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살해 후 간 꺼내 먹은 조폭…"술 취해 그랬다" 재심 청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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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집행 사형수들] ⑫이순철
※ 이 기사에는 잔혹한 범죄 상황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형 확정 판결에 이르기까지 경위를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영웅파 이순철과 일당이 현장 검증에서 동료 조직원 살해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 /온라인커뮤니티 살인 현장에 있던 사람은 6명. 이들은 사체에서 나온 간肝을 잘라 나눠 먹었다. 1999년 10월, 동료 조직원 엽기 살해로 사회에 충격을 준 이른바 ‘영웅파 사건’이다. 영웅파 두목 이순철당시 32세은 범행을 주도한 점이 인정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2심에서 사형 판결이 나왔다. “원심 판결 중 피고인 이순철에 대한 부분을 파기한다. 이순철을 사형에 처한다.” 2심 재판부는 원심 형량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했다. 이순철은 재범 위험성이 극히 높고 교화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다.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이순철의 전과 때문이었다. 첫 살인을 저지른 건 스물두 살이었던 1989년이었다. 소년원 동기들과 광양의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먹던 중 다른 일행과 시비가 붙었다. 한 명이 낫을 들고 달려들었고, 이를 본 이순철은 칼을 꺼내 그의 허벅지를 칼로 찔렀다. 과다출혈로 상대방이 죽었다. 이 일로 이순철은 징역 12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1999년 5월 27일 가석방됐다. 영웅파 일당에게서 압수한 물품./MBC 형刑보다 일찍 사회에 나온 이순철은 소년원에서 만났던 동료, 후배들을 몇 명 모아 ‘영웅파’를 결성했다. 이 조직은 사설 경호, 청부 폭력, 보험 사기, 체육관 운영 일을 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대전 서구 도마동에 위치한 2층 단독주택을 빌려 합숙소로 썼다. 수입차 크라이슬러와 당시의 국산 고급 승용차 다이너스티를 몰았다. 엽기 살해는 이순철이 살인죄로 가석방된 지 5개월도 채 안 됐을 때, 조직 내부에서 벌어졌다. 판결문과 그간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한 그날의 이야기다. 1999년 10월 22일 새벽 5시 30분 무렵. 대전 서구 탄방동의 편의점 바이더웨이 앞에서 영웅파 조직원들이 술판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이순철, 박재범30, 유덕희29, 정덕수29, 곽종길29, 창종빈32과 창종빈의 여자 지인 2명이 있었다. 곽종길은 주사가 있었다.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이 돼 선배들에게 욕하기도 했다. 1급 신체 장애인이었던 창종빈을 특히 업신여겼다. 그러다 술이 깨면 “다신 안그러겠다”며 수그렸다. 그날 취기가 오른 곽종길은 창종빈의 여자 지인들을 건드렸다. 욕을 퍼붓고 가슴을 만졌다. 이게 발단이었다. 창종빈은 맥주병을 바닥에 던지며 경고했다. 그러자 곽종길이 조롱하며 대들었다. “X신 같은 XX, 꼴값하네.” 보다 못한 박재범이 곽종길을 찔러죽이겠다며 차에서 펜싱칼을 꺼내왔으나, 다른 사람들이 만류했다. 칼을 빼앗겼지만, 박재범은 곽종길을 쓰러뜨린 뒤 멱살과 머리채를 바닥에 몇 차례 찧어 쓰러뜨리고 머리를 발길질했다. 곽종길은 순간 기절했다. 싸움이 벌어지자 편의점 주인은 경찰에 신고했다. 이들은 경찰이 출동하기 전 급히 자리를 떴다. 기절한 곽종길을 이순철의 차에 싣고서. 일행이 탄 크라이슬러가 향한 곳은 합숙소였다. 박재범도 택시를 타고 뒤따라갔다. 먼저 도착한 셋은 곽종길을 거실 바닥에 옮겨 놓았다. 이때 정신을 차린 곽종길이 말했다. “더 때려봐라, 왜 아주 죽여버리지? 니들 나중에 두고 보자. 내가 다 죽여버린다.” 이 말에 박재범은 알루미늄 야구배트로 곽종길의 머리를 힘껏 때렸다. 등에 이어 허벅지. 쓰러진 곽종길의 전신을 두들겼다. 곽종길이 비슷한 말을 되뇌자 격분한 이순철도 배트를 넘겨받아 곽종길을 때렸다. 뒤이어 정덕수가 도착했다. 만신창이가 된 곽종길을 본 정덕수는 빨리 곽종길을 병원으로 옮기자고 말했다. 창종빈이 반대했다. 곽종길이 병원에서 죽어도 문제였고, 살아도 문제였다. 곽종길이 살았을 때 후환이 두려웠다. 결국 이들은 곽종길을 죽이기로 했다. 영웅파 현장 검증 모습./ MBC 현장에 있던 패거리는 그런 유덕희를 범행에 가담시켜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정덕수와 창종빈이 유덕희를 데리러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이순철이 먼저 범행을 저질렀다. 합숙소에 있던 닭 절단용 칼로 곽종길의 왼쪽 손목을 1회 내리찍었고, 야구배트로 다리를 때렸다. 그리곤 피가 많이 흐르는 곽종길을 욕실로 옮겨 놓았다. 20분 뒤 유덕희 포함해 편의점 술자리 싸움을 본 조직원들이 합숙소에 모였다. 이순철은 유덕희에게 칼을 주며 먼저 찌르라고 했다. 유덕희가 망설이자 이순철이 칼로 곽종길의 복부를 찔러 살해했다. 이들은 곽종길의 흔적을 없애기로 했다. 사체를 수백 개의 작은 조각으로 토막 내고, 머리부터 발까지 살가죽을 벗겨냈다.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손발의 지문을 없앴다. 치아는 잘게 부쉈다. 치흔으로 식별될 수 없도록. 시신을 해체하면서는 간을 꺼냈다. 유덕희는 이 간을 먹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거실 탁자 위에 둘러 앉았다. 그리고 소주를 마시며 접시에 놓인 간을 두 세조각씩 소금에 찍어 먹었다. 합숙소에서 범행을 모두 본 이순철의 동거녀도 강제로 간을 먹어야 했다. ‘오늘일은 영원히 비밀이다.’ 간을 먹은 건 그날의 일을 덮자는 결속의 행위였다. 심장이 멎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따끈한 간이었을 것이었다. 영웅파 일당은 사체를 쓰레기봉투 11개에 나눠 담았고, 유성구 성북동 산림욕장 부근 야산에 유기하기로 했다. 20m 간격으로 웅덩이 3개를 파, 그 안에 토막난 사체를 쏟아부은 뒤 흙과 돌, 낙엽으로 덮었다. 영웅파가 동료를 살해한 후 장기를 취식한 탁자. /KBS 이들의 합숙소에선 달러화를 포함해 현금 200여만원과 수표, 예금통장 13개가 나왔다. 야구배트, 망치, 범행에 사용된 회 칼 2점, 펜싱 칼을 비롯해 도검 여러 자루 등이 압수됐다. 조직원 살해 전, 돈이 많은 변호사 사무장을 상대로 강도 행각을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황당한 사실도 있었다. 폭력조직단에서 범행을 일삼아온 정덕수가 2년제 대학을 다니며 총학생회장에 기호 1번으로 출마했단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다. 곽종길을 살해한 사실이 빨리 들통나며 정덕수는 후보에서 사퇴했다. 11월 4일 현장 검증에서 이순철과 일당은 살해 상황을 재연했다. 야구 배트로 마네킹을 때리는 시늉하고, 사체 훼손을 연출했다. 담담하던 이순철이 고개를 숙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동료들과 장기를 나눠먹는 장면에서였다. 2000년 2월 1심 재판부는 살인·사체손괴·유기 등의 혐의로 이순철, 박재범, 창종빈에게 무기징역을 정덕수는 징역 25년을 각각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반인륜적이고 엽기적 범행을 저질러 같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면서도 “계획 범행이 아닌 점, 피해자 수가 한 명인 점, 피고인들이 범행을 시인한 점 등을 참작해 생명을 박탈하는 극형은 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다만 유덕희는 여죄 수사에서 밝혀진 사기 혐의만 인정돼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유덕희가 사체손괴에 가담한 건 이순철의 강요 때문에 행한 것이고, 간을 먹자고 제안한 이유는 조직원들로부터 배신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피하려는 행동이라고 봤다. 그해 6월, 2심 재판부는 이순철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나머지들의 항소는 기각했다. 대법원에서 형은 확정됐다. 대법원은 ‘사형은 위헌’이라는 이순철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 실정과 국민의 도덕감정 등을 고려하면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국가가 형사정책으로 사형을 처벌로 규정했다고 해서 헌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 살해현장 검증에서 울고 있는 영웅파 두목 이순철의 모습. /KBS 수감 생활 초반에는 같은 방 재소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이순철을 만났던 전前 대전교도소 보안과장은 광폭하고 반항적인 수감자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이순철이 보안과장을 처음 만났을 땐 “내 인생은 죽을 각오 돼있으니까 나를 건드리지 말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말을 했다. 상고심이 진행되던 중, 2000년 8월 15일 동료 조직원 창종빈이 감옥에서 죽었다. 창살에 러닝셔츠 2개를 이은 뒤 목을 맸다.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와 배뇨 장애 증세가 심해져 신변을 비관했었다고, 교도소는 설명했다. 소식을 들은 이순철은 사흘간 짐승처럼 울부짖었다고 한다. 창종빈은 죽기 전 유서를 남겼다. 이순철 단 한 사람을 위한 구명 탄원서에 가까웠다. 여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순철은 제가 시켜서 한 일입니다” “이순철을 살려주십시오” “이순철은 정 없이 자라서 제가 살갑게 대하니 저에게 정을 주고 제 말이라면 다 들었던 것입니다” “판사님 이순철을 살려주세요. 저는 이만 모진 목숨 놓을까 합니다”. 소년원에서 정을 쌓은 이순철과 창종빈은 각별했다. 이순철이 재심을 청구하며 함께 제출한 창종빈의 유서./KBS 재심 청구 사유는 창종빈의 유서 내용을 그대로 따랐다. 그날의 범행을 주도한 건 창종빈이었고, 자신은 그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는 취지였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여서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다는 주장도 했다. 죽은 창종빈의 유서와 탄원서들을 함께 첨부했다. 재심청구서에 적힌 이순철의 주장이다. “창종빈에게 용돈과 노모의 생활비 등을 받아쓰고 의식주를 제공받아 더욱 친밀감을 유지하던 중 곽종길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유덕희까지 죽여야 한다는 창종빈과 박재범의 마음을 돌리려고 나서게 된 것입니다.” “만취 상태가 아니었다면 인간이 인간의 간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사정을 두루 살피시어 사형보다도 무기징역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사실상 사형이 폐지된 대한민국에서, 현실적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의 유일한 차이는 가석방 유무다. 형법상 무기징역의 경우 20년 형기를 채우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이순철 재심 청구는 기각됐다. 2010년 2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헌재가 사형제를 위헌으로 결정해도 ‘종전 합헌 결정이 있었던 날’ 이후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해, 이순철은 재심 대상이 아니다. 이순철은 기독교에 귀의했다. 전도사 고시에 응시해 자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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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최혜승 기자 hsc@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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