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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울 거 밖에서 울자"…건설 현장서 29세 아들 잃은 노모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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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3회 작성일 23-10-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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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DL이앤씨 산재 8번째 사망자
강보경씨 어머니·누나 인터뷰
①사과 한마디 없는 회사
②경찰은 2년째 수사 중
③정부는 뒤늦게 압수수색
quot;이왕 울 거 밖에서 울자quot;…건설 현장서 29세 아들 잃은 노모의 절규

아들은 여덟 번째 사망자였다. 평생을 경남 통영에서 살아온 이숙련71씨가 서울 한복판에서 커다란 피켓을 들고 선 이유다. 그의 아들은 지난 8월 11일 DL이앤씨옛 대림산업가 시공을 맡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창호 교체를 하다 추락해 숨졌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아들을 포함해 이 회사가 맡은 현장에서만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7일 저녁 검은 상복을 입은 백발의 이씨는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아들 사진을 들고 퇴근길 시민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씨는 "거리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우리 애는 없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터진다"고 절규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이씨는 "아까운 목숨들이 너무 억울하다"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야 되니까 내가 하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계속 시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장비 없이 투입...휴대폰은 한달 뒤 돌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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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이씨의 아들 강보경29씨는 경남 김해의 한 대학에서 나노공학 전공 박사 과정을 밟던 대학원생이었다.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힘으로 학업을 이어왔다. 내년엔 취업해 홀로 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던 아들이었다. 강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하면서도 이따금 일용직 노동으로 생활비를 번다는 사실은 얘기하지 않았다.

사고는 8월 11일 부산 연제구 레이카운티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어났다. 강씨는 DL이앤씨의 하청업체인 창호제조사 KCC 소속 일용직 노동자로 현장에 파견됐다. 현장에서 6층 높이에서 3인 1조로 창호 교체 작업을 하던 그는 창호가 떨어지면서 20m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이씨에게 아들의 사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아들의 사고 경위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강씨의 누나 지선씨가 사고 이튿날 현장을 찾았지만,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사고 당시 함께 작업 중이었던 동료 2명의 연락처도 받을 수 없었다. 사고 직후 사측은 강씨에게 안전모와 안전대, 안전벨트를 모두 지급했지만, 강씨가 착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추후 경찰 조사에서 사고가 발생한 6층에는 안전벨트를 걸 고리조차 없었고, 현장에서 지급된 안전장비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아들의 휴대폰도 사고 한 달이 지난 뒤에야 돌려받았다. 경찰을 통해 현장 동료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가 돌려주는 것을 잊었다는 사측의 말만 전해 들었다. 누나 지선씨는 "동생이 바지 뒷주머니에 휴대폰과 지갑을 각각 넣고 다녔는데, 사망 다음 날 현장에 갔을 때 현장소장님이 지갑은 바로 줬다"며 "그런데 왜 휴대폰만 한 달 뒤에 줬는지 경찰도, 사측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가져갔다는 동료와 함께 일한 분들과 얘기해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8명 숨졌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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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은 합의를 종용했다. 아들의 장례식장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측 노무사는 사측을 위한 탄원서를 써준다, 언론에 알리지 않는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합의서를 내밀었다. 사망 당일 안치실 앞에서 울고 있는 모녀에게 다가온 또 다른 사측 관계자는 "빈소에 친척들은 몇 분이나 왔나, 무슨 일 하시냐"라고 묻기도 했다. 지선씨는 "원청인 마창민 DL이앤씨 대표는 장례식장에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다"며 "회사는 원래 그렇게 죽음에 둔감한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아들을 잃은 이씨는 거리로 나섰다. 국내 건설업계 톱5 중 한 곳인 DL이앤씨 시공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이는 아들뿐이 아니었다. 지난해 1월 이후 총 7건의 사고에서 8명이 숨져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로 꼽히는 곳이었다. 아들처럼 일용직 노동자로 건설현장에 간 이들이 높은 곳에서 추락하고, 무거운 공사 장비에 깔리는 등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없이 일하다 줄줄이 목숨을 잃었다. 이씨는 딸인 지선씨에게 "밖에 알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며 "이왕 집에서 울 거 밖에서 울자, 거리로 나가서 울자"고 먼저 나섰다. 지난 4일부터 이씨와 지선씨는 서울 서대문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진상 규명과 사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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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측은 책임을 회피했다. 마창민 DL이앤씨 대표는 지난 12일 국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보경씨 유족에게 "깊은 유감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직접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지선씨는 "작년에 한 말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사람이 했다"며 "형식적인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달라진 것도 없었다. 마 대표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도 잇단 노동자 사고에 "중대재해 예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후 5명이 더 숨졌다. 지선씨는 "이대로라면 9번째, 10번째 사망자가 계속 나올 수 있다"며 "책임지지 않으면 죽음을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적 절차도 더디다. 2년간 8명이 숨진 산업재해 사망사고 7건 모두 여전히 수사 중이다. 단 한 건도 검찰에 송치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여덟 번째 사망자인 강씨의 사고 이후인 8월 29일에서야 DL이앤씨 본사와 부산 연제구 현장 사무실을 처음 압수수색했다. 이마저도 사고가 발생한 지 18일이나 지난 뒤다.

스산한 바람에 기온이 뚝 떨어진 20일에도 이씨는 꼿꼿이 거리에 섰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었지만,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귀중한 생명들이 스러질 때까지 왜 아무도 처벌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처벌하면 그 사람들도 조심합니다. 엄벌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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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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