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한 요즘 중2병,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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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자칫하면 큰병 된다 살얼음판 중2병 사춘기의 정체성 혼란을 뜻하는 중2병의 다양한 증세를 재미있게 표현한 문구들과 이미지. 내 오른팔의 흑염룡이 날뛰고 있다는 표현은 일본 만화에서 온 것으로, 주체할 수 없는 반항기를 표현한다. /일러스트=김영석 “그 방은 이제 ‘이웃집’이 됐습니다. 거기 전두엽이 덜 발달한 파충류 한 마리가 산다고 생각하세요.” 온라인 부모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대화다. 중2병. 중학교 2학년을 전후한 사춘기에 정체성 혼란을 겪는 아이들을 가리키는 속어다. 분수를 모르고 까불거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반항이 늘고, 허세성 망상과 자아도취, 연예인·게임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우등생도 성적이 떨어지고 가족과 소통을 꺼리며 성격이 변한다. 부모들은 “북한이 남침 못하는 건 중2가 무서워서래”라고 애써 웃으며 답답함을 달랜다. ‘금쪽 같은 내 파충류’만 이 시기를 무사히 건너면 될까.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요즘 가슴 철렁할 일이 많다. 10대의 정신 질환이나 강력 범죄가 급증한다는 뉴스가 쏟아져서다. 중2병은 ‘질풍노도의 시기’로 일컬어지던 풋풋한 사춘기란 정의를 벗어나, 반反사회적 이상행동의 경계선 증상이 될 소지가 높아졌다. 급속한 핵가족화, 실패와 일탈을 용인 않는 학업 경쟁, 왜곡된 정보 미디어의 홍수 등이 달라진 요즘 중2병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요즘 중2병이 옛날 사춘기보다 더 다루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극단적 핵가족화, 과열된 입시 경쟁,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인터넷 정보의 범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정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중2병은 일본어 ‘주니뵤中2病’를 직역한 말이다. 1999년 한 일본 개그맨이 라디오 방송에서 “중학교 2학년생이면 누구나 할 법한 행동이 있다”며 사춘기를 희화화하고, 청취자들이 주니뵤의 각종 예를 덧붙인 게 시초. 이 세기말 놀이는 싸이월드에서 허세적 자의식을 표출하던 한국 10~20대 사이에 오타쿠특정 분야에 빠진 사람 문화의 하위 장르로 수입됐다. 2010년대부터 불가해한 10대의 행태를 통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어른들이 전하는 중2병 증세는 이렇다. “중1은 부르면 ‘네’ 하는데 2학년은 ‘뭐요?’라며 노려본다” “말끝마다 욕이 아니라 욕 끝에 말” “엉덩이와 어깨가 쭉 빠진 자세로 앉는다” “힘든 일과 돈 내는 일은 부모 몫, 오로지 재미만 자기 몫” “최고의 동기 부여는 스마트폰 바꿔주기, 가족여행지는 와이파이 잘 터지는 곳”. 중2는 ‘내가 최고’ 또는 ‘내가 가장 불행하다’며 우쭐하거나, 또래의 인정에 목을 맨다. 만화·영화나 뮤직비디오 속 주인공이 된 듯 손발이 오그라드는 코멘트를 날리기도 한다. 한 중학생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우쭐대는 셀카 사진과 함께 난해한 말을 끼적여놓은 인터넷 게시물. "전형적인 중2병의 허세와 망상 증상"이라며 네티즌에게 웃음을 안겨주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발육이 빨라지고 정보가 넘쳐나는 탓에 중2병을 겪는 시기가 10세 전후로 내려가며 ‘초4병’도 대세가 됐다. 임태희 경기교육감은 “현재 초 3~4학년은 1~2학년 때 코로나로 학교에 못 가다 보니 기초 체력과 정서의 결손이 있는 상태에서 사춘기가 닥쳐 혼란이 더 크다”고 말했다. 말 잘 듣던 유아기 자녀와의 관계로 돌아가보려 애쓰다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중2부모병’도 생겼다. 반대로 어른이 돼서도 허세와 공격성을 보이는 ‘성인 중2병 환자’도 많다. 정치권 등에선 누군가 난해한 말이나 독설을 내뱉거나 떼로 몰려다니면 “중2병이냐” “중2병도 제때 와야 축복”이라며 비웃는다. #x2666; 10대 범죄·정신 질환 급증 10대는 감정 조절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시냅스가 가지치기를 위해 떨어져 나가며 안정된 성인의 뇌로 진화하는 시기다. 중2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다. 오히려 중2병 비하는 ‘페미’ ‘퐁퐁남’ ‘2찍’처럼 구분짓기와 혐오가 만연한 사회의 단면일 수 있다. 문제는 중2병이 우울증·자해나 약물·소셜 미디어 중독 등 정신 질환, 또는 비행非行·범죄로 나가는 극단적 경우다. 지난 1월 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건물 안에서 중학생 A15군이 숨겨온 벽돌 조각으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의 머리를 가격하는 모습이 건물 내 방범 카메라에 잡혔다. /배현진 의원실 저출산으로 청소년·아동 인구는 급감하는데, 10대 범죄 건수와 비중은 매년 늘고 흉포화·저연령화되고 있다. 지난해 무인 매장 절도 피의자의 52%가 10대였다. 10대 마약 사범도 1년 새 3.6배 폭증, 처음으로 1000명대를 돌파했다. 아동 성착취물 시청·유포자 절반 이상이 10대, 딥페이크 합성 범죄도 70% 이상을 10대가 저질렀다. 자기 절제력은 석기시대보다 나을 게 없는데, 성인 범죄를 따라 할 정보가 넘쳐나고 자극적 콘텐츠가 과시와 돈벌이 수단이 되면서 10대들은 범죄를 놀이로 여긴다. 지난 연말 경복궁에 낙서를 한 이들은 16·17세 남녀였다. 경기 남양주에서 60대 경비원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영상을 올린 이들은 중3이었다. 인천의 13세 초등생들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량 수십 대에 소화기 분말을 뿌리고 놀았다. 지난해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후 모방 살인 예고가 온라인에 대거 올라왔는데 상당수가 미성년자였다고 한다. 지난해 촉법소년10세 이상~14세 미만 범법 행위자 범죄는 2만여 건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중·고교생들도 자신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1958년 설정된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일본 등 해외에선 10대 강력범죄자에게 관용 없는 처벌을 내리는 추세다. 지난해 서울의 한 무인매장 CCTV에 찍힌 10대들의 절도 영상. 무인매장의 절도 피의자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로 나타난다.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튜브 등을 통해 성인형 범죄를 따라하기 쉬워지자 범죄를 놀이로 여기는 청소년들의 범죄가 급증하면서 범죄가 흉포화, 저연령화되는 추세다. /경찰청 이런 최악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중2병을 악화시키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자극하는 전반적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우선 중2는 수학·영어 성적에 따라 특목고에 가느냐 아니냐가 결정돼 인생의 1차 성패가 갈리는 시기다. 초4도 공부가 어려워지며 입시 경로가 첫 윤곽을 드러내는 시기.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인 김현수 명지병원 교수는 “허세와 짜증 뒤엔 경쟁 사회 속 외로움이 가져온 공포가 있다. 그 외로움에 ‘선빵선제공격’을 날리는 게 짜증과 반항”이라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요즘 아이들은 극핵가족화 탓에 부모가 아닌 어른을 만나 다양한 가치관을 접하기 힘들고, 형제가 거의 없어 부모의 기대를 홀로 받아내야 하며, 친구는 같이 놀기보단 학교와 학원에 함께 갇혀 경쟁하는 적이고, 유일한 탈출구인 인터넷엔 중독적 정보와 소비품만 넘쳐난다. 충만한 인간 관계를 쌓을 기회, 여행과 모험은 차단된다. 이런 시대 아이들은 낯설고 왜소한 자아에 대한 당혹감과 분노를 해소할 방법을 옛날 아이들보다 더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중2병 증상은 이렇게 해석하면 맞는다고 한다. 허세=“외로워요”, 짜증=“도와주세요”, 무기력증=“힘들어요”, 냉소=“자신이 없어요”. 전문가들은 기성세대가 겪은 고생과 전혀 다른 종류의 고생을 하는 요즘 10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대화를 시작해보라고 조언한다. ‘이해받는다’는 느낌만으로도, 중2병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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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정시행 기자 polygo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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