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리 자르지마" 지뢰 밟은 24살 군인…세계 최초 태권도 7단
페이지 정보
본문
[인터뷰] 의족 장애인으로 처음 태권도 7단 경지 도달한 김형배씨65
1983년, 제대 한 달 남기고 비무장지대 수색 중 지뢰 폭발, 왼쪽 다리 자르고 의족 달아 막막함에 3년 동안 술만 마셔, 마흔 살에 태권도 다시 시작 후 태권도 7단 승단, 마라톤 풀코스도 완주 "인간은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걸 느낍니다"
1983년, 강원도 철원 최전방서 근무하던 군인이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있었다. 군인은 당시 24살이었고 병장이었다. 응급 이송을 위해 서울로 가는 헬기에 탄 뒤로는 정신을 잃었다. 비무장지대 수색을 하다 지뢰를 밟은 거였다. 군대 말년이니 훈련도 빼준다는데, 가만히 있어 뭐 하겠느냐며 나갔던 훈련. 쾅 소리와 함께 지뢰가 폭발하며, 그의 왼쪽 무릎 아래가 날아갔다. 그 순간에도 군인은 북한과 교전이 벌어졌나 생각했다. 자신이 아픈 것도 잊은 채.
헬기 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 수도통합병원현 국군수도병원. 거기서 군의관이 다릴 잘라야 한다고 할 때, 다친 군인은 무의식중에도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군인은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에게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제대하기까지 한 달. 그 시간 안에 회복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42년이 흘러, 텅 빈 태권도장에 의자 두 개를 놓고 앉아 듣던 얘기는 그리 애달팠다. 그때의 그 군인, 김형배씨65. 나이보다 한참 젊어 보이던 맑은 얼굴, 기합 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 손님을 맞으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 왼쪽 다리에 의족을 끼우고, 20년을 넘게 태권도를 수련해 7단이란 경지까지 오른 형배씨. 그를 만나러 부산에 와 있었다.
━
태권도 도장서 아이들 가르치는 게 좋아…그게 꿈이었었다
━
군대에 가기 전 꿈은 태권도 사범이었단다. 3단까지 따서, 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한 번은 원술랑 연극 대본을 구해 연습시키기도 했다. 분장도 하고 무술 영화처럼 선보이기도 했다. 부모님들 반응이 너무 좋았다며, 형배씨가 해맑게 웃었다. 그 당시 청년의 표정이 잠시 떠올랐다. 입대를 위해 신체검사를 했다. 키가 160㎝ 정도로 왜소한 편이었다. 최전방 철책 경계를 서는 부대에 갔다. 형배씨가 수색대에 배치되자, 소대장이 의아해했다. 덩치도 작고 몸도 약한데, 명단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되돌려보내려 했다. 그때 이등병 형배씨는 원초적인 뭔가가 속에서 끓어올랐다. 저도 모르게 외쳤다.
말이 끝나자마자 뺨을 맞았다. 돌아가라면 돌아갈 것이지 말대꾸한다고. 그러니 오기가 생겨 눈물이 확 쏟아졌다. 수색대에 근무하고 싶다고 반복해서 외쳤다. 강단 있는 형배씨를 멀리서 본 중대장이 눈여겨봐서, 수색대에 근무하게 됐다. 훈련은 생각보다 더 고됐다. 50㎏ 몸무게에 10㎏ 완전 군장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구보를 10㎞씩 했다. 형배씨는 뛰기 힘들어 "내 좀 죽여주십시오"를 외치며 끌려오다시피 견뎠다. 옆에 덩치 큰 선배 하나도 입에 흰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 버티며 한두 달이 지나자 어느 샌가부터 몸이 가뿐해졌다. "인간은 진짜, 훈련하면서 만들어진다." 그걸 배웠다.
━
지뢰 사고로 의족 끼우고…3년을 술 먹고 방황, 죽고 싶었다
━
계절도 하필 한여름이었다. 다친 다리가 썩어들어 갔다. 간호사가 세숫대야에 알코올을 받아 왔다. 형배씨 입엔 수건을 물렸다. 하루 한 번 드레싱을 할 때마다 고통에 몸부림쳤다. 1년, 2년씩 병실 생활을 하는 이들을 보며 형배씨는 포기했다. 보름을 치료하고 다릴 자르기로 결정했다. 수술에 동의가 필요해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전화도 없을 때라 생명 위독이라고 전보를 쳤다. 형배씨 어머니는 보리타작하다 말고 올라와, 병원에서 울기만 했다. 군의관 말대로 왼쪽 무릎 아래는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의족을 맞춰 끼우기로 했다. 통증은 사라졌으나 절망이 차올랐다. 내가 미친 짓을 했구나 싶어 매일 자책했다. 예전에 다녔던 체육관은 근처도 못 갔다.
3년은 술을 먹고 방황했다.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 와중에 소중한 경험 하나가 떠올랐다. 형배씨가 병원에 있을 때, 초등학생들 위문편지에 정성껏 답장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2명이 면회를 와서 노래도 불러주고, 율동도 해줬단다. 그는 그때 마냥 행복했다. 다릴 다쳤기에 또 이런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고. 그리 또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죽으려고 결심까지 했을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했단다. 내가 없으면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가겠나, 그게 또 힘이 되었다.
━
마흔살에 태권도 다시 시작…중심 안 잡혀 포기하고 싶었지만
━
하루는 퇴근하던 길에 잡상인을 보고 "여기서 이러면 안 됩니다. 다음 역에서 내리세요"라고 단속했다. 덩치 큰 이가 욕설하며 형배씨에게 달려들었다. 마침 지나가던 직원 도움으로 겨우 제압했다. 일터에서 이리 자존심 상했던 경험들이 있었다. 형배씨는 태권도를 다시 배워야겠다 마음먹었다. 동네 체육관에 가서 상담하니 열쇠를 주며 "편하게 와서 언제든 운동해도 좋다"고 했다.
당시 부산에서 제일 잘 가르친단 태권도 감독을 찾아갔다. 사정을 얘기하고, 전문적으로 훈련 받고 싶다고 했다. 젊은이들과 앞차기, 돌려차기 등을 하며 훈련했다. 도저히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날 버스 타고 집에 오는데 너무 쪽팔리더라고요. 근데 내일 안 나가려니 그것도 할 짓이 아닌 거라.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다녀보자, 그랬지요."
━
석 달 지나자 뻥 하고 들어가…하루도 안 거른 발차기 300번 훈련
━
어느 날엔가, 형배씨와 다른 사람이 겨루기를 할 때였다. 그 전엔 한 번도 발차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형배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작까지 취해가며, 신난 표정으로 이리 말했다. "딱 이러면서 발로 딱 때려버리니까 빵 하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때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됐구나 싶었지요. 그때부터는 운동이 재밌더라고요." 젊은이들과 뒹굴고 훈련하고 그러면서 2002년 전국 체전 부산시 선발전일반부에 나가 준우승까지 했다. 의족 태권왕이라 해서, 지역 신문에도 크게 났단다. 24살까지 태권도 3단. 왼쪽 다리에 의족을 끼운 뒤 16년간 사라졌던 태권도 사범의 꿈. 형배씨는 이제, 4단 승단 심사에 도전했고, 비로소 따냈다.
━
태권도 공인 9단도 "발차기 엄청나게 빨라, 잘한다"…세계 최초 의족 태권왕 기네스 도전
━
"체육관 하는 사람은 계속 운동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관리가 엄청 힘들거든요. 1년에 1㎝씩 발차기 높이가 떨어진다고 해요. 40년이면 40㎝잖아요. 그걸 유지하기 위해선 엄청 해야 하는 거지요." 그리 태권도 7단을 땄다. 6단에서 7단으로 올라가는 데 성공하는 비율은 0.1%에 불과하다. 제일 힘들었던 건 훈련할 때 중심이 잘 안 잡혔던 것. 옛날엔 의족도 좋지 않아 통증이 심하고 상처가 났다. 상처 나고, 아물고, 또 훈련하고, 그리 오래 하다 보니 아예 굳은살이 됐다. 송 관장은 형배씨를 보며 "태권도 심사를 볼 때 보는 게 있는데, 형배씨는 비장애인보다도 발차기도 빠르고 더 잘한다. 평균 60점이면 합격, 그것도 나오기 힘든데, 형배씨는 냉정하게 심사해도 60점이 나온다"고 했다.
"의족을 차고 태권도 7단이라고 하면 놀래요. 살아온 얘길 쭉 해주지요. 자신감도 없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잖아요.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거지요."
"대한민국 상이군인전투나 군사 공무 중 몸을 다친 군인이 이 정도는 한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하."
"제가 다리 다쳤을 때 태권도를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그 사람을 보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없어서 더 힘들었거든요. 그러니 태권도를 하는 것도 약간 사명감 같은 게 생깁니다. 제가 처음이 되면, 누군가가 저를 보고 힘을 낼 테니까요."
[관련기사]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 배인순, 재벌과 결혼해보니…"시모, 사람 못살게 했지만 불쌍한 분" ☞ "한국, 7골이나 먹었다"…손흥민 경계 호주 감독이 내세운 전략은 ☞ "도다리인 줄 알았는데" 웬 횡재?…221만원 짜리 대어 낚은 강태공 ☞ 김재중, 군대 특혜 받았나…"카트 타고 다녔다" 손태진 폭로 ☞ 전재산 잃고 기초수급자된 배우, 이혼 고백…"컨테이너서 살아" ☞ "엄마 보고싶어요"…상주 노릇한 둘째, 부모·형 다 죽인 진짜 이유 [뉴스속오늘] ☞ "이 나이에…참담하다" 깐부 오영수, 강제추행 혐의 징역 1년 구형 ☞ 기블리 돌풍땐 몰랐는데…한국인에 외면당한 마세라티, 왜? ☞ [단독]"2만원 줄게요" 영화 설문의 함정…전국 피해자 얽히고 설켰다 ☞ 美, 미군 사망 보복 공격…"85개 목표물 타격, 장거리폭격기 동원" ☞ 미국이 밀어주는 산업, 10배 커진다는데…대학생 투자고수의 원픽은? ☞ 北 열흘새 미사일 4번 쐈다…대체 왜이러나, 김정은 노림수 셋 ☞ 큰손 중국인 절반 줄었는데…카지노, 이례적 최대 실적 왜? ☞ "진통제 맞고 뛰어" 조현우, 간절했던 부상 투혼…4차례 선방 ☞ 보이스피싱범 잡으면 1억 준다더니 현실은 0원…영화 아닌 실화 ⓒ 머니투데이 amp;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링크
- 이전글동물원도 아닌데, 원앙 100마리 모였다…춘향이의 남원에 왜 24.02.03
- 다음글"하루 커피 2~3잔 마시면"…이 환자 간섬유화 위험 뚝 24.02.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