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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시간에 여성 5명 살해…모두 택시에 싣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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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21회 작성일 24-01-28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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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집행 사형수들] ⑪허재필

경찰에 체포된 허재필의 모습. /KBS

경찰에 체포된 허재필의 모습. /KBS

“잡히지 않았다면 더 죽이려 했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전국이 들떠있던 2002년 4월30일. 자정이 넘은 야심한 새벽, 경기도 용인시의 한 주차장에 남성 두 명이 숨어들었다. 누가 보아도 수상한 모양새였다. 주차된 차량을 유심히 살펴보던 이들은 한 차량에서 조심스레 번호판을 떼어냈다. 그때였다. CCTV로 범행을 전부 지켜본 사설 경비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한 명은 주차장 뒤편 야산으로 도망쳤으나, 한 명은 격투 끝에 붙잡혔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남성을 넘겨받았다. 그리고는 범인들이 타고 온 EF소나타 승용차를 살펴봤다. 승용차 문을 연 경찰관들은 경악했다. 뒷좌석엔 사람의 시신 4구가 포개어 쌓여 있었다.

범행에 이용된 승용차 트렁크. /KBS

범행에 이용된 승용차 트렁크. /KBS

삽과 괭이, 노끈까지, 범행 도구들도 함께 발견됐다. 피해자들로부터 갈취한 것으로 보이는 신용카드, 현금과 수표도 나왔다. 트렁크를 열자 시신 한 구가 더 나왔다.

현장에서 잡힌 남성의 이름은 허재필. 전과가 없던 23세의 청년이었다. 처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잔혹한 범행을, 그는 어떻게 저질렀을까.

허재필에게는 함께 범죄를 저지르자며 먼저 손을 내민 친한 형이 있었다. 주차장에서 도망친 남성이 바로 공범 김경훈이었다.

함께 범행을 저질렀으나 두 사람의 성장 배경은 너무나도 달랐다. 허재필은 8살 때 부모가 이혼해 새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는 등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반면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김경훈은 성인이 된 후 재수를 하면서 잘못된 길로 빠졌다. 군 복무 당시 특수강도를 저지르는 등 28살의 젊은 나이에 이미 성범죄와 강도 등으로 전과 7범이었다.

김경훈은 범행을 저지를 때마다 돈과 여자를 노렸다. 허재필과 함께 저지른 범행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경찰은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공격하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박혀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현장에서 달아난 김경훈은 경북 포항 소재의 친동생 집에 숨었다. 이튿날 경찰이 추적 끝에 들이닥치자 스스로 흉기로 목을 찔렀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홀로 남은 허재필은 범행 사실을 모두 실토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23세였던 그는 올해로 47세의 ‘미집행 사형수’가 됐다.

경찰이 공범 김경훈을 제압하는 장면. 김경훈은 경찰이 들이닥치자 자해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MBC

경찰이 공범 김경훈을 제압하는 장면. 김경훈은 경찰이 들이닥치자 자해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MBC

◆”돈 되면 어떤 일이라도 할래?”…잘못된 만남’의 시작

허재필과 김경훈은 골프장에서 근무하며 친해졌다. 둘이 함께 일한 기간은 고작 한달 남짓. 먼저 입사한 김경훈은 허재필을 만나기 전까지 다른 직장동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평소 김경훈은 골프장에 손님으로 오는 부유층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자주 드러냈다. 월급 100만원 남짓 받는 자신의 처지와, 손님인 부유층을 비교하며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허재필과 김경훈이 이런 감정을 공유하며 짧은 기간 빠르게 가까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허재필에겐 전과는 없었지만 빚이 있었다. 유흥비 등으로 써 온 신용카드빚 800만원.

그 사실을 알게 된 김경훈이 검은 손을 내밀었다. 그는 허재필에게 “월급이 얼마 안 되니 강도짓으로 빚을 갚고 유흥비로 쓰자”고 제안했다.

빚에 허덕이던 허재필은 김경훈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100만 원도 안되는 월급으로 나날이 늘어만 가는 빚을 갚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은 크게 한 번 성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 생각에 젖어들었다.

허재필은 자술서에서 당시에 대해 이렇게 썼다.

“경훈이 형이 돈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돈만 많이 되고 안 걸린다면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뭉친 둘이 첫 범행을 저지른 건 그해 4월18일이었다.

두 사람은 범행에 이용할 승용차를 미리 준비한 뒤 김경훈이 알고 지내던 미용실 주인 이모32씨를 “드라이브나 가자”며 불러냈다. 김경훈은 이씨를 고속도로 용인휴게소 주차장으로 데려갔다.

범행 장소는 이 차 안. 김경훈이 차를 세우자 트렁크에 숨어있던 허재필이 나왔다. 두 사람은 이씨를 덮쳤고, 신용카드를 빼앗은 뒤 노끈으로 목을 졸라 그를 살해했다.

이들은 살해 후 가장 먼저 휴게소 현금인출기로 향했다. 이씨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12회에 걸쳐 286만원을 인출했다. 그리곤 인근 야산으로 이동했다. 이씨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둘은 힘을 합쳐 이씨의 시신을 비탈길 아래로 굴려보내고, 묻기 전 삽으로 시신을 여러차례 내리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허재필은 상당한 죄책감을 느꼈다. 훗날 경찰에 잡힌 뒤 “지금 생각해보면 잠시 어디에 홀려서 미쳤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죄책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두번째 범행 때는 김경훈이 희생자를 살해하기 전, 차 안에서 성추행하는 동안 밖에서 망까지 봐줬다.

마지막에는 뻔뻔해졌다. 후일 진술서에서 “웃기는 상황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라고 회고할 만큼.

허재필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작성한 진술서. /MBC

허재필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작성한 진술서. /MBC

◆광란의 47시간…5명 죽이고 빼앗은 돈, 고작 250만원

둘은 첫 번째 범행으로부터 9일이 지난 4월27일 밤 두 번째 범행에 나섰다. 그 사이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했다. 택시등燈과 번호판을 훔쳐 김경훈 소유의 차량에 승용차에 달아 영업용 택시로 위장하고는 수원과 용인 일대를 돌아다녔다.

범행은 모두 차 안에서 이뤄졌다.

두 번째 희생자는 피아노 강사 박모29씨. 이들의 승용차를 택시로 잘못 알고 올라탔다가 변을 당했다. 허재필과 김경훈은 박씨가 말한 행선지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수상함을 느낀 박씨가 반항하자 그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했다.

두 사람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박씨로부터 현금 2만원과 신용카드를 빼앗았다. 이때 두 사람의 머릿속엔 죄책감 따윈 없었다. 도리어 박씨가 신고할 것을 우려해 미리 준비한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박씨의 시신은 차 트렁크로 옮겨 실었다. 첫 범행 때와는 달리 바로 시신을 처리하지는 않았다. 후에 허재필은 “시신을 한 번에 처리하려고 그랬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는 빼앗은 신용카드에서 50만원을 인출했다.

범행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수법은 같았다. 밤 9시쯤 택시를 기다리던 이모20씨를 태우고 영동고속도로변으로 향했다. 이들은 이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그의 신용카드에서 190만원을 빼냈다.

다음 피해자를 물색하기 전, 이씨의 시신을 먼저 살해한 박씨의 시신과 함께 트렁크에 실었다.

허재필과 김경훈은 범행이 발각되지 않자 자신감을 얻어 점점 과감해졌다. 8시간 뒤인 29일 새벽 5시 수원시의 한 번화가에서 또 범행을 저질렀다. 이번에는 택시등을 떼고 ‘야타족’으로 변신했다. 그들이 탄 승용차 트렁크에 시신 두 구가 실려있다는 건 아무도 몰랐다.

현장검증 중인 허재필의 모습. /MBC

현장검증 중인 허재필의 모습. /MBC

허재필과 김경훈은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던 안모22씨 등 20대 여성 3명에게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접근했다.

여성들이 차에 타자 두 사람 본색을 드러냈다. 영동고속도로 용인휴게소 부근 갓길에 차를 대고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피해자들이 수 적으로는 우세했으나 성인 남성 두 명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김경훈과 허재필은 현금 12만 원을 빼앗고 이들을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했다.

둘은 트렁크에 있던 이씨의 시신을 뒷좌석으로 옮겨와 4명의 시신을 포개어 쌓은 뒤 커튼으로 덮었다. 모두 노끈으로 손과 발이 묶인 상태였다. 트렁크에 있던 이씨의 시신을 왜 뒷좌석으로 옮겨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47시간 동안 허재필과 김경훈이 해친 여성들은 무려 5명. 하지만 그들이 손에 쥔 돈은 고작 250만원이었다.

시신을 산처럼 쌓아둔 상황에서도 둘은 또 다음 범죄를 꿈꿨다. ‘경찰에 꼬리가 잡힐 수 있으니 번호판을 바꿔달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훔친 번호판을 쓸 작정이었다. 그렇게 숨어든 주차장에서 잡히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둘의 범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현장검증 후 언론 카메라 앞에서

현장검증 후 언론 카메라 앞에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는 허재필. /MBC

◆귓속말로 “우리들은 강도” 속삭였다

“후련하다.” 경찰에 검거된 허재필의 첫 마디였다. 그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5월6일, 경찰은 허재필을 데리고 현장검증에 나섰다. 후련하다고 했던 그는 일주일 만에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언론 카메라 앞에 선 그는 고개를 떨궜다. “우선 피해자들에게 죄송하고요. 왜 그랬는지 진짜 제 자신이 원망스럽고, 죄송합니다”라며 울먹였다. 뒤늦은 사죄의 말이었다.

하지만 현장검증에서 드러난 그의 범죄행각은 죄책감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노끈으로 묶인 시신을 야산 비탈길로 굴려 보낸 뒤 삽을 세워 세 차례 찍었다. 살인하는 데 사용된 노끈에 지문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며 다시 챙겨가는 용의주도함도 보였다. 마지막 범행 때에는 피해자들을 살해하기 전, 귓속말로 “우리들은 강도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제와 후회한다기에는 그 수법이 너무나도 잔인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허재필은 자술서를 쓰면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

그렇게 자술서에 적은 내용은 이랬다.

“신고할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살려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불안하다고 해서 살해했습니다”, “잡히지 않았으면 아직도 더 사람들을 죽이며….”

허재필은 정말 반성했을까. 그의 눈물은 진정 죄책감과 후회의 눈물일까, 아니면 범행이 발각된 데 대한 분노와 아쉬움이 깃든 ‘악어의 눈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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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연 기자 kg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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