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당하다 대학 졸업…간호사 면허증 땄지만 취업 두렵고 눈물만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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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정우열의 회복’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원장이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한국일보>※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는 한국일보 신청 링크https://forms.office.com/r/Krc2wt0UH5에서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또 기사 하단의 QR코드로도 접속이 가능합니다. 선정되신 분의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과 홈페이지에 소개되며 익명을 철저히 보장합니다. ▶상담신청서 바로가기
대학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한 내성적인 성격의 30대 여성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는 걸 싫어합니다. 무뚝뚝하다, 우울해 보인다, 불친절하다, 고집이 세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친구가 없어 보인다거나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요. 제 학창 시절은 지옥이었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서울에서 살다 지방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학교에선 ‘왕따’를 자주 당했어요. 고2 때는 별 이유도 없이 그냥 싫다는 이유로 1년간 같은 반 동급생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뒤 간호학과에 가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서도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조별 과제나 병원 실습 때 저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고 막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제 외모를 조롱한 사람도 있었고요. 교수님도 다른 학생들이 있는 앞에서 저를 대놓고 무시하면서 비꼬고 인신공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문제가 많아서 이렇게까지 사람 운이 없는 건가?’ 하고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께 이야기도 해봤지만 무조건 참으라고만 하면서 저를 구석으로 몰아갔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딱히 나쁘진 않았는데 성인이 된 뒤로는 점점 원망과 증오심이 생겼어요. 도와달라고 호소했는데도 "어쩔 수 없으니 무조건 참으라"고 하면서 저를 외면했으니까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믿고 간호사 면허증과 취업만 생각하며 꾹 참고 공부했지만 졸업하고 나니 취업은커녕 낙오자가 됐습니다. 학업을 그만두지 않았던 걸 후회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를 괴롭힌 사람들은 다들 잘 사는 것 같더군요. 대학병원 간호사가 돼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사는 사람도 있고요. 그들은 저를 기억도 못 하겠죠? 부모님께 "그때 저를 한 번만 이해해주고 휴학을 허락해 주셨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면 "아직도 그걸 그렇게 짊어지고 있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십니다. 간호사 면허증은 얻었지만 병원 취업은 엄두도 못 냅니다. 이력서를 넣을 데도 없고 취업이 된다고 해도 잘 근무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 미래를 위해 다닌 학교였는데, 대학 때 입은 피해로 제 삶은 엉망이 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화병이 나고 억울해서 혼잣말도 많이 하게 됩니다. 대학생 때 부모님 허락 없이도 휴학을 하는 게 맞았을까요? 저처럼 여러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을 어떻게 하면 깨끗이 털어낼 수 있을까요? 먼 훗날 이런 얘기를 웃으면서 하게 될 수 있을까요? 정은수가명·32·무직 은수씨의 사연을 읽으며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 자격증까지 받았다는 데 대해 대단히 훌륭하다는 격려의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간호학과는 대학의 다른 학과와는 달리 동기들이 같은 수업을 듣고 소규모로 실습을 많이 하는 등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며 매 학년을 보내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으면 무척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님이 "아직도 짊어지고 있냐"고 하셨다고 하지만, 감정의 문제와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수씨는 계속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로 자꾸 돌아가 그때 휴학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부모님을 원망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려 하죠.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은수씨 탓이 아니라 트라우마의 일반적인 증상입니다. 하지만 방치하면 그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됩니다. 부모님 허락 없이 휴학을 했어야 했는가 질문하셨는데, 당시의 선택이 맞냐 틀리냐를 따지는 것은 은수씨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은수씨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때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후회나 자책을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향이 돼야 합니다. 과거 자신의 선택에 대해 계속 자책하는 것 역시 은수씨 탓이라기보다는 심리적 증상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후회나 자책보다는 자기연민이 필요합니다.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할 만큼 했지만 주위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은수씨가 당시 은수씨의 편이 되어 그 선택을 인정하려고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은수씨는 힘겨운 상황을 견뎌내려고 노력한 끝에 졸업장과 간호사 자격증을 따냈잖아요. 문제 해결을 위해 너무 힘들 때는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는 행동도 했고요.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괴로웠을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떠올리는 것은 힘들 겁니다. 그래도 과거로 다시 돌아가 감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이해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은수씨는 과거의 사건들은 잘 설명하지만 은수씨가 겪은 과거의 감정을 주관적으로 묘사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듯합니다. 그건 은수씨와 비슷한 경험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당시 감정이 어땠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과거를 떠올리기가 괴롭기 때문이죠. 하지만 감정 문제는 괴로워서 덮어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괴롭더라도 두려움, 원망, 수치심, 한심함 등 나의 감정을 조금씩 이해해야 합니다. 은수씨는 트라우마가 일상에 지장을 주고 있는 것을 가장 어려워하는 걸로 보입니다. 간호사로서 일할 준비가 다 됐는데도 취업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회피의 증상입니다. 대인관계도 취업도 피하게 되지만 그럴수록 점점 악순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더 떨어지고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됩니다. 어렵더라도 부딪치는 연습을 조금씩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때로는 상처를 받고 괴로움을 겪겠지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은수씨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것은 전적으로 가해자들의 잘못입니다. 재발을 방지하려면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가해자들은 주로 반항하지 않는 사람을 타깃으로 삼습니다. 은수씨가 불편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점점 더 은수씨를 무시하면서 괴롭혔을 수도 있어요. 불편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을 미워할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조리한 상황에 동조하는 선택을 자신도 모르게 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수씨에게 옳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에게 거절을 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가만히 버티는 연습부터 해보시기 바랍니다. 부조리한 상황을 회피하거나 괜찮은 척 웃으며 무마하려 하지 말고 대답을 하지 않거나 가만히 있는 방식으로 상대에게 최대한 자신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은수씨와 상대방 사이의 경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아닌 은수씨 자신의 감정에 끊임없이 집중해야 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감정일기를 쓰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내 입장에서 내 감정을 기록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글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그런 것이 반복될 때 일상에서 내 감정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트라우마 치료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대인관계에서 경계를 지키는 훈련이 되기도 합니다. 대인관계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지만, 새롭게 친구를 사귄다거나 취직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오래된 친구나 가까운 친척처럼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들과 소소한 관계부터 시작해 조금씩 확장해보시길 바랍니다. 직접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문자나 전화통화 등으로 연습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부담이 적은 선에서 자신감을 얻으면서 단계적으로 관계의 수위를 올려가도록 해야 합니다. 취직을 바로 시도하기보다는 업무나 대인관계에 부담이 적은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과거의 감정과 기억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괴로웠던 과거의 경험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정도로 한 번에 확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우선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지금의 내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데 힘을 쏟으시길 바랍니다. 과거에 머무르며 후회나 자책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은수씨 감정을 잘 헤아리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만족감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는 한국일보 신청 링크https://forms.office.com/r/Krc2wt0UH5에서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또 기사 하단의 QR코드로도 접속이 가능합니다. 선정되신 분의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과 홈페이지에 소개되며 익명을 철저히 보장합니다. ▶상담신청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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