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억울하지만 참는다…이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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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아진 기자의 밀당] 비명횡사로 세 번 죽은 민주당 국회의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비명 횡사’를 세 번이나 당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하고 차분했다. 박 의원은 “억울하고 분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대로 비운의 인물로 끝날 것이냐, 다른 결말을 만들어낼 것이냐는 나한테 달린 것”이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그런데 그 일은 현실이 됐다. ‘현역 국회의원 평가 하위 10% 통보’ ‘정봉주와의 경선 패배’ ‘정봉주 막말로 낙마’ ‘친명 조수진과 전략 경선 패배’ ‘조수진 아동 성범죄 변호로 낙마’ ‘친명 한민수의 전략공천’…. 그의 지역구 서울 강북을 공천 과정에서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일이다. 5kg이 빠졌다. “그 시간 동안 인생에서 겪을 수 없는 온갖 일을 다 겪은 것 같아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가짜인 ‘트루먼 쇼’를 찍는 줄 알았다고요. 억울하고 분했죠.” 박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의 공천이 친명 인사 전략공천으로 막을 내린 지 나흘 만에 그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 대표를 “우리 모두가 처음 겪는 당대표”이라며 “이번 공천은 뼈아픈 지점이 될 것”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박 의원은 "겉으로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고 했다. 이제 민주당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긴 힘들어진 걸까? "이견을 억압한다면 정치적 사막화로 갈 수밖에 없어요. 모래만 가지고는 집을 지을 수 없고요."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박 의원은 지난 2월 19일 낮 12시 9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몸이 찌뿌듯해서 점심 식사를 하는 대신 샤워를 하려고 막 탈의실에 들어설 때였다. 발신자는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 “박용진 의원님을 참 좋아한다”고 말문을 열었는데 그것이 악몽의 예고편이었다. “국회의원 평가 하위 10%라고 통보를 하더라고요. 왜냐고 묻자 모른대요. 간단한 통화였는데 그걸 시작으로 한 달간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조차 없네요.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래도 기록으로 다 남겠죠.” 박 의원은 “오늘의 이 과하지욕을 견디겠다”며 30% 감산 페널티를 감수하면서도 경선에 참여했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하위 통보를 받았을 때 어땠나요? “황당했죠. 두 가지 마음이었어요. 장난이겠지? 아니면 정치적 장난이겠구나. 이걸 꽁꽁 숨기고 그냥 경선을 치러야 하나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하위 10%에 들었다고 공개한다고 해도 국민이 ‘넌 그래도 싸’라고 하지 않을 거라 믿었죠. 오히려 ‘그게 말이 돼?’라고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막막했겠네요. “통보 직후 참모와 이 문제를 상의했는데 그 사람도 갑작스러웠는지 아무 답을 못하더군요. 그래서 혼자 노트북을 펴고 기자회견문을 썼어요. 첫 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죠.” -정봉주 전 의원과 경선에서 졌어요. 감점이 없었다고 해도 졌을 거라는 말이 있더군요. “우리 동네 주민들이 날 속이기로 하고 다 같이 짠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경선에서 권리당원 투표율이 75%라고 하는데, 지난 대선 때도 강북을 권리당원 투표율은 73%였어요. 그 외 다른 선거에서도 50% 안팎이었죠. 이게 뭘 의미할까요. 더 말하진 않겠습니다.” -정봉주 낙마 후에도 지도부는 ‘박용진 공천 불가’를 외쳤어요. “겉으로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죠.” -이 대표에게 김상희 의원은 “그렇게 박용진이 두렵냐”고 했어요. 이낙연 대표는 “미래의 라이벌이 될 싹을 잘라냈다”고 했고요. “이 대표가 두려웠겠어요? 우스웠겠죠. 하지만 만약에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건 하수 중에 하수죠.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아요.” -억울하지 않나요? “억울하죠. 분하고요. 떼굴떼굴 구르고 생떼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죠.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꾹 참고 있습니다. 정치인의 운명은 무대에 오른 배우와 같아요. 아픈데 아프다고도 못 할 때도 있고, 반대로 아프지 않은데 아픈 척해야 할 때도 있고요.” -왜 참죠? “미련한 놈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선거를 앞두고 있잖아요. 절 좋아하는 지지자들도 저로 인해 산통이 깨지길, 그릇이 깨지길 바라진 않아요. 억울하지만 견디고 있습니다.” -너무 견디는 거 아닌가요? “잠은 안 오더라고요. 그런데 울진 않았죠. 제가 죄진 것도 아닌데요. 늘 하던 대로 지난 주말에 산에도 가고, 성당에도 가고, 운동장에도 나갔습니다. 절 붙잡고 우는 분이 많았어요. 억울하다고, 받아들이기 힘들다고요. ‘너무 어이가 없다’며 허탈하게 웃는 분도 많았고요.” -이 대표가 비명 처단에 나선 이유, 뭐라고 생각하나요? “당에서 다른 소리 나오지 않고 하나로 똘똘 뭉쳐야 대통령 된다고 보는 거죠.” -비명 중에도 입 다물고 있으면서 공천받은 의원도 있어요. 혹시 후회하나요? “후회? 전혀요. 국회의원 한번 더 하려고 비굴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국회의원을 천년만년 할 것도 아니고요. 제 뜻대로 관둔 게 아니라 아쉬울 뿐이죠. 다시 돌아가도 반듯하게 의젓하게 똑같이 할 겁니다.” -의외로 담담하네요. “지금은 때가 아닌 거죠. 아직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어요. 이재명 대표 드라마의 끝도 모르잖아요. 제가 비운의 등장인물로 끝날 것이냐, 다른 결말을 만들어낼 거냐는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겠죠. 이제 생각을 좀 해보려고요. 울상 짓고 있기에는 봄날이 너무 좋고 주저앉아 있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젊어요.” 이번 공천 과정에서 비명횡사를 3번 당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박 의원은 이 대표의 눈엣가시였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민주당 경선에서 경쟁 후보로 나와 “세금 물 쓰듯 쓰는 대회 나가면 금메달감” “왜 이렇게 말을 자주 바꾸냐” 등의 말로 이 대표를 공격했다. 대선이 끝난 직후에도 이 대표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에 “자생당사자기 살려고 당을 죽이려는 것” “셀프 공천”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이 대표가 당대표에 출마할 때도 “사당화 우려가 크다” 등의 말로 맞섰다. 박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당시 당권파 친문에게도 “욕 먹어도 할 말은 하겠다”며 매번 싫은 소리를 했다. 하지만 공천으로 보복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왜 박 의원을 잘랐을까요? “결이 달라서 아닐까요? 저는 정치가 이기기 위한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치는 실사구시, 중도 개혁, 국민 통합이죠. 하지만 이 대표는 극단적인 진영 논리,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 상대를 공격하고 혐오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정치, 그 한복판에 서 있어요. 저와는 다르죠.” -그는 어떤 대표인가요? “10초쯤 침묵 모두가 처음 만나는 리더십이죠. 그래서 공포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처럼 비주류가 무기력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과거엔 이렇게 하면 대화가 되고 저렇게 하면 반응이 오고 그랬죠. 하지만 이 대표는 그런 거 전혀 없이 쭉 밀고 나가니까 ‘어?’ 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비주류가 한목소리로 대응하지 못했어요. “각자도생이었던 것 같아요. 정치적 구심점도 없었죠. 그러다 보니 그때그때 대응하고 장기 플랜을 못 짰던 거 같아요.” -이제 민주당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더 힘들어진 것 아닌가요? “이견을 억압하고 억누른다면 민주당도 정치적 사막화로 갈 수밖에 없어요. 아무런 색깔도 없이 모래만 가득한 거죠. 모래만으론 집을 지을 수 없어요. 이 대표가 지난 대선 때 0.7%포인트로 패배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민주당에서 대선 후보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잖아요. 다음 대선 땐 0.7%포인트 이상을 얹어야 하는데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어요. 본인에게 상당히 뼈아픈 지점이 될 겁니다.” -이재명 대표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침묵 뭐라고 해야 할까요. 침묵 모두가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데 저는 벤치를 지켜야 해서 답답하지만,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1년도 더 지난 일인 거 같은데, 같이 문배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길 했던 때가 기억나네요. 이제 박용진이 국회의원이 아니라서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때처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날이 오길 바랍니다.” -이 대표가 총선 후 8월 당대표 선거에도 출마할 거란 얘기가 나와요. 비명 쪽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도 불러와야 하나라는 농담까지 하는데요. “저도 농담 한번 할게요. 그래도 질 걸요?”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재명 대표에게 한 쓴소리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국회의원 배지 한번 더 달려고 비굴하게 살진 않겠다”며 “돌아가도 똑같이 반듯하고 의젓하게 의정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번 공천에서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 41%가 물갈이 됐다. 비명계 상당수는 민주당을 떠났다. 가장 먼저 이낙연 대표가 탈당해 ‘새로운 미래’를 창당했고 그 뒤로도 일부가 ‘개혁신당’에 합류했다. 조국혁신당으로 간 친문 인사들도 있다. 뿔뿔이 흩어졌다. 소신 정치인으로 불린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는 민주당에서 금배지를 전부 잃었다. 그런데 박 의원은 탈당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지역구로 온 새로운 후보를 만나 인수인계까지 마쳤다. 지역 정치인들에게 “많이 도와주라”는 당부도 했다. -당에 남겠다고요? “국민이 민주당에 거는 기대와 희망이 아직 많다고 봐요. 또 지금 민주당을 나가버리면 그동안 민주당 안에서 해온 제 애정 어린 쓴소리가 전부 삿된 게 될 겁니다. 그게 진심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구박받지만 여기서 계속 외쳐보려고요. 그래서 슬프고 억울해도 참고 있는 거예요.” -이미 당을 떠난 동료들이 함께하자고 하죠? “전화는 많이 오지만 저는 마음을 굳혔어요. 민주당에 DJ 때까지는 통합을 하려는 정치가 있었어요. 노무현의 등장 때부터 극단적 편향, 진영 논리 이런 게 나타났죠. 이게 또 팬덤 정치로 변했죠. DJ는 정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지만 개인이 몰두할 수도 있는 복수심, 한풀이를 뛰어넘는 정치를 했어요. 저도 그러고 싶고요.” -그런 정치의 계절이 올까요? “바람을 좀 넣는다면 저는 이런 극단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봐요. 극단 정치가 막장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요. 우리 국민들도 지긋지긋해하는 쪽이 다수라고 생각합니다. 선거 때 말고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이 30%가 넘어요.” -선거 결과는 극단화되고 있는데요. “이들을 뭉치게 하거나 끌어들이지 못하는 리더십의 부재, 정당 구조의 문제 때문이에요. 이게 해결되면 다른 성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요?”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문재인 정부 때 조국을 앞장서 비판했잖아요. “제가 지적했던 불공정의 표본, 잘못된 고위공직자가 조국이었죠. 그런데 징역 2년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게 출마를 했어요. 제가 바보가 된 느낌이에요. 지금은 박용진에게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이죠.”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예상하는 전망이 많아졌어요.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어요. 민주당에 실망한 4050이 투표를 안 하려고 하다가 그래도 조국당은 아니지, 하면서 민주당 찍으러 나오기도 하고요. 민주당에 순풍이 됐어요. 거기에다 정권 심판 바람도 세졌고요. 정부와 여당은 엉망진창이에요. 국정 운영에 ABC가 있길 하나요. 능력도 없고 계획도 없고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어요. 와이프하고의 의리만 생각하는 듯합니다.” 2022년 8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해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이재명 당대표 후보와 박용진 당대표 후보가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박 의원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 생각을 한 게 스무 살 즈음이었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1997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2008년엔 진보신당에 입당했고 2011년 야권통합 과정에 혈혈단신으로 민주통합당에 합류했다. 저쪽에선 배신자, 이쪽에선 빨갱이 소릴 들었다. 박 의원의 정치에 쉬운 길은 없었다. -민주당이 통진당 후신인 진보당과 연대를 했는데요. 민노당 출신으로 어떻게 보나요? “위험하죠. 민주당이 2012년 총선 때 통진당과 했던 연대에 대해선 이미 국민적 평가를 받았다고 봐요. 민주당도 그 연대가 잘못됐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사과했잖아요. 그런데 2%짜리 정당에 의석 4~5개를 주다니 말이 안 되죠.” -공천 못 받은 데 대한 가족 반응이 궁금합니다. “아내는 저보다 더 담담해요. 독해요. 하하. 말은 안 하지만 가슴 아프겠죠. 아이들은 제가 강성 지지층에게 욕을 먹을 때도 ‘아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들이 아빠를 모르잖아요’라고 위로해줬는데요. 이번엔 좀 당황한 것 같더라고요.” -왜 정치를 시작했나요? “세상을 바꾸고 싶었어요. 운동권으로 세상은 못 바꾸는구나 느낀 건 군대 생활 할 때였고요. 특수한 사람들하고 놀다가 사병들과 놀아보니 이 단순함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걸 알았죠.” -민주당에 입당한 이유는요? “진보정당으로는 주장은 할 수 있지만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했죠. 그저 의미 있는 소수일 뿐이었죠.” -국회의원이 돼서는 세상을 바꿨나요? “노력은 했어요. 그중에 유치원이 정부 지원금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은 국민 다수에게 이익을 줬다고 생각해요.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아쉬울 따름이죠.” -5월 31일로 국회의원 임기가 끝납니다. 이제 뭘 할 건가요? “국회의원 8년간 정말 바빴어요. 이제 조금은 천천히 생각하고 느리게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요. 저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강성 지지층, 개딸도 만나려고 합니다.” 박 의원은 이재명 대표에게 3전 3패 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졌고, 당대표 선거에서도 졌다. 그리고 이번 공천에서도 진 셈이다. 그런데 여의도에선 “박용진이 졌지만 이겼다”는 말이 나온다.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박용진의 정치를 여기서 끝낼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는 제가 손드는 정치를 했어요. 국회의원도 손든 지 16년 만에 된 거고요. 대선 후보도, 당대표도 다 제가 하겠다고 했지요. 이제부턴 국민이 찾아주는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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