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마을이 아이를 키운다 폐교로 학생이 돌아오다
페이지 정보

본문
[CBS노컷뉴스 기자의 현장학습 체험기①]폐교 가는 길

편집자 주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한 생명을, 한 영혼을 대하는 마음이 담긴 말 이겠죠. 그런데 실제 울산에는 그런 마을, 그런 폐교가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교육 실험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곳 입니다. 폐교가 체험학습 공간이자 시민들의 배움터로 바뀌고, 마을주민이 교사로 참여하는 그런 공간입니다.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초등학교는 2016년 2월 29일 폐교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 여파는 시골 학교부터 타격을 줬습니다. 궁근정초도 피할 수 없었고요. 남겨진 궁근정초 건물은 2년 동안 미술 전시·체험 공간으로 사용됐습니다. 울산광역시교육청은 폐교 건물 활용을 고민했습니다. 2019년 마을교육공동체거점 및 학생체험활동센터 구축 계획을 세웠습니다. 총 20억5천여 만원을 들여 건물을 새로 꾸몄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을 마을교사로 선발했습니다.
폐교 궁근정초는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센터는 학교에서 여건상 할 수 없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평일 저녁에는 마을시민배움터가, 주말에는 청소년자치배움터가 열립니다. 2021년 센터가 문을 열었으니, 햇수로 5년이 됐습니다. 센터 한 해 방문객이 4만 명이 넘습니다. 그동안 시골 폐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는 청소년과 마을주민 즉, 아이와 어른이 함께 만들어 갑니다. 이번 기획 기사는 2024년 10월부터 2025년 2월까지 5개월 동안 센터를 틈틈이 방문하고 배우면서 쓴 르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장체험학습 경험이라곤 소풍과 수학여행이 전부인 40대 중반, 어른 기자의 체험학습르포입니다.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초등학교는 2016년 2월 29일 폐교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 여파는 시골 학교부터 타격을 줬습니다. 궁근정초도 피할 수 없었고요. 남겨진 궁근정초 건물은 2년 동안 미술 전시·체험 공간으로 사용됐습니다. 울산광역시교육청은 폐교 건물 활용을 고민했습니다. 2019년 마을교육공동체거점 및 학생체험활동센터 구축 계획을 세웠습니다. 총 20억5천여 만원을 들여 건물을 새로 꾸몄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을 마을교사로 선발했습니다.
폐교 궁근정초는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센터는 학교에서 여건상 할 수 없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평일 저녁에는 마을시민배움터가, 주말에는 청소년자치배움터가 열립니다. 2021년 센터가 문을 열었으니, 햇수로 5년이 됐습니다. 센터 한 해 방문객이 4만 명이 넘습니다. 그동안 시골 폐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는 청소년과 마을주민 즉, 아이와 어른이 함께 만들어 갑니다. 이번 기획 기사는 2024년 10월부터 2025년 2월까지 5개월 동안 센터를 틈틈이 방문하고 배우면서 쓴 르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장체험학습 경험이라곤 소풍과 수학여행이 전부인 40대 중반, 어른 기자의 체험학습르포입니다.

▶ 글 싣는 순서 |
①[르포]마을이 아이를 키운다 폐교로 학생이 돌아오다 계속 |
아~ 땡땡이 치고 싶다.
일하기 싫은 게 아니다. 땡땡이 치고 싶은 그런 날씨라는……거다. 늦가을에 잔뜩 흐린, 금방이라고 하늘이 토해낼듯 비가 막 쏟아질 것 같은 날씨. 내리는 게 아니라 머리를 막 때릴 것 같은 그런 비. 그런데 언제 쏟아질 지 전혀 가늠이 안된다. 비가 올 지, 안 올 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날씨다.
그런 날,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를 찾아간다. 취재차, 일로. 땡땡이 치고 싶……일하기 싫은 게 아니라 날씨 때문이다. 울산광역시교육청에서 28km 떨어진 곳. 스마트폰에는 차로 28분 거리라고 나온다. 28. 딱 떨어진다. 마치 학창시절 내내 풀었던 오지선다 정답처럼. 안정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이제 길을 고민해야 한다.
울산고속도로를 탈 지, 국도 울밀로를 탈 지. 잠깐 생각하다, 국도를 선택했다. 어차피 둘 다 편도 2차선. 차도 막히지 않을 평일 점심시간을 막 지난 시간이다. 울산고속도로에 고속 만 떼어내면 울산도로가 된다. 도로 형태만 따지면 어느 게 고속도로고, 국도인 지 구분이 어려운 길. 애매모호한 길. 내비게이션에 울주군 상북면 석남로 832를 찍는다.

가솔린 엔진과 고용량 배터리,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는 내 하이브리드차가 울산축협가축시장을 지나친다. 가축시장을 지나면 도시 끝, 이제부터 시골이 시작될까? 가솔린차 엔진과 전기차 배터리의 경계 그리고 도시와 시골의 경계를 생각하던 중, 하이브리드차가 울밀로를 벗어나 작은 마을로 들어선다.
농촌에 조성된 공업단지, 농공단지. 농촌과 공업이 합쳐진 곳 아니면 그 중간쯤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걸까. 상북농공단지 입구를 통과한다. 띄엄띄엄 떨어진 식당, 마트, 카페들. 키가 낮은 건물을 지나치자 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가 보인다. 영락없는 시골 분교다. 폐교는 리모델링을 거쳤다. 센터 정문에 들어서자, 학교 운동장이 펼쳐진다. 예전엔 아이들이 이곳저곳 구석구석에서 뛰어 놀았겠지. 운동장 일부는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폐교에서 지금은 센터가 됐다.

흙을 밟기 싫어서다. 혹시 나중에 비가 내리면 흙탕물이 될 지도. 흙을 밟는 건 싫지만, 흰운동화에 흙탕물이 튀는 건 더 싫어서. 차 실내가 더러워질 수도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시골은 불편하고 신경써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최대한 흙을 밟지 않고 센터 출입문으로 발 길을 재촉한다. 40대 중반인 나 보다 한 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활엽수들을 올려다 본다. 제각각 활엽수들이 삼삼오오 서 있다. 같은 이름과 종류끼리 자리를 잡은 듯. 이 곳 터줏대감인냥 나를 내려다 본다. 불현듯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운동장 곳곳에서 익숙한 얼굴이 반긴다. 모두 훌륭하신 분들. 타의 모범이 되는 친구들도 있다. 옛 학교에서는 이 분들의 삶을 소개하고 가르쳤겠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세종대왕상, 신사임당상, 유관순상, 이순신 장군상. 국민학교때 봤던 이승복 어린이상은 없다.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공부하는 어린이상 그리고 나라에 충성, 부모께 효도라고 적힌 충효상까지 있다. 어깨동무를 한 어린이상처럼 이토록 가까이서 살뜰히 공부하는 게 가능할까. 같은 반 친구들과 수우미양가, 점수와 등수를 두고 경쟁한 나에게 공부는 책걸상에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혼자서 하는 건데. 수업시간, 이름 보다는 26번 번호로 불리는 게 익숙한 나인데.

▶ 교적비 |
궁근정초등학교 터 1939년 6월 1일 개교하여 졸업생 3,259명을 배출하고 2016년 3월 1일 상북초등학교로 통합되어 폐교됨 2016년 3월 1일 울산광역시교육감 |
센터 입구에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만든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ㅁㅇㄱㅇㄱㄷㅊ. 여기서부터 센터가 시작되는 경계점일까. 조형물 옆에 버티고 있는 해치를 닮은 동물상이 그렇다고 알려주는 듯 하다. 옛 학교와 현 센터의 경계. 어릴적 옆에 앉은 반 친구가 넘어오지 말라며 책상 위에 그어 놓은 선 같은 것. 센터 입구로 들어서는 낯선 이방인 기자가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엇. 초중고 시절 체험학습이라곤 소풍과 수학여행이 전부인 나에게 말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이 곳 센터에서는.

울산광역시교육청 교육협력담당관실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 송영진 운영실장
송인지, 손인지 실수하지 않으려, 명함에 적힌 이름을 재차 확인했다.
"송 실장님, 조만간 센터를 찾아 갈게요. 취재라기 보다는… 아무튼 부담갖지 마세요."
센터에 대한 정보가, 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10월 중순쯤 그를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송 실장의 아내는 둘째를 출산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가 웃을 때 고양이상이 된다는 것을. 이 곳에서 일하면 그렇게 얼굴이 바뀌는 걸까?

"아이들은 집에 돌아갈 때 작은 무엇이라도 갖고 가는 걸 좋아해요. 쿠키, 빵, 떡, 김치, 깍두기. 그게 먹는 거면 더 좋죠."
말이 끝나자마자 송 실장은 사무실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갔다. 그가 돌아온 건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요리조리 놀이터에서 만든 쿠키라며 나에게 건넸다. 모양이 해태 버터링쿠키를 닮았다. 딱딱하지도 그렇다고 무르지도 않은 적당한 경도의 쿠키를 입에 넣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녹이자, 긴장이 풀린다. 송 실장이 센터 곳곳을 소개시켜주겠다며 앞장섰다.
센터 사무실을 나와 요리조리놀이터 반대쪽으로 향했다. 평소엔 카페였다가 학생들이 방문하면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활용하는 호호커뮤니티홀을 지나쳤다. 라디오 볼륨을 갑자기 줄인 것 마냥 쿠키냄새가 희미해진다. 그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 나온다. 아니 웃음소리가 먼저 뚫고 나온다. 아이들 모두 이름표를 붙였다. 가슴에 비뚤비뚤. 각자 편한대로 붙인 이름표들. 센터 체험실은 대부분 놀이터라는 이름이 뒤에 붙어 있었다. 요리조리놀이터처럼. 나무놀이터, 밴드놀이터, 몸놀이터, 그림놀이터 손놀이터.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일과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중 이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가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마을교사들은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다. 청년부터 노인까지 센터 주변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교사들이다. 울산 전 초·중학교와 연계된 평일 오전 체험교실과 오후 프로젝트교실을 담당한다. 모두 초등 창의체험 프로그램, 중등 자유학기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저녁에는 마을 청소년과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민배움터가 열린다. 이곳 하루 일과는 밤 9시에 끝난다. 견학차 방문객까지 합치면 매년 4만1천여 명이 센터를 다녀 간단다. 체험교실과 프로젝트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얼굴을 마주하듯, 이름도 마주한다. 체험·프로젝트교실은 2~3시간 정도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 마을교사들은 꼭 아이들 이름을 부른단다.

"송 실장님, 운동장에 있는 나무들은 폐교 전부터 있던 것들이죠?"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죄송한데. 나무들 이름을 모르겠어요. 벚나무, 은행, 잣나무 정도는 알까. 학교에서 다 배운 것 같은데, 딱히 관심이 없으니……"
송 실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몰라도, 괜찮아요. 각 나무들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어요. 마을교사 분들께서 미리 작업을 해 놓으셨거든요."
가까이, 가, 보니. 그랬다. 왕버들, 백합나무, 회양목, 전나무, 잣나무, 이팝나무. 키가 크든 작든, 이름표가 다 있었다. 기억해내지 못 해도, 몰라도 여기에선 부를 수 있다. 모든 이름을.
운동장 한 모퉁이에는 익숙한 배추, 쑥갓, 상추, 봄동, 쪽파부터. 생소한 이름의 갯기름나물, 당귀, 근대, 아욱이 심겨져 있었다. 생소해도 괜찮다. 이름을 부를 수 있으니깐.
"반기자님 여길 한 번 보세요."

송 실장은 버려질 운명이었던 물탱크가 빗물저금통으로 변신한 것을 자랑스레 소개했다.
"이 곳이 단순히 교육만 받는 곳이라면 학교랑 다를 게 없죠.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 함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곳, 하루만이라도 머리를 비우고 쉴 수 있는 곳, 재밌게 놀고 가도 괜찮은 그런 곳이요."
송 실장은 울산마을교육공동체거점센터라는 풀 네임Full Name 말고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고 쉽게 부르는 이름이 있다고 했다. 애칭이란다.
"여기는요. 그러니깐 이름이…"
다시 고양이상으로 웃으며 말한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평소 저무는 시간에 비해 더 어두웠다.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텃밭에 그리고 빗물저금통에. 흰 운동화가 젖을 것 같다. 그래도 오늘 만큼은 괜찮을 것 같다. 아니, 괜찮다. 흙탕물이 튀어도.
제1화 끝.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울산CBS 반웅규 기자 bangija@cbs.co.kr
- 이메일 : jebo@cbs.co.kr
- 카카오톡 : @노컷뉴스
- 사이트 : https://url.kr/b71afn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 윤택 "산불로 연락 닿지 않은 자연인 있어 마음 애타" 걱정
- 故설리 유가족 "김수현·이사랑, 배드신·나체신 답 달라"
- 야구 경기 중 구조물 추락 3명 부상 사고…30일 경기 취소
- 전한길, 산불 음모론? "간첩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억지 주장
- 학원도는 대치맘?…"당신은 천재를 낳지 않았다"
관련링크
- 이전글[르포] "모든 게 불타"…독립운동 성지 내앞마을도 잿더미 25.03.30
- 다음글[단독] 단역배우 자매 사망 어머니는 지옥을 산다…가해자에 눈덩이 손해... 25.03.3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