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의 리믹싱 셰익스피어] 어느 여름 한낮에 비할까, 당신이라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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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10음절짜리 행 14개4-4-4-2 구조가 규칙적 라임각운과 함께 움직이는 정형시다. 총 154편 중 빼어난 것을 고르고, 동시대적 사운드를 입혀 새로 번역하면서, 지금-여기의 맥락 속에서 읽는다. 당신을 어느 여름 한낮에 비교해도 좋을까? 그대가 더 사랑스럽고, 그대가 더 온화하지 거친 바람이 여름 5월의 꽃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너무도 짧아. 하늘의 눈인 태양이 어떤 날엔 너무 뜨겁고 그의 금빛 안색은 종종 구름으로 흐릿해지지 모든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떠나 사양길로 우연이든, 순리로든, 언젠가 치장을 잃는 것. 그러나 당신은 영원한 여름날을 살게 될 거야 당신이 가진 아름다움 내놓을 일도 없을 거야 죽음도 제 골짜기에서 당신 헤맨다고 못 뻐길 거야 영원한 시행 속에서 그대는 시간과 한 몸일 테니. 인간이 숨을 쉬는 한,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한, 오랫동안 이 시는 살지, 살아서 당신을 살게 하지. 소네트 18 신형철 옮김 ‘출산 소네트’는 끝났다. 소네트 154편이 상영시간 154분짜리 영화라면, 첫 번째 플롯 포인트가 되는 곳이 바로 여기다. 아름다운 청년에게, 그 아름다움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제발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던 시인은 없다. 당신이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내가 당신을 찬미하는 시라도 쓰겠다고 말하던 시인도 아니다. 아름다움을 말하되 그 보존과 전승이 문제가 아니고, 시로 찬미하되 출산의 대체물로서가 아니다. 찬미의 동기와 성격이 바뀌었다. “시인은, 청년을 찬미하기 위해, 청년을 찬미한다.”Don Paterson 시인은 사랑에 빠졌다. 시인이 사랑에 빠졌다. 덕분에 유사 이래 인간의 언어로 쓰인 것 중 가장 위대하진 않더라도 유명한 시가 탄생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결국 쇠퇴 시인은 사뭇 달라진 어조로 청년에게 묻는다. 당신을 여름날에 비교하면 어떻겠느냐고. 물론 질문이 아니다. 고백이다. 영국의 여름은 일찍 시작되고 사계절 중 가장 완벽하게 좋다. 그 여름보다 더 사랑스럽고 온화한 게 당신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라는 날씨, 당신이라는 계절.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한 비교다. 그러니 이제 저 완벽한 여름날의 날씨에 흠이 있다고 우겨야 한다. 더 많은 흠을 잡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수록 나의 사랑은 입증된다. 여름은 위태롭다3행, 여름은 짧다4행, 맑음과 흐림의 기복도 있다5~6행, 그리고 모든 아름다움이 그렇듯이, 결국 쇠퇴한다7~8행. 당신은 다르다. 당신이 여름날보다 사랑스럽고 온화하다 해도 ‘더 나은 여름’일 뿐이지 않은가? 계절의 유한성마저 초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그럴 수 있다. 내가 당신을 ‘쓸’ 것이므로. 9~12행에서 느껴지는 저 벅찬 당당함, 혹은 당당한 벅참을 전달하는 게 이 시 번역의 핵심이다. 번역에 대해 덧붙이자면, “죽음도 제 골짜기에서 당신 헤맨다고 못 뻐길 거야”에서 원문의 ‘shade’는 시인이 시편 23장을 암시한 것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관용적 성경 번역을 취했고, “영원한 시행 속에서 그대는 시간과 한 몸일 테니”는 원문의 grow to 가 어떤 것의 유기적 일부가 된다는 뜻이라는 Colin Burrow의 주석을 수용한 것이다 ■ 사랑에 빠진 시인 영원과의 싸움 온화한 여름 흉봐 사랑 입증하기 유사 이래 가장 유명한 사랑시 영화 노매드랜드 서약시 쓰여 이 시가 얼마나 많은 영화에 삽입됐는지 다 조사하지 못했지만 가장 최근 사례에 해당할 영화가 무엇인지는 안다. 노매드랜드클로이 자오, 2020는 그해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늘어난 미국 내 노마드유목민의 삶을 다룬다.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은 남편과 사별하고 다니던 직장마저 폐업하자 노마드의 삶을 택한다. 최소한의 살림을 밴 한 대에 싣고, 단기 일자리에 맞춰 이동하는 삶. 그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의 삶이다. 그런 그가 한 노마드 청년으로부터 여자친구에게 적어 보낼 시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자 결혼 서약서에 사용했다며 이 시를 낭송한다. 그림=김지윤 기자 당신은 대상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 맥도맨드의 정교하게 절제된 연기를 비집고 소네트18이 흘러나올 때 이 진부할 정도로 고전적인 시는 쓰인 지 400년 만에 인간의 입으로 처음 낭송되는 것처럼 살아난다. 세 군데 정도 틀린 버전으로 암송하는 것조차 현실감을 높인다. 이 시가 결혼 서약에 적합한 시라는 사실은 마지막 두 행이 알려준다. 셰익스피어가 쓴 문장이 장차 불멸의 존재로 만들 예정인 ‘당신’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라고 생각해 보라. 서약을 위해 낭송된 시는, 그 순간 그 사랑을 ‘화행론’적으로 불멸하게 할 것이다. 지금 펀이 이 시를 되새길 때 그들의 사랑은 바로 거기에 여전히 있다. 펀이 자신에게 없지 않다고 말한 그 ‘홈’은 이 시 자체일지도 모른다. 4행을 “여름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라 어색하게 옮긴 것은 원문이 summer’s lease이기 때문이었고, 10행을 “아름다움을 내놓을”로 옮긴 것도 lose possession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셰익스피어가 일시적 차용과 완전한 소유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음을 표나게 드러냈으니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서다. 이 사랑의 시는 우리가 무언가를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소유할 수 있고, 한 편의 시로 사랑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그 뜻을 정확히 받아냈다. 펀은 하우스 대신 사랑 속에 거주한다. 소네트18은 우리가 들어가 살 수 있는 시다. ■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er’st in his shad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신형철 문학평론가 [J-Hot] ▶ "車에서 남친 유서 나왔다"에…여친은 뚝 끊었다 ▶ 이건희 장례때 엄지척…이재용 놀래킨 염장이, 왜 ▶ 고독사 방에서…햇반 챙기고 과일 깎아먹은 가족 ▶ 여가수 국회의원 탄생…"朴만세" 외친 조국당 누구 ▶ 호텔서 男2명 추락사…객실엔 결박 당한 女2명 시신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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