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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등록금·노부모 치료비…50대 무너뜨린 이중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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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47회 작성일 24-01-3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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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선씨가 지난해 12월7일 자신이 운영하는 봉구비어 인천검암점에 앉아 있다. 그는 2022년 파산 신청을 하고 현재 면책 심사 중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코로나19 여파에 고금리 파동이 겹치면서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 사람의 파산은 그 사람과 연결된 가족까지 함께 무너뜨린다. 가족은 이후 공멸하거나 해체된다.



한겨레는 지난해 8월16일부터 석달 동안 파산 신청자 128명을 설문하고, 이 가운데 63명을 추려 대면과 전화로 심층 인터뷰했다. 4회에 걸쳐 가족파산의 실태를 깊이 들여다본다.







최기선은 56번째 생일이던 2022년 12월22일 자신에게 경제적 사망 선고를 내렸다. 개인파산을 신청한 것이다. 최기선은 이후 1년 넘게 서울회생법원의 파산면책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면책이 결정돼야 남은 빚에 대한 책임이 소멸된다.



인천 검암동에 있는 호프집에서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하루 13시간 일하고 설거지하다 의자에 쓰러져 자는” 최기선의 삶은 어떻게 파국에 이른 걸까. 최기선의 가계는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락과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 급증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졌다. 본가와 처가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성인이 됐지만 자립하지 못한 자녀들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가계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최기선처럼 노부모와 함께 자립하지 못한 자녀들까지 돌봐야 하는 이들의 파산을 ‘이중돌봄’더블케어 파산이라고 한다. 여기에 손자·손녀 양육까지 떠맡으면 ‘삼중돌봄’트리플케어 파산이 된다. “아내가 ‘당신 정상이 아니야. 폭발하면 사고 친다’며 병원 가보라고 해요. ‘병원 갈 정신이 어딨어’라고 했는데, 내가 봐도 정상이 아니라는 걸 느껴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라인을 타고 있는 느낌입니다.”



2024년 1월,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2023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52조6천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특히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1.24%를 기록해 전년 말0.69%에 견줘 0.55%포인트나 올랐다. 통계청이 지난달 7일 발표한 ‘2023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는 지난해 3월 말 기준 소득 하위 20%의 평균 부채가 2004만원으로 전년에 견줘 22.7%371만원나 불었다. 2013년26.0%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이러자 채무조정 제도를 찾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4만1239건으로 전년4만1463건보다 소폭 줄었으나,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12만1017건으로 전년8만9966건에 견줘 34.5%나 늘었다. 최근 10년 새 가장 많은 수치다. 20년 동안 파산관재인을 해온 김창수 변호사는 “재난이나 큰 경제적 위기가 있어 소비가 줄면 그 시점부터 1~2년 이후 개인사업자가 파산하는 여파가 생긴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신장병·장모는 치매…또 빚을 늘렸다





최기선은 2017년 7월 술집을 개업했다. 자동차회사와 보험회사 등에서 20년 넘게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퇴직한 뒤였다. 영업사원으로 번 돈은 생활비와 3억원대 아파트 구입에 썼다. 술집을 열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로 권리금 8천만원을 빌렸다. 주택 구입 때 받은 대출까지 2억원가량의 빚을 안고 장사를 시작했다.



많게는 70~80명까지 앉을 수 있는 86㎡약 26평 가게를 유지하는 데는 월 1천만원 가까운 돈이 든다. 월세 287만원, 음식과 술 등 재료비 600만원, 관리비와 전기요금이 80만~100만원 정도다. 여기에 대출금 이자가 150만원 정도 추가된다. 그래도 처음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 하루 50만원, 월 1500만원 매출로 월 300만~400만원 정도 순이익이 났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오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밤 9시 이후 영업제한이 생기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하루 10만원 매출도 어려워졌다. 최기선은 그렇게 말라가던 매출이 최악으로 갔던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2021년 8월7일 매출은 고작 7천원이었다. 맥주 2잔 값이다.



이때 모든 악조건이 겹쳤다. 2020년 첫째 딸23, 2022년 둘째 딸21이 대학에 입학하며 학비와 기숙사비가 필요해졌다. 첫째 딸이 아이돌보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둘째 딸은 학회장 등을 하며 장학금을 받아냈지만, 딸들에게 교통비라도 쥐여주려던 최기선의 손에 남은 현금은 10만원뿐이었다. 2020년에는 79살이던 어머니가 빙판에서 넘어지며 고관절 골절 판정을 받았다. 최기선은 한달에 수백만원이 드는 입원비와 관절 수술비 대신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집에서 간병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당뇨와 고혈압, 신장질환 투병도 해야 했다. 최기선은 아울러 2019년 경증 치매 판정을 받은 장모88의 생활비와 병원비도 대야 했다. 그때 은행에서 ‘소상공인을 위해, 저리로 대출을 지원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빚을 늘리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지난해 주택 경매 건수, 전년보다 1.5배 급증





그렇게 늘어난 빚은 고금리 상황이 되면서 최기선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3%대였던 금리가 2022년 말 7%대까지 올라가면서 이자가 월 500만원까지 불어났다. 아파트 담보 금액이 꽉 차면서 가압류 통보가 왔고, 곧 경매에 넘어갔다.



법원경매정보의 매각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 60개 법원에 접수된 아파트와 단독 및 다가구 주택, 연립과 다세대 주택의 경매 건수는 6만7360건으로 2022년 4만4736건과 2021년 4만7196건은 물론이거니와 코로나19가 닥친 첫해인 2020년 6만597건마저 훌쩍 넘어섰다. 고금리를 버티지 못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이 경매에 내몰리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기선은 결국 아내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부부 개인파산 신청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돈이 있었으면 어머니가 연명할 수 있었을 겁니다. 내가 어머니를 죽였어요.”



최기선은 파산면책 결정이 나오면서 가게 보증금도 잃게 되면, 술집을 접고 택배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50대 이상은 할 수 있는 일이 택배 배달이나 운전직밖에 없어요. 살고 싶은데 내몰리는 느낌이 듭니다. 파산한다고 해서 지인들 빚은 사라지지 않으니, 일해서 남은 빚을 갚아야지요.”



파산하는 중장년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최기선처럼 다중돌봄 상황에 처한다. 자신의 삶을 위한 벌이가 아니라 부양가족의 삶을 위한 벌이가 중장년의 어깨를 겹겹이 짓눌러 경제적 파산으로 이끄는 것이다. “더블케어란 60대 때 자녀가 자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도 모셔야 하는 경우를 말해요. 중년이 회사 내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아주 평범한 중산층이라도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20년 전에 이미 사회 문제가 됐고, 한국에도 곧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유애정 국민건강보험공단 통합돌봄연구센터장의 설명이다.



이인숙씨가 지난해 11월21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부모·비독립 자녀 돌봄 부담에 끼여 사는 중장년





이인숙62에게 이중돌봄은 ‘시간차’를 두고 발생했다. 2002년 배우자가 건강식품 사업에 실패하며 빚을 남기고 잠적했다. 은행에서 압류가 들어왔고, 이인숙은 곧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됐다. 채권 추심자가 찾아와 협박하는 일도 생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7살이던 둘째 아들은 뇌경색 진단까지 받았다.



주말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하루 12시간 식당 서빙을 하고, 찜질방 청소도 했다. 하지만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에는 갈 수 없었다. “한번은 호텔 룸메이드 일을 해보려고 용역업체 소속으로 2개월 교육을 받았는데, 건강보험료 낸 걸 보고 압류가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말에도 일하는 엄마와 “놀이공원 가보는 게 소원”이라던 아들 둘도 10대 때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인숙을 도왔다. “쌀이 떨어져서 아는 언니 집에 쌀을 빌리러 갔다가 말을 못 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어요.”



아들 둘이 성인이 된 뒤에는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오면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전화로 하는 영업에 성과가 잘 나올 리 없었다. 여기에 2021년 충남 서산에 사는 어머니80에게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왕복 6시간 동안 서울과 서산을 오가며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일을 줄여야 하게 됐다. 이중돌봄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과 함께 소득이 급격히 줄면서 이인숙은 지난해 5월 결국 파산을 신청했고, 지난달 면책 결정이 나왔다. “언젠가는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버텼는데, 2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법적으로 한번 정리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자 싶었습니다.”



임수철가명·67은 기초생활보장 수급비 80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서른살이 넘은 두 딸의 생활비까지 부담하며 함께 살고 있다. 임수철은 대리운전과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다 2016년 직장암 수술을 받고부터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 공공근로라도 하려고 했지만 병증 때문에 근로능력평가에서 근로능력이 없다고 나와서 지원도 하지 못했다.



32살인 첫째 딸은 2022년 5월 공기업에 임시직으로 취업했지만, 정규직 전환에 실패해 무직 상태다. 31살인 둘째 딸은 마케팅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했지만 임원으로부터 갑질 피해를 당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두 딸은 재취업을 준비중이지만 쉽지 않다. 임수철은 2022년 파산 신청을 했고, 면책 결정까지 받았다. “딸들을 독립시키고 싶어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니까 그런 말도 꺼내지 못해요. 딸들도 집안 형편 걱정을 많이 하고 있죠.”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를 보면, 만 19~49살 성인의 약 29.9%가 부모와 함께 산다. 특히 만 19~49살인 비혼 성인은 64.1%가 부모와 함께 산다. “고령화로 여러 세대가 함께 생존하면서, 인구학적으로 중장년층이 부모와 자녀를 모두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이 실직과 자영업 실패 등을 겪으면 부양하는 가족까지 연쇄 위험 효과가 발생해요.” 최선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말이다.



최기선은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지난달 보증금 200만원, 월세 55만원짜리 66㎡20평 크기의 빌라를 1년 단기 임대해 이사했다. 집주인이 직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탓에 분쟁 중인 집이어서 언제 다시 나가야할 지 모른다. 최기선의 가족에게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간 건 큰 충격이었다. “20년 전 좁은 집에 살 때 막내딸 소원이 ‘우리도 엘리베이터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거였어요. 저도 어릴 때 사과상자로 지은 ‘하꼬방’판잣집에 살았거든요. 이미 경험해본 가난, 그래서 더 무섭네요.”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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