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일 오원춘이 피해 여성 A 씨를 납치하는 장면. JTBC 뉴스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12년 전 만우절인 2012년 4월 1일 믿기 힘든 극악무도한 사건이 벌어졌다. 오후 10시 30분께 수원에서 귀가하던 여성 A 씨당시 28세가 남성에게 납치돼 살해됐다.
범인은 중국 동포 오원춘이었다. 퇴근 후 귀가하던 A 씨를 발견한 그는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둔기로 머리를 내리치고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칼로 시신을 분리해 봉지에 나눠 담았다.
오원춘 사건에서 경찰의 대응은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112 신고 접수를 받고도 초동 대처에 실패한 뒤 사건을 축소 발표했다. 경찰은 신고자와 1분 20초간 통화했다고 밝혔지만 총 7분 36초간 전화가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뭇매를 맞았다.
사건 이후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이 해임됐고 관련자들에게 중징계가 내려졌고, 이를 계기로 112시스템 등이 대대적으로 개편됐다.
◇ 택시비 아끼려 1㎞ 걸어 귀가 중 참변…유족 울분
피해자는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A 씨였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1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 퇴근 후 귀가 중이었다. 휴일이어서 마을버스가 일찍 끊긴 데다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1㎞가 넘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직장에서 별도로 지급되는 밥값 10만 원을 아껴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하던 A 씨는 아낀 돈으로 동생에게 용돈을 주고 생일선물을 챙길 정도로 가족을 살뜰히 살피던 누나이자 딸이었다.
A 씨는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학비를 마련해 늦깎이 대학생이 됐지만, 형편이 어려워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A 씨의 삶은 집을 400m 앞에 두고 산산조각 났고, 유족은 울분을 터뜨렸다.
◇ "놀이터 전 집" 112 신고…경찰, 위급 아니라 판단
언론을 통해 일부만 공개된 녹취록은 전 국민의 분노를 샀다. A 씨는 오원춘이 나간 사이 방문을 잠그고 112에 신고 전화를 걸어 "납치돼 성폭행당하고 있다"며 피해 사실을 알렸다.
A 씨는 범행이 일어난 장소의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자신이 있는 곳을 아는 대로 정확히 표현했다. 하지만 접수자는 같은 질문만을 반복하기 바빴다. 출동 지시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 저 지금 성폭행당하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경찰은 "못골놀이터요?"라고 물었고, A 씨는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찰에 접수된 112 신고 내용. JTBC 뉴스 갈무리
경찰은 "지동이요?"라고 다시 물었고 A 씨는 "초등학교 좀 지나서 못골놀이터 가는 길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자세한 위치 모르겠냐"고 물었다.
이후에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급기야 "누가, 누가 그러는 거냐"고 물었다. A 씨는 "아저씨 아저씨 빨리요 빨리"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경찰은 "누가 어떻게 아냐"고 했고 A 씨는 "모르는 아저씨"라고 답했다.
그 사이 오원춘은 방문을 열고 A 씨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공포에 질린 A 씨는 "잘못했어요. 아저씨 잘못했어요"라며 흐느꼈다. 이에 경찰은 "아는 사람인데? 남자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라고 말했고, 곧 전화가 끊겼다.
당시 신고센터에는 20여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7분 넘게 이어진 통화에도 경찰은 사태 파악을 전혀 하지 못했다. 신고 접수자는 수화기 너머로 싸우는 소리나 위협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신고 전화를 할 정도라면 위급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범행이 이뤄진 오원춘의 자택 모습. JTBC 뉴스 갈무리
경찰은 신고 접수 두 시간 만에 수원중부경찰서 권역의 모든 현장 인력에게 출동 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가 빠졌다.
A 씨가 정확히 놀이터 가기 전의 집이라고 말했는데도 출동자에게 집 안이라는 지령을 넣지 않았다. 출동자들은 사건 현장에서 다소 떨어진 공터와 놀이터를 수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2일 오후 11시 30분쯤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한 주민의 결정적인 제보를 통해 수사망을 좁힐 수 있었다. 경찰은 문을 두드렸는데도 열리지 않은 집 문을 반쯤 부수고 들어갔고 오원춘은 그때까지도 시신을 훼손하고 있었다.
◇ 오원춘 "피해자에 미안해 자백"…이후 진술 번복
신고 접수 13시간 만에 체포된 오원춘은 경찰 조사에서 A 씨의 전화가 끊긴 후에도 6시간 동안 살아있다고 진술했다.
오원춘은 첫 공판에서 "제가 저지른 죄이고 피해자에게 미안해서 거짓말하지 않고 모두 자백했다"고 진술했다. 또 그는 "피해 여성과 어깨가 부딪혔는데 욕하고 무시해서 집으로 데려갔다. 피해 여성이 너는 담력이 없어서 못 죽일 것이다라고 말해 죽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는 "죄가 가벼워질 것 같아 거짓으로 진술한 것"이라고 번복하기도 했다.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는 오원춘. /뉴스1 경인일보 제공 ⓒ News1
오원춘은 사이코패스 진단검사에서 35점 만점에 22점을 받았다. 사이코패스 기준 점수인 25점에는 못 미쳤으나 위험인물로 간주하기에 충분한 점수였다.
당시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표창원 교수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오원춘을 사이코패스다 아니다로 단정 짓기 어렵다면서도 "이상 심리와 인격 장애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2012년 6월 오원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신상 공개 10년과 전자발찌 부착 30년도 함께 명령했다. 오원춘은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13년 1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전자발찌 30년이 확정됐다.
유족은 "112 신고했는데도 초동 수사가 미흡해 고귀한 생명을 잃게 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 6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국가가 1억 원가량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2심에서 배상액이 2130만 원으로 대폭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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