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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속 은어는 생생하게 죽었다…흙서 펄떡이다 맨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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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95회 작성일 24-04-0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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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의 한 장면. 영화 속 무당이 대살굿을 하며 돼지의 사체에 칼을 휘두른다.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에는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돼지, 닭, 개, 은어 등이다. 그런데 영화 속 동물들은 하나같이 위험한 상황이거나 고통스러워 보인다. 닭은 목이 잡혀 칼이 들이대지고, 실외에 사는 개는 짧은 목줄에 묶여있다. 비록 사체라고는 하나, 다섯 마리의 돼지는 잔인하게 칼로 난도질당한다. 이 영화에서 동물은 지각력이 있는 생명이 아니라, 단순하게 상품화된 객체로 취급되는 것이다.






까미 사망 2년…동물은 여전히 ‘소품’





우리에겐 이미 그런 경험이 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 다리에 와이어를 묶고 고꾸라진 뒤 죽은 말, 까미 이야기다. 2022년 1월, 한국방송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과정에서 퇴역 경주마 ‘까미’가 학대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제작진은 까미의 다리에 와이어를 걸고 달리게 하여 계획적으로 넘어뜨렸다. 까미는 촬영 일주일 뒤 사망했다.



카라는 제작진을 동물학대 혐의로 고발했고, 촬영장에서 동물을 보호하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까미의 죽음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까미 사건 관련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20만 명이 참여했고, 국회에서는 ‘까미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정부도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며 2022년 상반기 중에 ‘미디어 동물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퇴역 경주마 ‘까미’는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을 촬영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한국방송 제공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올해 1월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동물학대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제작진 3명에게 각각 벌금 1000만원, 방송사에도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그러나 정부가 만들겠다고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현재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부 부처 및 동물단체 등이 참여한 몇 번의 회의 끝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동물들은 여전히 소품처럼 취급되며 촬영을 위해 희생된다. 까미가 당한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





칼에 베인 다섯 마리 아기 돼지들





영화 ‘파묘’는 흙과 영혼마저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는 영화다. 영화 속 풍수가 김상덕최민식은 생명이 태어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중요시하고, 무당 이화림김고은과 윤봉길이도현 또한 대살굿을 벌이며 혼을 달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의 장례에 정성을 다하기 위해 이들은 좋은 땅과 날씨를 고르며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



영화 ‘파묘’의 한 장면. 영화 속 무당이 대살굿을 하며 돼지의 사체에 칼을 휘두른다. 쇼박스 제공

반면 동물들은 오로지 소품처럼 여겨진다. 다섯 마리의 아기 돼지들은 인간을 대신해 무참히 칼에 베이며 인간의 죽음을 대신한다. 영화 속 돼지가 실제 사체였는지 모형이었는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인간과 동물의 죽은 몸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파묘’의 동물학대 논란이 알려지고 난 뒤에도 가장 조명 받지 못한 생명은 단연 은어다. 영화에서 은어는 흙 위에서 펄떡거리다 등장인물의 맨손에 붙잡힌다. 출연 배우의 인터뷰를 보면 당시 은어는 살아있는 상태였다. 어류는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디어 촬영 과정에서 30초 이상 물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제작진은 은어가 ‘실감 나게’ 죽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미리 양어장을 방문해 어류를 ‘예약’하는 정성까지 보였다. 이러한 뒷이야기가 양어장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드러났다.



제작사에 은어를 제공한 한 업체의 게시글. 블로그 갈무리

카라는 3월12일, 영화 제작사 ‘쇼박스’에 7가지 질의를 담은 공문을 메일과 팩스로 보내 동물 촬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물었다. 그러나 제작사는 답변 기한이 지날 때까지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재차 메일을 보내 답을 재촉해도 응답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다 지난 1일 카라의 에스엔에스SNS에 그동안 ‘동물출연 미디어 모니터링 본부’에 영화 ‘파묘’에 대해 접수된 의견과 카라가 지적한 문제점 등을 정리해 올리자, 즉시 정중한 사과와 함께 답변서를 곧 제출하겠다고 연락해왔다.



‘동물 출연 미디어 모니터링 본부’에 접수된 영화 ‘파묘’ 관련 시청자 의견. 누리집 갈무리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중요한 이유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종종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No animal were harmed라는 안내 문구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미국인도주의협회AHA, American Humane Association가 마련한 ‘영화 촬영 시 동물의 안전한 사용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다는 의미이고, 해당 영화가 촬영되며 어떠한 동물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인도주의협회는 1940년부터 이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가 최초로 만들어진 시기는 1919년이다. 그러나 100여 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현재까지 영화 속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없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동물이 소품처럼 사라졌을지 그 희생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카라가 2020년 12월 이미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작했지만, 정부가 직접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미디어를 만드는 제작자뿐 아니라 소비하는 시청자, 이를 감독하고 조율할 기관, 동물단체들도 지켜야 할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이드라인은 무엇보다 촬영 현장에서 동물의 안전과 복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영상의 미학보다 동물의 생명이 우선시된다는 기본 원칙이 담겨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영화의 크레디트에도 실제로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다’고 쓸 날이 오길 바란다.



※ 카라는 ‘동물 출연 미디어 모니터링 본부’media.ekara.org를 운영하며 시민들이 제보한 ‘미디어 속 동물학대 의심 사례’를 모으고, 이를 검토해 제작사에 질의해 답변을 받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카라가 제작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은 카라 누리집 자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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