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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김밥집 5천만원 빚에 파산, 자식은 개인회생 뒤 뇌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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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6회 작성일 24-01-3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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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을 하다가 가게 문을 닫고 파산 신청한 최지영가명씨가 지난해 11월13일 서울 도봉구 자택 인근 한 가게 앞에 서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빚은 가족 안에서 전염성이 강하다. 서로 돕고 살려는 가족일수록 전염성은 더 강해진다. 가족 가운데 한명이라도 경제적 위기 상황에 몰리면 이를 도우려다 연쇄적으로 채무가 전이된다.



한겨레가 지난해 8월16일부터 석달 동안 33명의 파산관재인을 통해 진행한 128명의 파산 신청자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뚜렷이 드러났다. 128명의 파산 신청자에게 ‘가족 중에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해본 사람이 있는지’ 물었더니 18%23명가 ‘있다’고 답한 것이다. ‘파산을 신청한 결정적 계기’에 대한 질문복수응답 가능에는 19.5%25명가 ‘배우자 또는 자녀에게 빚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한겨레가 ‘가족파산’에 주목한 까닭이다. “한명이 빚의 늪에 빠지면 온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공동체라는 미명하에 배우자나 부모, 자녀들의 명의로 대출해 돌려막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김연진 은평금융복지상담센터장의 말이다.







62살 엄마도, 36살 자식도 살길이 없다





최지영가명·62도 가족이 굴레가 됐다. 최지영이 채무의 늪에 빠진 건 2018년이다. 동업하던 친구가 추천한 지역의 시장에서 김밥집을 개업했는데, 재개발 예정지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개업 반년 만에 거주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손님이 뚝 끊겼다. 5천여만원의 빚을 지게 된 최지영은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원래도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고 있던 상황에서 신부전증까지 겹쳤다. “신부전증이 오면서 소변이 잘 안 빠져서 복부에 물이 차더라고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띄엄띄엄 일을 하게 되면서 한달 수입은 80만원 정도에 그치게 됐다. 월세 45만원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지만, ‘내 빚은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채무조정 제도를 찾았다. 파산이 변제하지 못하는 채무를 면책받는 제도라면, 개인채무조정은 일정 기간 채무 상환을 연장하거나 유예하는 제도다.



그런데 격투기 도장을 차렸다가 사기를 당한 뒤 빚에 시달리다 개인회생까지 했던 아들36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아들의 생계를 도우며 병간호까지 하게 되면서 최지영은 더는 빚을 갚을 방도가 없게 됐다. 결국 지난해 초 파산을 신청하고 혹독한 추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빚 상속 막으려 이혼했는데 아들도 개인회생





박우람가명·63은 가족에게 빚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면서 한동안 가족이 해체된 경우다. 그는 무역 관련 사업을 하다가 1억원대 빚을 지게 됐다. 대부업체에까지 손을 벌리면서 이자는 순식간에 불어났고 카드 돌려막기로도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됐다.



위협했다가 달래기도 했다가 차압도 하는 등의 지독한 추심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빚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2008년 아내와 이혼한 뒤 몰래 집을 떠났다. “이혼하지 않으면 빚이 아내랑 자식들한테 다 상속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혼하고 도망 다녔어요.”



편의점과 세차장 아르바이트, 일용직 노동 등을 하며 10여년 고시원 등을 떠도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 금융복지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개인회생으로 채무를 정리한 뒤에야 가족을 찾아가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자신이 떠난 사이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던 작은아들 역시 채무에 시달리며 개인회생 신청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가장이 파산하면 결국 자식한테 넘어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들의 개인회생도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파산 전문 김관기 변호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난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빚을 안 갚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압력도 굉장히 크다”며 “그런데도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족에게 부양가족의 사회보장 책임을 떠밀고 부담을 지우게 되면 가족 때문에 파산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한번 실패에 빚 절벽…가난은 수치가 아님에도





한겨레의 파산 신청자 128명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또 다른 키워드는 ‘코로나19’와 ‘고금리’였다. 파산 신청자들에게 ‘스스로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원인’을 묻는 질문에 ‘사업 실패’라는 응답이 46.1%59명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들은 주관식 문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감으로 생활비를 채울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거나 ‘장사를 시작한 지 한달 만에 코로나19가 닥쳐서 업종을 바꿔보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등과 같은 답을 내놨다.



‘사업 실패’ 다음으로 많았던 답은 ‘대출 이자 등 금융비용 부담’35.9%·46명이었다. 특히 응답자들이 대출을 받은 기관들을 살펴보니 이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 제2~3금융권 이용자가 많았다. 한 응답자는 ‘카드와 카드론으로 인해 지인을 통해 빌리고 금리가 높은 대출도 사용했는데 결국 부채가 수입을 넘어섰다’고 답했다.



이런 추세는 정부 통계로도 입증된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영업자들의 연도별 중위소득은 2017년 830만원에서 코로나19 발생 이듬해인 2021년 659만원으로 20.6%나 줄었다. 특히 소득 상위 20%인 자영업자들의 연평균 소득은 2017년 7744만9천원에서 2021년 7308만8천원으로 5.6% 줄어든 반면, 소득 하위 20%인 영세 자영업자들의 연평균 소득은 2017년 186만9천원에서 2021년 84만1천원으로 55%나 감소했다.





자영업자 삶 뒤흔든 고물가, 고금리





김회재 민주당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지난해 2분기 기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이 월평균 537만원으로 2022년 같은 기간보다 19.5% 줄었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도 343만원으로 16.2% 감소했다. 처분가능소득은 가구의 소득에서 이자 비용과 세금 등을 뺀 소득이고,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처분가능소득에서 물가 상승 영향을 뺀 수치다. 고물가와 고금리 탓에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한국의 채무자들은 미루고 미루다 벼랑 끝에 몰려서야 파산이라는 탈출구를 찾아온다.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스스로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시기부터 파산을 신청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묻는 질문에 ‘10년 초과’라는 답변을 한 파산 신청자가 28.9%37명로 가장 많았다. ‘5~10년 이내’라는 답변19.5%·25명이 두번째로 많았다.



파산 신청이 늦어진 원인복수응답 가능에 대한 질문에는 ‘빚을 상환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가 33.6%43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청하는 방법을 몰라서’32%·41명, ‘대리인 보수 및 신청 비용 부담’과 ‘파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한 부담’이 각각 20.3%26명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빚 갚을 ‘의무’를 없애는 파산 제도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죄책감이 여전히 높고, 정작 마음을 먹더라도 비용 부담과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파산 신청을 망설인다는 의미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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