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26일 오전 8시29분쯤 제주시 한경면 청수마을회관에서 긴 화살에 꿰뚫린 채 발견된 피해견.제주시 제공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아니 지금 여기 화살 맞은 개가…"
한여름이던 2022년 8월26일 오전 8시29분쯤 제주시 한경면 청수마을회관 인근 도로를 지나던 한 주민은 믿지 못할 광경에 곧바로 신고전화를 눌렀다.
긴 화살에 몸통이 꿰뚫린 개 한마리가 고통스러운 듯 웅크린 채 얕은 숨만 헐떡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 몸통 양쪽에 드러난 화살촉과 화살깃이 그 고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개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과 경찰에 의해 제주대학교 수의과대학 부설 동물병원 옮겨져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엑스레이X-Ray 검사 결과 화살은 개의 다섯 번째 허리뼈를 왼쪽 뒤에서 오른쪽 앞 방향으로 완전히 관통한 상태였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살펴 보니 이 개는 3살로 추정되는 수컷 허스키 믹스견이었다. 목줄을 차고 있어 주인이 있는 듯 했지만 몸에는 동물등록 칩도, 이후 찾는 주인도 없어 동물보호센터로 옮겨졌다.
2022년 8월26일 오전 8시29분쯤 제주시 한경면 청수마을회관에서 긴 화살에 꿰뚫린 채 발견된 피해견이 구조 직후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화살 제거 수술을 받고 있다.제주시 제공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개가 발견된 곳이 인적이 드물고 CCTV가 적은 중산간이었던 데다 유일한 증거인 화살은 경찰 허가 대상인 석궁용이 아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양궁용이었고, 화살 재질이 매끈한 카본이어서 지문도 채취할 수 없었던 탓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3000장이 넘는 전단지를 배포하기도 했지만 유의미한 제보 역시 없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포기하지 않았다.
전담팀까지 꾸린 경찰은 개의 동선이 나온 CCTV 영상을 분석한 끝에 범행 장소를 개 발견 장소로부터 10㎞ 거리에 있는 서귀포시 대정읍으로 좁혔고, 수개월간 그 일대를 끈질기게 탐문한 끝에 화살 구입 내역을 토대로 지난해 3월 A씨49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A씨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경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화살이 발견되자 결국 꼬리를 내렸다. 화살 맞은 개가 발견된 지 210일 만이었다.
23일 서부경찰서는 지난해 8월 제주에서 몸통에 화살이 박힌 개가 발견된 지 7개월 만에 피의자인 40대 남성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제보 전단지와 피의자 주거지 등에서 압수한 화살. 2023.3.23/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수사 결과 A씨는 피해견이 발견되기 전날인 2022년 8월 25일 오후 7시쯤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자신의 닭 사육장 창고에 들어갔다가 도망가는 피해견을 보고 창고에 있던 1m60㎝ 길이의 삼동나무 활과 80㎝의 화살을 꺼내 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자신이 기르던 닭들이 들개에 물려 죽은 것이 떠올라 순간 화가 났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지난해 7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지난달 13일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배구민 부장판사으로부터 검찰 구형량징역 6개월 보다 많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심지어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법정구속까지 됐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약 60m 거리에서 화살을 쐈는데 실제로 맞힐 줄 몰랐다"며 거듭 선처를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취지로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18일 제주지법에 항소장을 냈다. 사건을 배당받은 제주지법 제1형사부오창훈 부장판사는 오는 23일 오전 항소심 첫 공판을 열 예정이다.
한편 피해견은 제주의 한 동물보호단체의 도움으로 재활훈련을 받으며 지내다 지난해 11월29일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한 여성에게 입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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