댁에 갔다. 아이를 본 할머니는 기뻐했다. 이제 나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하셨다. 나에게 가족이 생겼으니 책임감 있게 살아갈 것으로 믿는다는 뜻이었다. 아버지 형제를 비롯한 친척들은 말로는 아이를 예뻐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아이를 안아주거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지 않았다.

-- 언니는 지금 어떤 일을 하나.

▲ 2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고향의 집에 불이 나서 황토로 다시 지었는데, 방바닥 틈새로 장작불 일산화탄소가 들어왔다. 언니는 그 집 방에서 자다가 돌아가셨다. 언니는 미혼이었다. 부모 없이 자란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결혼생활을 보고는 혼자 살기로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좋아하는 사람도 뒤늦게 생겼는데, 갑자기 죽고 말았다. 나는 언니와 붙어살다시피 했고 많이 의지했는데, 너무 슬프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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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을 미혼모라고 하나.

▲ 한 번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엄마들을 말한다. 아이를 입양 보낸 엄마도 넓은 의미의 미혼모 해당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직접 키우는 엄마를 양육 미혼모라고 한다. 정부는 24세 이하는 청소년 미혼모, 그 이상은 성인 미혼모라고 한다. 24세는 청소년이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힘든 대학생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그렇게 나누고 있다. 청소년 미혼모는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요건이 성인 미혼모보다 덜 까다롭다. 비혼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임신해 출산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 방송활동을 하는 일본인 사유리 씨가 그런 경우다. 정자은행을 통해 임신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우리는 이런 사람을 자발적 미혼모라고 부른다.

-- 전국에 미혼모가 몇 명 있나.

▲ 정확하게 조사되지 않았지만 2만5천명 정도다. 10대에서 40대까지 전 연령층에 미혼모들이 있다. 비중으로 보면 20대 중반∼30대 중반이 가장 높다. 중고생 미혼모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중고생은 부모들이 낙태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어떤 경로로 미혼모가 되나.

▲ 남자가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을 알고 도망가서 미혼모가 되는 사례가 가장 많다. 임신 초기에는 낳아서 함께 키우자는 남자도 있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배가 불러오자 마음이 바뀌어 도망간다. 생각보다는 남자들의 마음이 쉽게 바뀐다. 여자친구가 자기한테 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몰래 이사 가는 남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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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아빠들이 미혼모에게 양육비를 제대로 주나.

▲ 꾸준하게 매월 주는 사람은 15% 미만이다. 이들 가운데 월 100만원씩 주는 남자도 있긴 하다. 이런 사람은 극소수다. 대체로 평균 30만∼40만원 정도다. 법원이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할 때 대체로 그 금액은 월 50만원 미만이다.

-- 법원이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해도 아이 아빠가 거부하는 사례들이 많은가.

▲ 월 소득 200만원 미만이면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를 안 줘도 된다. 그러다 보니 그 이하로 소득을 줄여놓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사람들이 꽤 많다. 돈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동차를 팔기도 한다. 자기 집의 소유권을 부모에게 돌려놓고는 월세를 사는 사람도 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하는 사례도 있다. 최대한 자기 자산과 소득이 별로 없는 것처럼 꾸미려는 것이다.

-- 왜 자기 자식 키우는데 들어가는 돈을 아까워할까.

▲ 나도 그 심리를 모르겠다. 자기 자식의 옷을 사고 학원 보내는데 들어가는 돈인데, 그걸 안 주려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 아이 엄마가 아이 아빠한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도 있나.

▲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이를 알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전 남친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혼모가 기르는 아이의 아빠들 가운데 자기 자식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10%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한다.

-- 양육비 달라는 이야기를 일부러 안 하는 미혼모도 꽤 있나.

▲ 아이 아빠한테 면접 교섭권을 주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과 더 이상 접촉하기 싫은 것이다. 아이를 빼앗길까 봐 두렵고, 기나긴 싸움이 싫어서 양육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갈수록 추세가 바뀌고 있긴 하다. 양육비를 요구해야겠다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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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혼모들이 성적性的 방종으로 애를 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한데.

▲ 미혼모들이 몸을 함부로 굴렸다는 것인데, 동의할 수 없다. 우리 회원들 가운데 부도덕한 엄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다. 미혼모들은 남자 친구를 사귀었고, 예상치 않게 아이가 생긴 것뿐이다. 미혼모들이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러 다녀서 아기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일은 거의 없다. 문란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미혼모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은 정말로 올곧게, 바르게, 정직하게, 책임감 있게 살았는지 묻고 싶다.

-- 미혼모에 대해 비난하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있나.

▲ 미혼모 엄마들은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왜 책임도 못 질 아이를 낳아놓고는, 정부 지원으로 아이를 키우려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혼모가 부도덕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한다.

-- 미혼모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 어떻게 보면 아주 훌륭하고, 용기 있는 엄마들이다. 낙태하지 않고 생명을 지켰기 때문이다. 입양을 보내지 않고 자기가 책임을 진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낙태하거나 입양 보낸 엄마보다는 책임지고 키우는 엄마를 비난한다. 저출산 시대에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응원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 본인은 미혼모가 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나.

▲ 아이를 낳았을 때 기쁘면서도 부담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낙태나 입양 대신에 아이를 직접 키운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취재지원 이은도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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