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이슈] "얼굴이 다 기억납니다"…세월호 잠수사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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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지은 기자 = "나도 모르게 얘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엄마한테 데려다 줄 테니까 친구 손 놓으라고. 친구 너 조금만 있어, 내가 다시 찾으러 올게. 그러고 한 명 한 명씩 이렇게 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2014년 4월 16일 승객 476명을 태우고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습니다. 사고 소식에 생업을 던지고 바닷속에 뛰어든 사람들. 민간 잠수사들은 해군과 함께 희생자 292명을 수습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10년, 그들은 4월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지난 2일 연합뉴스 사옥에서 수색작업에 참여한 김상우 잠수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김 잠수사는 해군 해난구조대SSU 소속 당시 서해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 사고를 겪으며 수습 현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베테랑 잠수사입니다. 뉴스를 통해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한 그는 후배인 전광근 잠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전광근 잠수사가 현장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치지 말라는 격려 차원에서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장에 희생자 수습하는 분들이 8명밖에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말 듣고 나도 모르게 짐을 싸고 있더라고요." 통화를 마친 다음 날 도착한 현장은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퍼렇다 못해 시꺼먼 바닷물이 조각조각 파도로 깨지며 신음하는 듯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의 조류는 거셉니다. 입수 즉시 잠수사 몸을 가로눕힐 정도입니다. 남해 특유의 뿌연 흙탕물이 시야를 가려 코앞의 손바닥도 또렷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배 안을 샅샅이 뒤져야 했습니다. "4월만 해도 바닷속 시야가 10∼15㎝밖에 안 나왔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도면을 다 외우고 들어가는 거죠. 외워서 더듬어서 찾는 겁니다, 사람을." 캄캄한 물속에 잠겨있던 희생자를 데리고 나오면 유가족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나마 온전한 모습으로 희생자가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인도하는 것이 마지막 예우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로프를 두 손으로 잡고 올라오잖아요. 그러면 희생자는 제가 안아야 해요. 격실 안은 깜깜하지만, 격실 밖에 나와서 물 위로 올라올 때쯤이면 희미하게 보이죠, 얼굴들이. 저는 찾았던 사람들 얼굴 다 기억납니다." "희생자 가족분들이 자기 자식을 찾거나 자기 가족을 찾으면 집으로 돌아가잖아요. 바지선에 두 달 넘도록 계신 분이 있는 거예요. 그분은 아직 못 찾은 거잖아요, 자기 가족을.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그런데 그분들유가족이 더 힘드니까 힘든 기색을 보인 적은 없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희생자를 찾지 못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벗는 날이 늘었습니다. 캄캄한 선체 안에서 침대 위치를 옮겨보는 등 체력을 써가면서 몸을 쥐어짜듯 수색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잠수사들은 하루 4차례 선체에 접근해 희생자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안전 규정상 수심 40m가 넘는 환경에서 잠수 시간은 15분을 넘길 수 없고 하루 한 차례 잠수가 적절합니다. 하지만 규정을 지키고는 희생자를 빠르게 수습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깊은 바다에서 급상승하면 혈관에 녹아있던 질소가 팽창해 몸을 망가뜨립니다. 몸도 마음도 닳게 한 그해 바다. 세월호 이후 대부분의 잠수사가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김 잠수사 또한 부상으로 동료들보다 먼저 현장을 떠난 뒤 다시는 잠수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희생자를 찾는 꿈을 꾼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4월은 아쉬움과 슬픔, 분노로 남았습니다. "희생자를 다 못 찾았기 때문에 희생자를 찾는 꿈을 꿔요. 그리고 이렇게 4월이 되면 특히 그때 생각이 더 나요. 구명조끼 입고 갑판에만 나와 있었어도 다 살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 배 안에 있으라고 해서 다 희생당하게 만드나. 막 화가 치미는 거예요."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은 똑같이 변한 게 없더라고요. 이게 왜 여당 야당 싸움이 돼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진상규명도 하는 거고, 책임자 처벌도 하는 건데. 그게 똑바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 아니냐 생각해요. 국민들도 이런 거에 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 잠수사의 지난 10년은 세월호 현장에서 보낸 짧은 시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후유증이 고통스러워 다 잊고 싶다가도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간다면 또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라 말합니다. "솔직히 가서 또 다치고 싶지는 않지만… 잠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갈 것 같아요. 오히려 그걸 알면서도 안 가면 그게 더 괴로울 것 같아요. 희생되신 분들도 우리 국민이잖아요. 우리 국민이니까 간 거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lt; 기획·구성: 한지은 | 촬영: 송원선 | 편집·그래픽: 이다예 gt; write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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