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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소리에도 두려워 떨던 제주4·3…尹 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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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55회 작성일 24-04-0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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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미지 확대 사진 보기 마을회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홍춘호 할머니. 강지윤 기자
제주 4·3 당시 무등이왓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을 증언 중인 생존자 홍춘호 할머니. 강지윤 기자

"윤 대통령이 와서 말 한 마디라도 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제주 4·3사건 생존자이자 동광리 문화해설사인 홍춘호87 할머니는 윤석열 대통령의 제76회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불참 소식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3일 열리는 추념식에는 윤 대통령 대신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한다.

홍 할머니는 현직 대통령의 추념식 불참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윤 대통령이 제주 4·3사건을 많이 말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면 좋겠지"라고 밝혔다.

2003년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4·3이 국가 공권력의 인권유린으로 규정되기 전까지 홍 할머니는 좀처럼 그날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에게 붙은 빨간 딱지는 연좌제로 대물림돼 오랜 기간 침묵해야만 했다.


1948년 11월, 11살 소녀 홍춘호가 살던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 마을에서는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다. 중산간 마을 초토화작전을 수행하던 토벌대가 소개령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무등이왓 주민들을 사살한 것이다.

그해 10월 17일 9연대 송요찬 연대장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외의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를 폭도배로 인정해 총살을 처할 것이라는 내용의 포고문을 발표하며 초토화 작전의 신호탄을 쐈고, 11월 21일 국방부는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틀 뒤 중산간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렸다.

"4·3사건이 뭔지도 모를 때인데, 아침 9시쯤 경찰들이 와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남자들에게 연설을 할 것이니 모이라고 했어요. 어떤 순경은 오늘 나가면 죽으니까 나가지 마세요 하기도 하고. 그래서 10명만 나갔어요. 그랬더니 연설도 허여부지도하지도 않고 그냥 쏴버렸어요. 그때 나는 집에 있었는데 총 소리가 천둥번개가 친 것 같았어요. 어머니가 막 울면서 사람 다 죽었다고…."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듬해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참혹한 집단 살상이 행해졌다. 4·3사건 전 기간 발생한 희생자 수는 3만 여명으로 추정되는데, 초토화작전 전까지의 사망자 수는 약 1천 명 미만이었다.

중산간 마을인 무등이왓, 삼밭구석 등 동광리에서도 희생자가 160여 명 이상 발생했다.

11월 15일 무등이왓에서 최초 학살을 벌인 토벌대는 마치 군사훈련을 하듯 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12월 12일 자신들이 전날 학살한 시신을 가족이 수습할 것을 예상하고 잠복해 있다 그들을 잔혹하게 죽인 것이다. 토벌대는 10여 명을 한 곳에 몰이해 짚더미나 멍석 등을 쌓아 불을 질렀다. 잔혹한 화염에 스러진 이들 대다수는 여성, 노인, 아이였다.
무등이왓마을 최초학살터. 강지윤 기자

"우리 큰동생하고 나하고 어느 숲속에 두고 어머니가 여기 가만히 숨어있어라 했어요. 나오면 죽으니까 우리는 엄마 보고 싶어도 무서워 나오지를 못해요. 아버지가 어두워지면 우리를 데리러 왔는데 아 오늘은 살아졌구나, 그땐 하루 더 사는 것이 너무나 좋았어요. 그렇게 좋았어."

마을이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불에 타자 주민들은 토벌대의 눈을 피해 산과 굴로 피신했다. 원물오름 굴, 곶자왈을 오가며 몸을 숨겼던 홍 할머니 가족은 큰넓궤에서 50여 일을 버텼다. 좁은 입구와 절벽을 지나면 넓은 장소가 나와 근처 마을 주민들도 모여 약 120명이 생활했다.

"큰넓궤 가면 무섭든 안 해. 여기서는 이파리 하나만 떨어져도 깜짝깜짝 놀라며 살았는데 굴속에 들어가면 놀라진 않어. 추운 것도 모르고 더운 것도 모르고 어두운지 밝았는지 아무것도 몰라. 50일 동안 살면서 하늘 한 번 못봤어요. 아버지한테 밤에라도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지금 나가면 죽는다고…."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큰넓궤가 발각된 후 일부 주민은 산으로 피신하다 정방폭포 부근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홍 할머니는 토벌대를 피해 다니다 계엄령 해제 선전물을 보고 하산 후 임시수용소인 단추공장에 갇혔다가 석방됐다. 남동생 3명은 토벌대를 피해다니던 중에, 아버지 홍신길씨는 수용소에서 풀려난 이듬해 사망했다.

"수용소에서 그렇게 고문을 당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야. 어디가 아픈지도 몰라. 약 한 번 먹어보지도 못하고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그냥 아파서 팽팽 둥글다가뒹굴다가 돌아가셨지"

마을 일대를 걸으며 토벌대에 의해 자행된 참상을 알리는 홍춘호 할머니. 강지윤 기자

할머니는 4·3 해설사로 일하며 그날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미국에 방문해 증언을 통해 미군정 당시 행해진 4·3 학살의 책임을 묻기도 했고, 2021년에는 역사적 진실을 세상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홍 할머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4·3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고통의 세월이 해소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해설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가지고 이런 이야기도 마음 놓고 할 수 있고, 나 같은 할망할머니 이야기하는 걸 반갑게 들어주니 고맙수다. 이제 우리 선생님들기자들이 이것을 잊어불지 말라고 널리 많이 많이 이야기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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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강지윤 기자 lepomm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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