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살이 노인? 기대수명 늘어도 40년 넘게 그대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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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살인 노인 기준 연령을 70살 혹은 75살로 올리자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부영그룹 회장이 지난 10월21일 취임 일성으로 ‘노인 기준을 75살로 상향 조정하도록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하면서 논의에 불을 붙였다. 바로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이 한덕수 국무총리가 검토 의사를 밝히고 관계 부처가 내부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노인 연령을 높이자는 논의는 지난 10여년간 반복적으로 제기됐지만 제대로 진도가 나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변죽만 울리며 논의가 제자리를 맴맴 돌고 있다. 왜일까?
#지하철 무임승차
“낮 시간대에 지하철 타면 한칸에 절반 이상은 노인들이라예.”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신희숙가명·77씨는 일주일에 대여섯번씩 지하철을 탄다. 그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버스 대신 지하철을 이용한다. 65살 이상 경로우대로 요금을 내지 않아도 돼 교통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희숙씨는 “특히 여름철 폭염 기간에는 노인들이 타고 순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그는 “12년 전 처음 탈 때는 이렇게 공짜로 타도 되나 싶었는데, 지금은 이런 혜택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고 했다.
초창기 노인 연령 기준을 둘러싼 논란은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가 촉발했다. 무임승차는 1984년 5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 지시에 따라 도입됐다. 65살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4% 수준에 불과했던 시절이다. 마땅한 재원 대책 없이 시행한 제도가 급속한 고령화로 적자 규모를 키우자, 경로우대 나이를 올리는 방안이 해법 중 하나로 거론된 것이다.
일찌감치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부산에선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는 자조섞인 농담이 흘러 나온다. 부산 인구의 23.8%11월 주민등록인구 기준가 노인이고, 지하철 무임승차 비중은 전체 승객의 34.1%올해 1~11월말 누적 기준에 달한다. 김낙현 부산교통공사 홍보팀장은 “지난해 무임승차로 인한 재정적자가 1406억원”이라고 했다. 고령화 속도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지하철이 운행되는 서울과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인 무임승차에 따른 적자 해소 방안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거나, 손실분을 정부가 보전하는 방안, 그리고 경로우대 나이를 올리는 것이다. 국회에서 수년째 입법 논의가 이뤄졌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무임승차 폐지는 고령 유권자의 반발을 의식하는 정치권이 선뜻 나서지 않는다. 비용 보전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서로 책임을 미루느라 논의가 공전돼왔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지역에선 무임승차 연령을 올리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해마다 한살씩 올려 2028년부터 70살로 기준 나이를 올리기로 했다. 다만 버스도 무임승차 혜택을 주기로 한 절충안이다.
무임승차 논란은 노인 연령 기준 논의가 얼마나 ‘뜨거운 감자’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일단 시행된 복지 혜택을 줄이기가 쉽지 않은데다 가난한 노인이 유독 많다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노인 차별
법적으로 노인이 몇살부터라고 정의된 것은 없다. 다만 노인이 받는 복지 혜택의 연령 기준이 대체로 65살부터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이다. 1889년 독일의 비스마르크 총리가 노령연금을 도입하면서 70살부터 받도록 했다가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일었다. 당시 평균 수명이 40대를 넘기지 못했는데 74살이었던 비스마르크가 자신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논란 끝에 1916년 독일은 수급 연령을 65살로 낮췄고, 이후 유엔도 이를 고령자 기준으로 삼았다.
노인 연령을 높이자는 주장의 근거로는 우선 기대수명 증가가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가 도입된 1984년 출생아 기준 기대수명은 68.3살에 그쳤다. 하지만 2023년엔 83.5살로 올라갔다. 이 때문에 노인복지법이 정한 경로우대 나이가 1981년 법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65살로 같아서야 되겠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이다. 국내외 학계에선 노인 연령과 노화과정 및 건강상태를 연동하는 연구를 바탕으로, 기대여명 15 년이 남 는 시점을 노인 기준으로 삼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한다. 이럴 경우 , 2023 년 기준 한국인의 노인 연령 기준은 72 살기대여명 15.6년이 된다 .
노인이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은 평균 71.6살2023 노인실태조사이다. 서울 서초구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다 5년 전 사업을 정리한 이경숙75씨는 “65살부터 노인으로 불리우기엔 너무 팔팔하다. 최소한 70살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조사가 거듭될수록 이런 주관적 노인 연령은 높아진다. 이전보다 건강상태가 양호해진 노인들의 경제활동과 사회활동 참여가 늘어난 영향이다.
‘65살에 노인이 되긴 싫다’는 인식을 키우는 또 다른 배경엔 ‘노인 차별’과 ‘노인 혐오’ 현상이 있다. 상업시설에서 노인을 배제하는 ‘노시니어존’과 같은 나이 차별은 사회 구석구석에 퍼져 있다. 지난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65살 이상의 헬스장 회원 가입을 제한한 행위를 차별이라 규정하고 정관 개정을 권고했다. 헬스장 쪽은 “고령화로 인한 미끄러짐이나 부딪힘 등 빈번한 사고 발생”을 가입 제한의 근거로 들었지만, 인권위는 “노년층은 체력이 약하고 부주의나 건강상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부정적 편견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19~39살 청년의 80.4%는 노인 인권이 침해되는 이유가 ‘노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 때문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2018 노인인권 종합보고서 생계를 위해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고령자들이 나이 차별로 인해 겪는 어려움은 배가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효 사상을 강조하는 전통적 문화로 인해 노인을 공경할 것이란 통념과 달리 노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높게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데 비해 노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2004년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일본에서도 2010년을 전후로 ‘혐로嫌老사회’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였다.
#빈약한 재정
역대 정권을 통틀어 정부의 관심은 생산인구 감소와 복지지출 증가에 있었다. 저출생·고령화로 빠른 속도로 생산인구가 줄고 부양인구가 늘어나는 문제에 봉착할 것이란 우려가 출발점이었다. 만일 연령 기준이 75살로 올라갈 경우, 내년에 노인 비중은 8.3%로 확 줄어든다.
2012년 기획재정부는 중장기 전략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인 기준을 70살이나 75살로 올리면 인구 구조가 크게 악화하지 않는다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복지부담 증가분에 대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2016년 발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노인복지정책의 발전 방향가 그 결과물이다. 보고서는 노인 기준을 그대로 두면 2024년 기초연금 수급자가 2014년보다 50.2% 늘지만 70살 이상으로 올리면 7.4%만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의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 ‘노인 기준 재정립’이 과제로 제시됐다.
하지만 복지지출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셌다. 2019년 당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총대를 멨지만 역시 진전은 없었다. 그 무렵, 정부는 노인 외래정액제진료비 1만5천원 이하 본인 부담 1500원 적용 나이를 65살에서 70살로 올리려다가 불발에 그쳤다. 이후 정부는 노인 기준을 올리고 싶은 속내와는 달리 공식적으로는 매우 신중한 모드로 전환한다.
‘65살에 노인이 되기 싫다’는 고령자들도 복지 혜택을 더 늦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면 생각이 달라진다. 만일 70살로 노인 연령이 올라갈 경우, 지하철 무임승차 시점은 지금보다 5년 늦어진다. 요양원 입소 자격과 의료비 감면, 각종 세금 감면 등의 혜택도 마찬가지다. 기초연금을 받는 시점이 늦어지는 동안, 노인들은 더 많은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할 수도 있다. 2022년 기준 기초연금 수급 노인 623만8798명 가운데 65~69살 노인은 186만5542명29.9%이다.
사회적 합의를 추진할 경우 , 누가 노인을 대변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 . 2015 년 당시 이심 대한노인회장도 노인 연령 상향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전체 노인을 대변하진 못했다. 오히려 관제성이 아니냐는 의심만 샀다 . 대한노인회 한 간부는 “대기업 회장 이중근 회장 은 가난한 노인의 현실을 잘 모른다 . 당장 2~3 년 뒤에 65 살이 되는 60 대 초반 중에서도 복지혜택을 더 늦게 받게 된다고 하면 반발이 클 것 ” 이라고 전했다 .
#노후 소득절벽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자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음에도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이유에 주목한다.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그동안 우리는 노인을 독립 생계자가 아닌 부양 대상으로만 인식해왔다. 핵심은 퇴직 뒤 연금으로 노후를 보낼 수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도 “유럽에선 퇴직과 동시에 연금을 수령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논의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노후에 소득절벽을 만날 위험이 대단히 높다. 첫째, 주된 일자리를 떠나는 시점과 공적연금국민연금·기초연금을 받는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다. 법적 정년인 60살을 채우더라도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올해 기준 63살과는 차이가 난다. 2033년부턴 그 차이가 5년으로 벌어진다. 둘째, 연금으로 노후 소득을 충당하기 어렵다 보니 노동시장에 머무르는 기간이 너무 길다. 201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실제 노동시장 은퇴 나이는 65.4살남성 기준이지만 우리는 72.3살로 가장 높다. 셋째, 한국의 노인 빈곤율2020년 기준 40.4%은 오이시디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런 위험 요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관련 논의는 계속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이윤경 보건사회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자칫 연령 기준만 올리면 노인 빈곤을 심화시키고 노후에도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한다. 박능후 전 장관경기대 교수은 “국민연금은 물론이고 관련 제도와 법령이 상당히 많아서 정부가 조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간 차일피일 미뤄온 측면이 없지 않다”며 “인구수가 많은 2차 베이비부머1964~74년생도 머잖아 노인이 될 예정이어서 더 미루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은?
내년부터 우리는 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섭니다. 한때 폭발적 인구 증가가 걱정거리였던 나라가 지금은 빠르게, 그것도 전속력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질문들을 격주로 하나씩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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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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