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문학성만 봤다"…노벨상 심사위원장 최애 한강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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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지난 7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자 강연을 마친 뒤 사인을 해주고 있다. [AF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오후 5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을 소개하기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무대에 선 엘렌 맛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은 한강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두 가지 색깔을 언급하며 입을 뗐다. 매년 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에서 10분 남짓. 심사위원들은 무대에 올라 작가의 작품세계를 문학적인 언어로 소개한다.
맛손은 이날 한강의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그는 “눈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그리고 둘 사이에 떠 있는 자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며 “서술자는 기억의 조각을 맞추면서 시간의 층위를 활강하며, 죽은 자들의 그림자와 교류하고 그들로부터 배운다”고 소설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처받고, 깨지기 쉬우며, 어떤 면에서는 약하지만 그럼에도 한 걸음을 내디디고,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고 강조했다.
여성 수상자는 이브닝드레스, 남성은 연미복만을 허용하는 노벨위원회의 시상식 드레스 코드에 따라 이날 한강은 긴 검정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작은 검정 핸드백을 들었다.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무대에 앉아있던 그는 5분 남짓 이어진 맛손 위원의 발표를 경청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반대편에서 걸어 나온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이 그에게 메달과 노벨상 증서diploma를 수여했다.
한강 작품 중 『작별하지 않는다』 가장 좋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도서관에서 만난 앤더스 올슨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 홍지유 기자
올슨 위원장은 스톡홀름 노벨도서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문학에서의 이상은 문학성뿐”이라며 “어떤 이념적 고려도 없이 문학성literary merit만으로 한강을 수상자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상주의적 경향’이 있는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주겠다는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비추어 한강 작품을 평가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이은 답이다. 그는 “노벨의 유언은 현재의 스웨덴 한림원이 추구하는 방식은 아니다”며 “20세기 초, 노벨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이상’은 칸트의 철학적 이상주의 또는 보수적 도덕주의를 의미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노벨상은 현대문학에 더 가까워졌다”고 했다.
올슨 위원장은 이어 노벨상 심사위원회와 한림원이 현대문학을 평가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문학적 ‘이상’은 오직 하나, 문학성입니다. 한림원이 평가하는 것 역시 문학적 성취의 수준이죠. ‘한강은 이념적인 작가’라고 주장하는 항의성 e메일을 한국에서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답하자면, 이념은 우리의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윤리나 이념, 도덕의 잣대로 문학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한강의 문학세계에 대한 그의 평가는 지난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연설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올슨 위원장은 약 13분에 걸쳐 한강의 장편소설을 소개하며 “잔혹하면서도 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닌”채식주의자, “상실에 관한 아름다운 고찰”희랍어 시간, “한강 증언 문학의 시작점”소년이 온다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지난 7일 한강의 강연이 끝난 후 함께 저녁을 먹었다며, 인터뷰 중 수차례 “무척 아름다운 강연이었다”고 강조했다.
“한강은 강연에서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오랜 시간 품어왔다고 밝혔습니다. 나는 그 질문에 깊이 공감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무척 아름다운 강연이었다는 말과 함께요.”
“노벨상, 남성위주라는 비판 수용…변화 거듭”
그는 가장 좋아하는 한강의 작품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꼽았다. “비극적 역사를 소재로 한 책이지만, 동시에 애도와 우정에 관한 책”이라며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와 인간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한강의 작가정신이 잘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올슨 위원장은 이어 노벨문학상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유럽 남성 위주의 상이라는 비판을 수용하고 변화를 거듭해 왔다”면서다.
“2021년 노벨문학상은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는 대중에게 주목받는 작가가 아니었지만 탁월한 작가임이 분명했습니다. 2020년 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 역시 노벨상을 받기 전까지 다른 언어로 번역된 책이 거의 없었죠. 우리는 노벨상이 이런 작가들을 발굴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한강의 수상이 갖는 의미를 묻자 그는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젊은 편이고 이는 놀라운 일”이라며 “노벨상은 동시대의 작가, 젊은 작가에게도 영감이 되는 상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슨 위원장은 한강의 수상을 반대하는 소수 의견으로는 어떤 것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기밀 유지 서약에 따라 말할 수 없다”며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스톡홀름대에서 문학 교수를 지낸 문학평론가로 2019년부터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까지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시상식 연설도 담당했다.
스톡홀름=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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