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두시간 거리엔 캄보디아…이 농장선 나홀로 한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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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캄보디아 직원만 12명 충남 버섯농장서 1박2일 서울에서 약 100km 떨어진 곳엔 ‘캄보디아’가 있다. 충남 아산의 한 버섯 농장. 한국인 사장을 제외한 직원 12명이 모두 캄보디아 사람이다. 캄보디아 말을 쓰며 일을 하고 캄보디아 음식을 해먹으며 힘을 낸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새송이와 느타리 버섯을 그들이 재배하는 셈이다. 그 현장에 몸을 던져보기로 했다. 미숙한 ‘한국인 노동자’로 1박 2일을 보낼 참이었다. 지난달 22일 오전 9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숲과 논밭 사이로 구불구불 10km쯤 더 달렸다. 외진 곳으로 잘못 들어온 것 아닌가 의심이 들 때쯤 버섯 농장 팻말이 보였다. 약 1만㎡3000평 땅에 노란 벽과 파란 지붕으로 이뤄진 창고형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철커덕, 끼익….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달 23일 충남 아산의 한 버섯농장에서 캄보디아 출신 직원들이 수확한 새송이 버섯을 포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인 기자 한명이 현장 체험 중이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쭈므립 수어!” 캄보디아어 회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익혀간 인사말이다. 캄보디아인 고참 선배들은 이른 아침부터 작업 중이었다. 합장한 손을 코 밑에 어색하게 가져다 대고 고개를 숙였다. 부자연스러운 기자의 발음에 갸우뚱하던 그들이 이내 알아들었는지 환하게 웃어줬다. 1984년생부터 1995년생까지 말하자면 2030세대라고 했다. 농장이라기보다 공장 같았다. 지게차로 톱밥, 비료 등을 덤프트럭 적재함만한 상자에 붓는다. 커다란 회오리 칼날이 돌며 섞어주는데, 이것이 버섯을 기를 토양인 ‘배지’다. 컨베이어 벨트에 약 1L짜리 병을 올려두면 배지를 자동으로 담아준다. 이런 병을 하루 7200개씩 만든다. 여기에 새송이, 느타리 등 버섯을 접종하고 한 달을 기다린다. 병마다 다 자란 버섯이 매일 1000kg씩 생산된다. 곧장 마트와 시장으로 팔려나간다. 캄보디아 출신 직원 킴렝씨가 배지를 담은 병마다 새로 기를 버섯을 접종하고 있는 모습. 왼쪽 원통형 금속 통에 버섯 배양액이 담겨 있고 이를 컨베이어 벨트 기계를 통해 병에 접종한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버섯 병을 담은 바구니 하나의 무게는 14kg. 여러 바구니를 한꺼번에 쌓으려다가 병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다. 캄보디아 선배들은 “괜찮아요”라고 했다. 한 병에서 조그만 버섯이 10~20개까지 자란다. 튼튼한 버섯 2개만 남기고 칼로 솎아 내야 하는데 멀쩡한 버섯을 잘라냈다. “괜찮아요.” 이토록 실수에 관대한 직장이라니. 캄보디아 속 ‘한국인 노동자’로서 받은 특혜 아니었을까. 한국인 속 ‘캄보디아 노동자’였다면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일터인 ‘버섯 창고’는 어둡고 컴컴하고 축축했다. 버섯이 좋아하는 어두컴컴한 푸른 조명에, 온도는 섭씨 14~17도로 서늘했다. 습도는 80~90%로 유지되는데, 매순간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느낌이었다. 약간 덜 차가운 ‘냉장고’랄까. 캄보디아에서는 추운 겨울에도 최저 15도 정도다. 춥지는 않을까? 답변은 이번에도 “괜찮아요”였다. 장근욱 기자가 새송이 버섯 솎아내기 작업을 하고 있다./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이날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났다. 퇴근 시간은 오후 5시이지만 버섯 솎아내는 작업이 더뎠다. 더 일한 만큼 수당을 받는다. 캄보디아 직원들은 농장 한쪽에 있는 간이 식당에 모였다. 불판에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회식이었다. 갓 수확한 버섯을 굽고 묵은지 김치를 곁들였다. 소주와 맥주를 컵에 따라 “건배”를 했다. 놀라운 건 그다음 풍경이었다. 직원들은 식탁 한쪽에 휴대전화를 두고 고향 캄보디아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했다. 스피커폰을 크게 틀어놓은 채 밥을 먹고 주방일도 했다. 작업반장을 맡고 있는 프롯38씨의 세 살 난 딸이 영상통화로 심통을 부렸다. 1년 전 집에 다녀간 아빠가 집에 자주 오지 않는다고 “아빠, 여자친구가 생겼어?” 하는 것이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모두 박장대소했다. 이 간이 식당이야말로 캄보디아에 두고 온 가족들과 가장 가까운 장소였다. 지난 22일 저녁 프롯씨가 버섯 농장 일을 마치고 고국 캄보디아에 있는 딸과 영상통화를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장근욱 기자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기자는 사무실 한쪽에서 침낭을 펴고 잤다. 어깨가 찌뿌둥했다. 그러나 바깥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벌떡 일어섰다. 캄보디아 직원들은 인근 임대 아파트 3채에 나눠 산다. 오전 7시 반, 어제 회식했던 식당에서 아침 식사가 한창이었다. 넓은 그릇에 밥을 담고 캄보디아식 수프를 올린 ‘덮밥’이었다.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또 다른 버섯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저녁 농장 일을 마치고 회식을 준비하는 직원들. /장근욱 기자 캄보디아 출신 직원들이 ‘프로페셔널’인 것은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귀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어 능력 시험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뒤 한국에서 단기 취업 비자E-9를 받았다. 기간은 최대 10년. 일을 제대로 못하면 5년도 채우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농장에 빈 자리가 생기면 농장에 남은 캄보디아 사람들이 면접관이 된다. 직원들끼리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동향인을 선발하는 문화가 생겨난 셈이다. 한국인이라곤 이 버섯 농장을 12년간 운영해 온 이진성51 사장뿐이다. 이 사장은 “실수로 농사를 망쳐 버섯을 몇t씩 버리는 일이 생기면 임금이 체불되기도 했다”며 “지금 캄보디아 직원들은 농장의 주인이 된 것처럼 책임감 있게 나서서 일한다”고 했다. 장기간 신뢰가 쌓여 그들을 믿고 농장 운영의 대부분을 맡기게 됐다. 버섯을 기르는 흙인 배지가 담긴 병들을 바구니에 실어 쌓아놓은 모습.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정예 일꾼’인 캄보디아인 12명 중 버섯 농장에서 앞으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단 1명뿐이다. 최대 10년 단기 취업을 넘어 장기 체류하면서 가족도 데려올 수 있는 E-7 비자는 이 농장에 1명만 허용되기 때문. 우리나라 정부는 E-7 등 외국인의 취업 제도 확대를 추진 중이다. 작은 버섯들이 촘촘히 자라난 병에 튼튼한 버섯 2개만 남기고 솎아내는 작업.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버섯 한 상자를 선물 받고 운전석에 올랐다. 내비게이션에는 서울까지 2시간 거리로 나타났다. ‘캄보디아’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전방에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라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줬다. 일상으로 돌아가니 각오하라는 경고 같았다. 수확한 새송이 버섯을 포장하고 있는 장근욱오른쪽 기자와 캄보디아 출신 농장 직원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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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장근욱 기자 muscl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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