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기어도 저지, 또 저지…오늘도 투표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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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11시35분께, 서울 종로구 혜화아트센터 1층 혜화동 제3투표소 앞. 흰색 무릎보호대를 차고 휠체어에서 내린 장애인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윽고 그는 온몸으로 바닥을 기며 투표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가 ‘헉헉’ 숨을 몰아쉬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바닥에 닿는 팔은 온통 검게 변해 갔다. 기어서 투표소에 들어가 맨바닥에서 투표를 마친 그에게 투표 참관인이 날카롭게 외쳤다. “휠체어 타시죠! 이게 다 배려라는 건 아십니까?”*원하는 대로 기어서 투표까지 마쳤으니, 휠체어를 타고 빨리 투표소를 떠나라는 채근 “내가 당신에게 배려받을 이유가 뭐 있소?” 그가 맞받았다. 이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주소지인 혜화동에서 ‘포체투지’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쳤다. 지난 5∼6일 사전투표 기간 동안 경찰과 선관위에 의해 포체투지 투표를 저지당한 뒤, 세 번째 시도 끝에 성공한 것이다. 포체투지는 온몸으로 기어가며 장애인의 권리를 외치는 시민 불복종 행동이다. 몸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인 ‘오체투지’를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은 기어갈 포匍자를 쓴다. 지난 1일부터 박 대표와 전장연 활동가들은 매일 아침 8시 서울 시내 지하철 곳곳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투표해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며 포체투지를 이어 왔다. 앞서 지난 5∼6일 박 대표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 주민센터에서 포체투지를 하며 두 차례 사전투표를 시도했으나 경찰과 선관위에 의해 저지당했다. 5일 경찰은 박 대표가 바닥을 기어 투표하려는 시도와 그가 들고 있는 팻말의 문구 등을 ‘소란한 언동’으로 보고 투표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공직선거법 166조는 투표소로부터 100m 안에서 소란한 언동을 하는 자가 있는 때에 투표사무원이 이를 제지하고, 경찰공무원에게 원조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 대표는 6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투표를 시도한 끝에 투표소에 들어가는 데는 성공했으나, 투표소 직원들이 그가 제시한 장애인복지카드를 신분증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거절해 끝내 투표하지 못했다. 공직선거관리규칙 82조는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발행하고 사진이 첨부된 장애인등록증 등을 투표 시 사용 가능한 신분증으로 규정한다. 장애인복지카드도 장애인등록증의 한 종류다. 이를 알지 못한 직원들의 저지에 박 대표는 급하게 집에서 여권을 가져왔지만, 오후 6시가 넘어 투표하지 못했다. 이날 세 번째 시도 끝에 투표를 마친 박 대표는 “휠체어를 타고 안 타고는 내 선택의 문제다. 비장애인들도 저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투표소에 온다. 저는 신체구조상 간절한 마음을 기어서 투표소에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장애인에게만 ‘소란 행위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식의 차별적 인식이 힘들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앞선 2번의 사전투표를 막은 서울 혜화경찰서와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예정이며, 별도 사법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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